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아닌 기억으로 명작 그린 모네

르누아르는 장애 겪고 그림을 이해

위대한 업적 뒤엔 위인들의 고질병 있어

모네의 백내장, 르누와르의 관절염…미술 걸작 뒤엔 질병이 있다?[북적book적]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모네의 작품 '수련'. [123rf]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색상으로 보이는 것만 그리면 형태는 저절로 따라온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는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고수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빛과 그림자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의 눈에 담긴 이미지가 곧 그림이었던 셈이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백내장 진단을 받은 것. 말 그대로 그의 눈 앞은 캄캄해졌다. 갈수록 색상을 분간하기 어려워진 그는 어두운 물감을 버리고 자주 쓰는 몇 가지 색만 골라 쓰기 시작했다. 물감 튜브엔 번호를 붙여 팔레트 옆에 순서대로 뒀다. 모네는 이때부터 관찰이 아닌 기억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왼쪽 눈이 실명된 후 뒤늦게 눈 수술을 받게 된 모네는 특수 안경까지 착용해야 했다. 그는 수술 후 화실에 있던 ‘맹인의 그림도구’를 모두 부쉈다. 그리고선 86세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빛을 화폭에 담았다.

또 다른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화사하고 밝은 빛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뒀다. 검은색 물감은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그의 삶은 밝지 못했다. 쉰 살에 류마티스 관절염이 찾아와 어깨가 굳고 손가락은 굽어지며 팔꿈치가 뒤틀리기 시작한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50대 중반엔 자전거 사고로 오른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그럴수록 그는 그림에 더욱 매달렸다. 팔레트를 들기 어려워진 그는 무릎 사이에 이를 고정했다. 잡기 어려워진 붓은 손에 헝겊으로 감싸 끼워 넣고 그림을 그렸다. 서있는 것조차 힘들어지자 그는 그림용 좌석과 휠체어를 마련했다. 틈틈이 저글링을 하고 아내와 당구를 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손이 굽는 걸 막기 위해서다. 그림에 대한 열정은 그가 숨을 거두는 날까지 계속됐다. 르누와르는 78세로 죽기 3시간 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그는 장애를 겪고 나서야 ‘그림에서 뭔지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는 유언을 남겼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위인들의 위대한 업적과 성취 뒤엔 남모르게 겪었던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마음의 병과 싸우거나 그들의 커리어를 가로막는 신체적인 질환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질병은 일생 동안 쌓은 위대한 업적의 밑거름이 됐다.

모네의 백내장, 르누와르의 관절염…미술 걸작 뒤엔 질병이 있다?[북적book적]
[들녘 제공]

신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아팠다’는 세계 위인들이 겪은 질병을 통해 그들이 걸어온 삶을 살펴본다. 각 인물들이 앓았던 각종 질병에 대한 정보는 덤이다. 책은 위인들이 병을 극복하거나 투병 와중에 성취를 이룬 과정을 통해 고통의 근원으로 지목되는 병이 있어도 그 병을 친구 삼아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게 한다.

저자 이찬휘·허두영·강지희는 ‘노(老)’를 혐오하고 ‘병(病)’을 죄악시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병’은 ‘사(死)’로 가는 ‘노’의 과정이자 ‘사’를 성찰하게 하는 기회인데 우리 사회는 병을 무찔러야 할 존재나 고통의 근원으로만 인식한다는 설명이다.

위인들의 업적과 그들이 앓았던 질병을 훑고 나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아팠다/이찬휘·허두영·강지희 지음/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