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하는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쥘 조제프 르페브르

월터 크레인

편집자주

〈후암동 미술관〉은 그간 인간의 세계를 담은 예술에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이제 시간을 크게 앞당겨 신의 세계를 살펴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명화와 함께 읽어봅니다. 기사는 여러 참고 문헌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판도라(일부 확대)
“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윌리엄 에티, 계절의 왕관을 쓴 판도라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제 이름은 무엇인가요?"

"판도라란다."

"무슨 뜻인가요?"

"모든(pan) 선물(dora)이란 뜻이란다."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빚은 판도라는 눈을 뜨자마자 제우스에게 자기 이름부터 물었다. 그녀는 최고 신의 자상한 대답을 듣고서 미소 지었다. 판도라는 아직도 낯선 두 손으로 자기 볼을 만져봤다. 손바닥에 이어 쇄골과 어깨, 그 아래로 발끝까지 몸을 훑어봤다. 과연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본떠 조각해서인지, 그녀의 모든 신체 부위는 맑고 해사했다. 판도라가 받은 선물은 '아름다움' 말고도 더 있었다. 태양의 신 아폴론노래, 전령의 신 헤르메스말솜씨, 지혜의 여신 아테나손재주를 가르쳤다. 끝으로 아프로디테가 직접 나서 판도라를 예쁜 옷과 꽃, 반짝이는 장신구와 보석으로 꾸며줬다. 이제 판도라는 눈이 부실 만큼 매혹적이며,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18~19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에티는 판도라의 탄생 순간을 생생히 그렸다. 새하얀 피부의 판도라가 화폭 한가운데 섰다. 신들의 선물이 담긴 왕관이 곧 머리 위로 씌워질 듯하다. 왼편에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로 추정되는 여인이 비스듬히 누워있다. 그녀의 아들인 사랑의 신 에로스가 활을 쥔 채 함께 있다. 오른편에 있는 헤파이스토스는 자기 작품을 끝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위에는 날개 달린 모자를 쓴 헤르메스가 보이는데, 그는 웬 상자를 소중하게 감싸안고 있다. 이는 곧 등장하게 될 이른바 '판도라의 상자'다.

“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장 알로, 판도라를 안고 가는 헤르메스

"저는 이제 세상으로 가는 건가요?"

"그렇단다." 제우스는 딸을 대하듯 부드럽게 말했다. "저는 누구와 맺어지는 건가요?" "예전부터 봐둔 이가 있지. 이제 갈 때가 됐구나." 제우스가 헤르메스에게 신호를 줬다. 이 충실한 심부름꾼은 판도라를 데리고 밑 세상으로 내려갔다. 올림포스산 아래는 어떤 곳일까.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 걸까. 그리고… 신이 점지해 준 내 남편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알로는 딱 그 순간을 화폭에 담았다. 헤르메스는 판도라를 안은 채 서둘러 달리고 있다. 판도라는 은은한 미소와 함께 아래 세상을 보는 중이다. 그녀의 손에는 또 '판도라의 상자'가 들려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질문만 하다가 가는군."

판도라가 떠난 뒤 제우스는 표정을 확 바꿨다. "아버지께서 그녀에게 호기심을 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런 것이지요." 헤파이스토스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못마땅함이 옅게 묻어있었다. "두고 봐. 저 여자는 분명 사고를 칠 것이야." "아버지. 꼭 그래야 합니까. 프로메테우스가 이미 그 죗값을…." "나는 인간들이 가짜 제물을 갖고 날 농락한 걸 잊지 않았다. 그들 또한 대가를 치러야만 해." 제우스는 단호했다.

제우스의 ‘선물’

“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헤르만 율리우스 슈뢰서, 판도라를 만나기(받아들이기) 전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에피메테우스는 미칠 노릇이었다.

헤르메스가 판도라를 이끌고 간 곳은 이 남자의 집 앞이었다. 에피메테우스는 평생 처음 보는 미녀 앞에서 넋을 잃었다.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제우스의 선물입니다. 온갖 동물을 만드느라 고생 많았다는 말을 전하라고 합니다." 헤르메스가 말했다. 이때 에피메테우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우스가 주는 선물을 절대로 받지 말거라." 코카서스 산에 묶여있는 형, 프로메테우스의 말이 퍼뜩 떠올랐다. 19세기 화가 헤르만 율리우스 슈뢰서는 이 장면에 주목했다. 당장 판도라를 끌어안으려고 하는 듯한 에피메테우스를 프로메테우스가 애써 막고 있다. 나무에 기댄 헤르메스는 이 모습이 재미있다는 양 살짝 미소 짓고 있다.

"그런데, 혹시 제우스께서 몸소 마련하신 선물을 거절하는 건 아니겠지요?"

