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만 7.65% 상승…JP모건 “120달러 갈수도”
사우디 제외 산유국 공급·글로벌 수요 둔화 관심
긴축 장기화 가능성…‘성장 발목’
[헤럴드경제=문혜현 기자] 국제유가가 이달 들어서만 7% 넘게 오르면서 글로벌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높은 유가가 물가 상승세 둔화를 저지하면 주요국의 긴축 상황이 더 길어질 수 있고, 그에 따른 투자 감소·소비 부진으로 경제 성장을 발목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장에선 현재 90달러 선(서부텍사스산 원유 기준)을 오가는 국제유가가 연말이면 120달러를 넘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연말 원유 공급 상황과 중국·미국 등 선진국 수요 추이에 따라 국제유가가 100달러 선을 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달 새 7% 오른 유가…IB들 “100달러 간다”
29일 뉴욕상업거래소에 9월 들어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7.65% 상승하며 배럴당 90달러대로 올랐다. 같은 기간 브렌트유(93.27달러)와 두바이유(93.05) 또한 각각 6.3% 상승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가 7월부터 단독으로 일일 100만배럴 감산을 시행하고 러시아도 8월부터 자발적 수출 감축에 나서면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진 영향이다. 이에 더해 두 국가는 감산 및 수출 감축 시한을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유가 상승세를 부추겼다.
이에 지난 20일(현지시간) WTI는 한때 90.28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11월 초 이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주요 투자은행(IB)들은 국제유가가 100달러까지도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속속 내놓고 있다. JP모건 투자전략가들은 최근 보고서에서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할 때) 추가 감산으로 유가가 최고 배럴당 120달러까지 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세계 인플레이션을 잠재적으로 연말까지 약 6% 끌어올리고 향후 2분기 동안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에 1.3%의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JP모건은 가격 급등의 25%는 예상보다 높은 석유 수요 영향이며, 75%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공급 감소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JP모건은 22일(현지시간) 미국 경제 방송을 통해 내년 이후 국제유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내년 브렌트유가 배럴당 90~110달러, 내후년엔 배럴당 100~120달러, 2026년엔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봤다. 단기적으로 원유 공급이 부족하고, 장기적으로 에너지 시장의 ‘슈퍼사이클’(원자재 등 상품시장 가격이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추세)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골드만삭스도 12개월 브렌트유 전망치를 기존 93달러에서 100달러로 상향했다. 미국 정유회사 셰브런과 컨설팅기업 에너지 어스펙츠도 1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연말 공급 여건·수요 둔화 추이 봐야…긴축 장기화”
반면 국내에선 연말 원유 가격이 100달러 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내년 미국이 성장률이 낮아질 가능성이 큰 데다, 부동산 관련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중국도 간신히 성장률 전망치를 달성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형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유가는 연말까지 상승세를 보이겠지만 100달러를 상회하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공급 감소로 유가가 올라가는 것은 맞지만, 수요가 자체가 줄어 산유국이 감산에 나선 요인들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중장기적인 요인으로 녹색 전환(green transition) 등 친환경 수요가 늘어났고, 미국 셰일 붐 이후 OPEC+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며 “중국 상황을 보면 수요 측 요인에 의해 유가가 올라갈 여지가 적다는 점, 러·우 전쟁처럼 공급망 이슈에 따른 유가 영향이 적은 점을 종합했을 때 100달러 미만으로 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금융센터도 “최근 중국 경제지표가 예상을 상회했지만 부동산 시장 부진과 경기 불확실성이 여전하고, 미국도 내년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며 “향후 국제유가 향방은 원유수요에 달려 있다는 의견이 다수”라고 했다.
공급 측면에서도 국금센터는 “미국 셰일오일은 국제유가에 비교적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 공급 부족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여타 산유국들이 적극적으로 증산하면 시장 점유율 상실을 우려한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축을 완화할 소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현재와 같은 국제유가 상승 기조는 물가를 밀어올려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연구위원은 “한은이 생각보다 물가에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고, 유가와 관련한 물가 리스크로 긴축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고금리가 길어지면서 투자가 위축되고 소비 심리가 떨어져 경제 성장률을 끌어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