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타당성 조사 초도 양산 40대→20대 잠정 결론
정부 ‘건전재정’ 우선기조에 ‘힘에 의한 평화’ 밀려?
지금도 공군의 적정 전투기 보유 대수 부족한 형편
엄동환 방사청장 “현재 양산계획 타당하다고 판단”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사업에 이상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애초 우리 군은 2026~2028년 초도 양산으로 40대를 확보하고 2032년까지 추가 양산을 통해 80대를 도입해 총 120대의 KF-21을 운용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사업타당성 조사에서 KF-21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이유로 초도 양산 물량 40대를 20대로 절반이나 줄여야 한다는 잠정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KIDA는 조만간 이 같은 내용을 국회에 보고한 뒤 올해 연말 보고서를 발간할 것으로 전해졌다.
KIDA의 사업타당성 조사가 그대로 반영된다면 정부는 내년 초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서 KF-21 20대 초도 양산안을 승인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KF-21 초도 양산 물량이 20대로 줄어들 경우 당장 공군의 전력공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통상 우리 공군의 적정 전투기 보유 대수는 430여대로 평가된다.
그런데 F-4와 F-5계열 노후 전투기의 순차적 퇴역으로 인해 현재 운용중인 전투기는 380여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년에는 20여대가 더 도태될 예정으로 적정 전투기 보유 대수에 크게 미치지 못하게 된다.
공군은 미국의 스텔스전투기 F-35A 20여대 추가 도입과 FA-50 경공격기 20여대 추가 도입 등을 통해 전력공백을 최소화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120대의 KF-21 운용 계획이 첫걸음부터 어긋난다면 공군의 구상에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KF-21 사업에 정통한 소식통은 “초도 양산 물량이 20대로 줄어들고 후속 물량 결정이 지연되면 공군의 전력 공백이 불가피하다”며 “이번 물량 축소 얘기는 노후화된 F-4, F-5 전투기의 빠른 대체를 기다리고 있는 공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초도 양산 물량이 40대에서 20대로 반토막날 경우 KF-21 단가 상승도 피할 수 없다.
KF-21 대당 가격은 초도 양산 40대를 기준으로 880억원 대로 추산됐는데 20대로 줄어들면 대당 가격이 1000억원 대로 치솟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애초 예상보다 개발비용이 늘어나고 있는 형편에서 초도 양산 물량까지 절반으로 줄어들면 대당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4.5세대를 표방하는 KF-21의 가격이 역시 1000억원 대로 알려진 미국의 5세대 스텔스전투기 F-35A 수준으로 올라간다면 해외시장 경쟁력 상실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초도 양산 물량 축소 배경으로 KF-21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거론된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외부에서 볼 때 KF-21 사업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KF-21은 ‘민주주의의 무기고’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K-방산’의 차세대 주역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군 안팎에선 정부의 ‘건전재정’ 우선 기조에 따라 ‘힘에 의한 평화’가 후순위로 밀린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초도 양산 물량 축소는 체계종합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물론 AESA(능동전자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다와 통합 전자전체계, 장거리지대공미사일 등 KF-21의 주요 장비와 무장을 개발중인 한화시스템과 LIG넥스원, 그리고 500여개에 달하는 협력업체 등 방산업계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주요 방산업체는 물론 500여개의 협력업체들이 선투자 시설·생산라인 유지에 따른 추가비용 발생과 유휴인력 발생 등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며 “현재 업체들은 40대를 기준으로 재료비 등 협상을 추진하고 있는데 초도 물량을 축소한다면 묵묵히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방산업계에 타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정부가 여전히 초도 양산 물량 40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엄동환 방위사업청장은 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공군과 방사청, 업체, 그리고 이 분야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이들이 현재의 양산 계획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며 기존 초도 양산 물량 40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유형근 방사청 부대변인도 전날 브리핑에서 “방사청은 추가 논의를 통해 국익에 최선의 결론이 도출될 수 있도록 협의해나갈 예정”이라면서 “KF-21을 적기 전력화하고 가격 및 성능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 역시 “사업타당성이 진행중이고 의미 있는 연구기관의 연구 결과가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결정된 게 아니다”며 “조금 더 기다려보고 그 과정에서 달라지는 게 있으면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KF-21사업은 시제 1호기부터 시제 6호기까지 총 330여 차례의 시험비행을 거쳤으며 지난 5월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고 순항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