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40대 직장인 한씨의 딸은 재수생이다. 고3이 끝나고 지방대에 합격했지만 딸은 만족하지 못했다. 딸인 한모(20)씨는 휴학 대신 자퇴를 택한 뒤 경기도 평촌의 재수 학원에 등록했다. 매월 250만원이 학원비로 빠져나간다. 한 씨은 인(In) 서울을 목표로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14시간을 학원에서 보낸다. 현재 약 4~5개의 과목을 신청해 시간표에 맞춰 수업을 듣고 있다. 비는 시간에는 학원에 마련된 공간에서 자습을 한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10월에는 단과 수업을 줄여 자습 시간을 확보하는 대신 2시간, 3시간 단위로 개설되는 ‘집중 특강’을 들을 예정이다. 아버지 한 씨는 “딸 아이는 경기도 무상교육 1세대”라며 “무상교육으로 돈을 아꼈다고 생각했지만, 재수를 시작하면서 도로묵이 됐다. 고3 때에 비해 학원비가 2배 이상”이라고 토로했다.
N수생은 입시업계 대어다. 독서실과 인터넷 강의로 혼자 준비하는 N수생이 아니라면, 학원비로만 100만~200만원이 우습게 빠져나간다. 생활비는 별도다. 수능을 두번, 세번 치르는 재수생과 삼수생부터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 오는 반수생, 군에서 제대한 이후 재도전하는 20대 초중반, 직장을 그만 두고 의대를 준비하는 30대까지. 명칭도, 나이도 다양하다. 매년 10만명 이상의 N수생이 학원을 찾는다.
이들이 지불하는 돈은 단순한 학원비가 아니다. 공부를 할 공간을 대여하고, 자신을 관리해 줄 코치를 고용하는 행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조용히 공부할 공간도 마땅치 않다. 출결을 관리해 주는 담임 선생님이 없으니 아침 일찍 눈을 뜨는 것부터 어렵다. 이런 N수생들의 수요를 파고든 사교육 업계는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N수생 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큰 지 한번도 파악한 적이 없다.
교육부 내년 N수생 사교육비 연구 첫발
2일 정의당 정책위원회에 따르면 교육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N수생 사교육비 조사모델 개발’ 명목으로 1억원 가량의 예산을 책정했다. 본격적인 N수생 시장 규모 파악에 앞서 N수생 개념·범위 설정 등을 위한 선행 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N수생은 연령, 응시 횟수, 대학입학 여부 등 응답자 특성 분포가 다양하다. 학원을 기반으로 조사를 하면 혼자서 시험을 준비하는 독학 재수생을 파악하기 힘들고, 고등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대학에 입학하지 않고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이 제외된다. 명확한 조사를 위해서는 연구 대상 설정과 방법부터 정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N수생 사교육 시장의 규모와 양태를 연구한 뒤 사교육비 절감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N수생은 계속해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응시 원서 접수자 중 재학생은 32만 6646명으로 10년 전인 2014학년도 재학생 응시자(50만 9085명) 대비 35.83% 감소했다. 반면 졸업생 응시자 수는 같은 기간 12만 7635명에서 15만 9742명으로 25.15% 증가했다. 올해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의 31.65%가 N수생이다.
학령 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N수생 덕에 입시업계는 여전히 호황이다. 오프라인 학원의 신흥강자인 시대인재 운영사 하이컨시의 2022년 매출은 무려 2747억원으로 전년(1895억원) 대비 44.96% 증가했다. 메가스터디는 전년 대비 매출이 120억원 가량 줄었지만 여전히 1216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자랑한다. 강남 재수종합 학원의 대표 주자 강남대성학원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3억 감소한 224억원이다.
학원 위해 주말 숙박까지, 미대 특강은 300만~600만원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브랜드 학원만 호황이 아니다. 관리형 독서실은 독학 재수생들에게 인기다. 미술, 음악, 체육 등 예체능계는 정시와 수시를 앞두고 1~2개월 운영하는 ‘특강’ 수업으로만 한달에 수백만원을 받는다. 수능과 똑같은 형식의 문제지를 제공하는 모의고사 제작 전문 업체 또한 매년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지방 한의대에 재학 중인 김모(21)씨는 매주 토요일 아침 6시 30분 첫차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주말동안 강남구 대치동 일대 학원을 돌며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본가에 머무르는 주중에는 독학 재수 학원에서 공부한다. 김 씨가 의대 진학을 위해 학원비로 지불하는 금액만 한달에 약 200만원. 서울을 오가며 드는 교통비와 숙박비, 각종 교재와 사설 모의고사 시험지를 포함하면 월 지출은 250만~300만원 사이다. 김 씨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기에 아깝지 않다”며 “막차를 타고 본가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는 방금 전 강남에서 같이 수업을 들었던 수험생들도 종종 눈에 보인다”고 전했다. 김 씨는 “사교육 업체를 때려잡는 방식이 효과적인지 모르겠다. ‘킬러 문항 사태’로 가장 고통 받는 것은 불안한 수험생”이라며 “한의대를 다녀도 의대를 도전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하는 사회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사교육 때리기’ 효과는 한정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내 미술대학 지망을 희망하는 박모(20)씨는 한달 약 150만원 가량을 지출한다. 예체능 계열인만큼 수능 점수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인터넷 강의로만 국영수를 대비한다. 대신 월에 60만~70만원 정도 하는 관리형 독서실과 월 70만원 비용을 내야하는 미술학원에 다닌다. 본격적인 실기 시험이 시작되는 수시·정시철이 다가오면서 ‘특강’도 들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박 씨는 “실기가 다가오면 1~2개월 동안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하는 특강이 열린다. 미대 입시는 실기가 중요해서 목표 대학 시험에 빠삭한 강사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보통 한달짜리 수시 특강은 300만원, 두달짜리 정시 특강은 600만원 정도다. 유명 입시 미술 학원은 아예 서울에 숙소나 학사를 두고 수업을 듣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