상원 합의안, 대통령에 국경 폐쇄 권한

취임 초 도입한 ‘잡아서 풀어주기’ 정책 폐기

이민자 급증하며 민주당 우세지역서도 ‘우려’

경합주서 “이민 문제, 트럼프가 더 신뢰감”

바이든, 국경법안 ‘우클릭’…재선 가도 '최대도전'[세모금]
트럼프 지지자가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멕시코 국경인 캘리포니아 주 산 이드로스에서 열린 국경 보안 강화 요구 집회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취하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미국 상원이 4개월 넘게 끌어온 국경 안보 협상안에 합의했다. 협상안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이민자들의 월경을 차단할 수 있는 권한을 도입하는 등 그동안의 포용적인 국경 정책을 대폭 수정했다. 취임 이후 취해온 이민 정책이 경합주를 중심으로 민심이반을 불러왔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민 이슈가 지속되길 원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 강경파가 협상안에 반대하고 있어 하원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4일(현지시간) 미 상원은 1180억달러(약158조원) 규모의 안보예산안 패키지를 공개했다. 이 패키지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인도적 지원(600억달러) ▷이스라엘 군사 지원(140억달러) ▷인도태평양 전략 관련 대만 지원(50억달러)과 함께 국경 관리 및 국경 순찰 인력 확충을 위한 222억3000만달러의 예산이 배정됐다.

이번 협상안에는 국경 관리 강화와 관련해 단순히 예산만 배정된 것이 아니다. 미 국경에서 불법 월경 이민자가 1주일 기준 하루 평균 4000명 이상 발생할 경우 대통령과 국토안보부에 국경을 폐쇄할 수 있는 비상권한을 부여하고 그 뒤로도 하루 평균 4000명 이상의 불법 월경자가 발생할 경우 지체없이 국경을 봉쇄하도록 했다. 국경이 봉쇄되면 이민자들의 망명 신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강제 송환이 시행된다.

게다가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콜롬비아 유세에서 “대통령으로서 국경을 폐쇄할 수 있는 새로운 비상권한이 주어지면 법안에 서명하자마자 국경을 폐쇄할 것”이라며 강경한 이민정책을 시행할 의지를 밝혔다.

이같은 움직임을 두고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기존의 이민정책을 근본적으로 폐기하고 보다 보수적인 국경정책으로 전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공화당 상원의원은 워싱턴포스트(WP)에 “(바이든 행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국경정책을 바꿀 뿐 아니라 민주당 지지층에게 국경 안보 이슈를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트럼프 행정부가 도입한 ‘타이틀 42’국경 정책을 해제했다. 이 정책은 팬데믹 기간 동안 이민자들에게 망명 신청 기회를 주지않고 신속하게 추방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대신 그동안 불법 이민자들이 적발될 경우 난민 심사 전까지 임시 비자를 주고 미국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가석방하는 소위 ‘잡아서 풀어주기(catch and release)’ 정책을 펼쳤다.

바이든, 국경법안 ‘우클릭’…재선 가도 '최대도전'[세모금]
지난해 5월 10일(현지시간) 미국과 멕시코 국경인 텍사스 주 엘파소에서 이미자들이 망명 신청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AP]

지난해 3월 이러한 정책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멕시코에서 16만3000건 이상의 불법 월경이 적발됐지만 관세국경보호청이 처리한 망명 심사는 936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이민자들은 가석방 상태로 심사를 기다리며 미국에서 자유롭게 일자리를 구하는 상황이 됐다. 이러한 상황이 전해지자 미국으로 입국하려는 이민자들이 급격히 늘면서 지난해 12월에는 약 30만건의 불법 월경이 적발됐다.

바이든, 국경법안 ‘우클릭’…재선 가도 '최대도전'[세모금]
그렉 애벗(왼쪽 두번째) 텍사스 주지사가 4일(현지시간) 텍사스 주 국경 인근 셀비 파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경 수비대에 인사를 하고 있다. [AP]

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 이민자들이 빠르게 늘면서 미국 유권자들의 반이민 정서 역시 급속히 확산됐다. 텍사스 주의 그렉 애벗 주지사가 불법 이민자들을 버스에 실어 시카고, 뉴욕 등 민주당 우세 지역으로 실어 나르자 이들 지역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반이민 여론은 올해 대선 정국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의 이달초 여론조사에서는 이민 문제에 우려를 표명한 유권자 비율이 35%로 지난해 27%에서 크게 늘었다. 블룸버그 통신이 최근 조지아와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등 7개 경합주 유권자를 대산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이민문제와 관련해 누구를 더 신뢰하냐는 질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고 답한 사람이 바이든 대통령을 꼽은 이보다 22%포인트 더 많았다.

이런 여론을 노리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대선 캠페인에서 국경·이민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중순 뉴햄프셔주에서 열린 유세에서는 “이민자가 우리 나라의 피를 오염시킨다”는 극단적 발언을 쏟아낸 데 이어 지난달 27일에는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우리 국경은 우리를 파괴하는 ‘대량살상무기’가 됐다”며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했다.

공화당 선거 전략가인 덕 헤이는 “이민자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장면이 언론에 노출될 때마다 민주당은 인권이 침해됐다고 분노하지만 대다수 국민들과 공화당 지지자들은 국경과 국가가 침략당했다며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며 “이게 바로 트럼프가 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초당적으로 합의된 협상안을 공화당이 받아들여 의회에서 빠르게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제 하원의 공화당 의원들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면서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길 원하는가, 아니면 국경을 가지고 계속 정치를 하고 싶은 건가”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트럼프 캠프와 공화당 강경파는 이민 이슈가 선거에 유리한 만큼 이번 합의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공화당 강경파로 분류되는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상원 협상안에 대해 “하원에 도착하자마자 죽은 법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