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포렌식탐정 대표 인터뷰
“2021년 개업 이후 사이버폭력 의뢰만 26건”
“사이버폭력, 시간 지날 수록 은폐 위험 커져”
“USB·하드웨어 등 증거 따로 수집해야”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포렌식 작업은 사이버폭력 피해를 입증하는 ‘스모킹 건’입니다.”
13일 박성호 포렌식탐정 대표는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오간 피해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게 싫어서 스스로 은폐하는 경우도 있지만, 피해 상황을 입증할 수 있기에 용기를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은 전자 증거물 등을 사법 기관에 제출하기 위해 용의자의 유전자(DNA)나 지문, 휴대폰, PDA, 컴퓨터 하드디스크, 기업 회계자료 등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복원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범죄 증거를 확정하기 위한 과학적 수사로 디지털 기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이 같은 증거 확보는 더욱 중요해졌다.
올해도 피해 유형 중 사이버폭력 1위…“피해 학생 98% 경험”
디지털 기기에 친숙한 10대 학생들에게서 사이버폭력은 학교 폭력의 주요 괴롭힘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지난 9월 학교 폭력 예방 전문 기관 푸른나무재단이 지난해 12월 19일부터 올해 2월 28일까지 전국 초·중·고교생 7242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유형 가운데 사이버폭력은 25.8%로 지난해에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특히 학교 폭력 피해를 봤다고 응답한 학생 6.8% 가운데 98%가 ‘사이버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해 심각성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재단은 현재 사이버 공간을 매개로 다양한 학교폭력 유형이 혼재된 양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정부의 사이버폭력 대응 및 피해 회복을 위한 사후 지원에 대한 내용은 미비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플랫폼 기업의 책무와 보호 등 구체적인 제도 논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 역시 사이버상에서 발생하는 학교 폭력의 심각성에 실감하고 있었다. 그가 지난 2021년 고양 일산동구에 사무실을 차린 이후부터 의뢰받은 학교폭력 관련 포렌식 의뢰만 26건에 달한다. 상속, 세무, 가사 문제 등 수많은 의뢰를 받는 와중에도 피해 학생들을 위한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무상으로 진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상반기 푸른나무재단 관계자와 인연을 맺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재능 기부 차원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가해자로 알려진 학생, 포렌식해보니 피해자…신속한 구제가 중요”
실제로 박 대표가 학교 폭력과 관련한 포렌식 작업을 수행하던 중 가해자로 알려진 학생이 피해자로 뒤바뀐 일도 있었다. 박 대표는 “지난해 7월 사이버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의 가족이 방어권을 행사하고자 포렌식 의뢰를 했었다. 1명의 가해 학생이 다수의 학생들을 괴롭혔다는 사건이었다”며 “(그런데) 포렌식 작업으로 학생들 간 대화 내역을 살펴 보니 가해 학생이 오히려 피해 학생이었고, 피해 학생은 가해자들이었다. 이를 통해 해당 학생의 부모는 수사 기관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버상에서 암암리에 일어난 괴롭힘을 밝혀내기 위해 박 대표는 ‘신속성’을 줄곧 강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해자가 증거를 은폐할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피해자도 용기를 내지 못한 채 상황을 알리는 데 주저하는 마음도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대표가 의뢰 받은 포렌식 작업 대부분은 일주일 이내 마무리된다. 이에 대해 그는 “용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짧게 1~2일에서 길게는 4~5일 내로 포렌식 작업을 마친다”며 “사건의 해결에는 명확, 공정도 중요하지만 신속성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빠른 초동조치가 이뤄질수록 피해 학생도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 받을 기회를 더 빨리 보장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화 내용 삭제’, ‘채팅방 나가기’는 금물…USB·하드웨어에도 피해 정황 수집해야”
박 대표는 사이버상에서 학교 폭력이 의심될 땐 증거물의 보전을 위해 대화내용이나 녹취 등을 기록 및 저장하고, 제3의 저장매체에 백업하는 등 피해사항을 보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를 통해 상호간 중재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분 등의 조치가 불가피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는 “가령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괴롭힘을 당했을 때에는 대화 기록 삭제, 대화방 나가기, 친구 차단 등의 행동은 증거 보전을 위해 자제하는 것이 좋다”며 “휴대용 저장장치(USB)나 하드웨어 등 제3의 저장매체에 대화 내용 등 증거물을 백업본으로 남겨두는 등 피해 정황을 입증할 자료를 최대한 수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점차 교묘해지는 사이버폭력…조력자 역할 묵묵히 수행할 것”
끝으로 박 대표는 가해 학생들이 흔적을 지우기 위해 디지털 정보를 분석하지 못하도록 삭제하는 ‘안티포렌식’을 시도할까봐 우려된다고 했다. 그는 “디지털포렌식이 어려운 애플리케이션으로 피에 학생을 불러서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학교 폭력을 일삼은 심증은 있어도 물증을 확보하기 어려워 피해 규명이 어렵다”며 “과연 (이런 시도까지 벌여 가해하는) 이런 아이들이 앞으로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할지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박 대표는 바쁜 업무들을 소화하면서도 푸른나무재단의 의뢰가 있으면 늘 조력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단과 업무협약을 맺은 것은 아니지만, 선한 영향력과 사회에 대한 조력자 역할에 대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면서 “사회의 약자 및 실체적 진실을 위한 사건의 해결에 있어 조력자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