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 호령하던 ‘63년 토끼띠’ 시대 저무나 [투자360]

[헤럴드경제=유혜림 기자] '주가조작 등 불공정 거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 손실....' 유난히 사건사고가 쉴 새 없이 터진 한 해다.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인 2023년 여의도 증권가를 호령하던 토끼띠 최고경영자(CEO)들의 시대도 저물 조짐이다. 그간 평판과 실적을 바탕으로 장수 CEO 타이틀을 이어갔지만 올해는 연임이 불투명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세대 교체 바람이 불면서 미래에셋증권을 필두로 '원숭이띠(68년생)' 인사의 약진을 주목하는 시선이 있다. 재주와 영리함을 상징하는 원숭이띠 CEO가 침체된 금융투자업계의 도약을 이끌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말부터 내년 3월까지 대표 임기가 만료되는 1963년생 증권사 CEO는 6명이다. 장석훈 삼성증권 사장, 김성현·박정림 KB증권 사장의 임기가 올해 12월까지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김신 SK증권 사장, 오익근 대신증권 사장의 임기는 내년 3월 끝난다. 내년 3월까지 대표 임기가 만료되는 증권사는 총 12곳인데, 이 중 절반이 '검은 토끼띠' CEO다.

올해는 주가조작 등 각종 사건 사고로 리스크 관리와 내부 통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증권사들의 리더십 교체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금융당국도 불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내부통제 시스템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개선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겠다고 강경한 입장이다.

각자대표이사 체제인 KB증권의 박정림·김성현 사장도 증권업계 대표 토끼띠 CEO다. 이들은 2019년 공식 취임하면서 올해로 5년째 KB증권을 이끌고 있다. KB금융 계열사 대표 중 최장기 집권 수장이기도 하다. 시장에선 두 대표 모두 용퇴보다는 연임을 희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그룹 안팎에선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이후 첫 인사인 만큼 장수 CEO가 이끌어 온 계열사 위주로 세대교체에 나선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CEO의 임기에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른 것은 금융당국의 징계 수위다. 금융위원회가 라임펀드와 옵티머스펀드 등의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와 관련해 증권사 CEO들에게 중징계 조처를 내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정림 KB증권 사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이날 금융위의 안건 소위원회에 참석해 사실상 마지막 소명 기회를 갖는다. 이달 중 열릴 예정인 금융위 제재심에서 문책 경고 이상 중징계를 받으면 연임은 물론 향후 3년간 금융회사 임원 재취업이 금지된다.

최장수 토끼띠 CEO인 김신 SK증권 사장은 10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리스크 관리능력에 물음표가 제기되고 있는 점이 난관이다. 지난해 SK증권은 신탁 상품 판매 후 채권 돌려막기를 하다가 대규모 평가 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투자 자산 평가손실과 환매 연기에 대한 합의금 명목으로 100억 원대 자금을 지급했는데, 현행 자본시장법상 위법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금감원이 이런 운용 실태에 대해 "증권사 CEO 책임"이라고 직격한 만큼 회사가 느끼는 부담도 클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통 삼성맨'으로 알려진 장석훈 삼성증권 사장도 63년생 토끼띠다. 장석훈 대표는 1995년 삼성증권에 입사해 인사를 비롯한 관리, 기획, 상품개발 등 여러 직무를 두루 거쳤다. 부동산 PF를 비롯한 리스크 관리가 양호하고 안정적인 경영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연임 전망이 우세하다. 12월 초 예상되는 삼성그룹 인사 방침이 변수로 꼽힌다.

오익근 대신증권 사장도 연임 가능성이 크다. 두번째 임기(2년)가 내년 3월까지인데 경영을 안정적으로 잘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대신증권이 종합금융투자사 전환을 추진 중인 만큼 경영 안정에 무게를 두고 연임 가능성이 점쳐진다.

세대교체 바람에 떠오른 만큼 68년생 '원숭이띠' CEO의 행보를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63년생 토끼띠 CEO들이 현직에서 4년 이상 재임한 만큼, 올해는 67~68년생의 약진이 돋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창업 멤버인 최현만 회장과 이만열 사장이 용퇴하고 68년생 김미섭 부회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했다. 메리츠증권 신임 대표에 선임된 장원재 사장도 67년생이다. 키움증권의 황현순 사장의 퇴진이 유력한 상황에서 차기 인사로 거론되는 엄주성 부사장도 68년생 원숭이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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