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환율, 약 16년 만에 860원대 진입
주요 은행 엔화예금 잔액 9일 만에 1000억엔↑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원·엔 환율이 이달 들어 약 15년 만에 100엔당 860원대까지 떨어지며, 시중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엔화 가치 상승에 배팅해 환차익을 얻으려는 ‘환테크족’ 수요가 몰린 영향이다. 일각에서는 엔화 가치가 더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도 나오고 있지만, ‘역대급’으로 낮아진 환율에 엔화를 사들이려는 수요는 끊이지 않는다.
“지금이 저점이야” 매일 100억엔씩 늘어나는 엔화예금 잔액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지난 9일 기준 엔화예금 잔액은 1조1091억엔으로 전월말(1조85억엔)과 비교해 1006억엔(9.9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일평균 100억엔이 넘는 금액이 엔화 투자에 몰렸다는 얘기다.
올 들어 엔화예금의 인기는 꾸준히 상승 추이를 기록했다. 지난 4월말 기준 4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이 5789억엔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약 7개월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그러나 지난 월별 증가폭 추이가 ▷10월 200억엔 ▷9월 348억엔 ▷8월 156억엔 ▷7월 562억엔 등인 것을 고려하면, 이달 엔화예금 잔액 상승세의 속도는 유별나게 빠르다. 올해 가장 가파른 월별 증가폭을 보인 6월(1841억엔)과 비교해서도 가파른 상승 속도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나타난 원인은 900원대 전후로 머물러 있던 원·엔 환율이 이달 들어 100엔당 860원대까지 떨어진 영향이다. 원·엔 환율은 지난 6일 867.59원을 기록하며, 15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860원대에 진입했다.
엔화 가치 하락은 달러에 비해 약세를 보이던 원화와 엔화가 이달 들어 다른 움직임을 나타내면서다. 금융당국은 지난 5일 내년 상반기까지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외국인 유입이 늘어나며 원화 강세에 힘을 실었다. 미 연방준비제도의 2연속 금리 동결 결정도 원화 강세에 영향을 줬다.
자연스레 900원대 전후에서도 투자 수요가 끊이지 않던 엔화의 인기는 치솟았다. 현재 860~870원 수준인 원·엔 환율이 다시금 일주일 전 수준인 900원 전후로 돌아갈 경우, 단순 추정되는 시세차익은 약 3~4% 정도다. 이는 현재 주요 시중은행들이 제시하고 있는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4% 내외)와 유사한 수준으로, 적지 않은 수익률이다.
‘환손실’ 우려에도 환테크족 발길 끊이지 않아
물론 섣부른 엔화 투자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일본 정부가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엔화 가치 하락세가 더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31일 일본 중앙은행은 장기 국채금리의 상한을 1% 초과 허용하며 마이너스금리 탈출의 물꼬를 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화 약세 현상은 지속되며, 일본 정부의 개입도 제한적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아울러 미 연방준비제도가 지난 9일 다시금 긴축 가능성을 열어두며, 엔화 가치에 하방 압력을 주고 있다. 미국이 다시금 긴축에 돌입해,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경우 엔화 가치는 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에서는 엔화 수요가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엔화 투자의 경우 그간 쌓여온 심리적 매수선이 900원대에 형성돼 있는데, 860원대까지 하락한 상황이니 환테크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내년 중순께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해제될 것이라는 전망도 대두된다. 1990년대 일본 외환정책 책임자로서 ‘미스터 엔’이라고 별명을 얻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대장성 재무관은 “2~3%대 물가 상승률을 보이며 경기가 과열된다는 조짐이 보이면 일본도 긴축 정책으로 전환할 것”이라며 “그게 내년 중순쯤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