눈치 빠른 헤르메스는 에피메테우스가 왜 망설이는지를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둘러대기 좋은 명분을 만들어줬다. "외롭게 살지 마시고 이 여자를 아내로 삼으라는 전언입니다." "알았네, 알았어!" '나중에 깨닫는 자'라는 이름 뜻답게 에피메테우스는 이번에도 일을 벌인 다음 생각해보기로 했다.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의 두 손을 잡았다. "제우스에게 고맙다고 전하게." 헤르메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났다.

그 시절 아래 세상은 고요했다.

올림포스산의 밑을 휘어잡고 있는 인간은 헤파이스토스의 스승 프로메테우스가 내놓은 걸작다웠다. 그 시대 인간은 살아있는 정의였다. 인간은 늘 진리와 양심의 편에 섰다. 모든 일은 대화와 타협으로 풀었다. 법도 필요 없고, 무기도 쓸모없었다. 욕심이 없으니 늘 풍요롭고, 갈등이 없으니 늘 평화로웠다. 땅과 바다도 그런 인간을 어여쁘게 봤다. 계절은 항상 봄이었다. 초목은 씨를 뿌리지 않고도 저절로 자랐다. 산에서는 꿀을 잔뜩 품은 열매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강에서는 신선한 우유가 콸콸 흘렀다. 인간은 동물을 괴롭히지 않았고, 동물도 인간을 경계하지 않았다. 판도라는 그런 세상이 너무 좋았다. 그녀는 이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호기심을 하나씩 풀어갔다. "여보. 이 하얀 건 뭐예요?" "창문을 타고 들어온 흰색 나비예요. 날개가 화려하지요?" "여보. 이 이상하게 생긴 건 무엇인가요?" "그건 빗자루예요. 집안을 깨끗하게 할 때 쓰는 것이지요."

“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월터 크레인, 상자를 궁금해하는 판도라

"그러면 저 길쭉한 건 뭐예요?"

"아, 저건…." 에피메테우스는 당황했다. 판도라가 가리킨 건 찬장 위에 올려둔 항아리였다. "별것 아니에요." 에피메테우스는 이를 황급히 감췄다. 그러고도 찝찝한 듯 말을 덧붙였다. "저건 절대로 열면 안 돼요." 에피메테우스는 유일하게 답을 주지 않았다. 판도라는 이 순간을 기억했다. 19세기 영국의 화가 겸 장식 예술가 월터 크레인의 그림을 보면 당시 에피메테우스의 다급함을 느낄 수 있다. 당황한 에피메테우스는 순진하게 서 있는 판도라를 어떻게든 내보내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그런데, 앞선 그림도 그랬듯 왜 화가들은 판도라의 항아리가 아닌 판도라의 '상자'를 그렸을까. 원래 이 신화를 처음 기록한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는 커다란 항아리를 염두에 두고 '피쏘스(pithos)'라는 그리스 단어를 썼다. 이후 16세기에 접어들었을 때, 인문학자 에라스무스가 피쏘스를 실수로 잘못 번역했다. 발음이 비슷한 라틴어 '픽시스(pyxis)'로 대체한 것이다. 픽시스는 상자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해 '판도라의 상자'로 바뀐 것이었다.

호기심이 부른 재앙

"…알고 싶을 텐데?"

판도라는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저 항아리에 든 게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느냐?"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제우스였다. "맞아요. 호기심이 가득해요. 하지만…." "그냥 마개만 열었다가 닫으면 되지 않느냐." "남편이 절대 열지 말라고 한 걸요." "아주 잠깐이면 되는 일이란다." 판도라는 결국 제우스의 부드러운 유혹에 넘어가버렸다. 다음 날, 판도라는 에피메테우스가 밖으로 나가기를 기다렸다. 곧 혼자가 될 수 있었다. 판도라는 에피메테우스가 멀리까지 간 걸 지켜본 뒤 부엌으로 내달렸다.

“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로렌스 앨마 태디마, 판도라
“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판도라

"잠시만, 아주 잠시만…."

그녀는 찬장 안쪽 깊이 숨긴 항아리를 꺼내왔다. 판도라는 심호흡을 했다. "아주 잠깐만 열어서 무엇이 있는지만 보고 닫으면 돼." 19세기 네덜란드 화가 로렌스 앨마 태디마는 잔뜩 기대에 찬 판도라가 항아리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어린아이 같은 표정의 그녀는 곧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듯하다. 비슷한 시기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는 판도라가 상자를 살짝 열어보는 그 장면을 포착했다. 그림 속 그녀는 호기심에 취해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어니스트 노르망, 판도라

판도라는 마개를 열었다.

그 순간 판도라가 할 수 있는 건 비명을 지르는 일뿐이었다. 항아리의 주둥이에서 검은색 덩어리가 끊임없이 솟구쳤다. 이 불길한 형체들은 신이 난 듯 마구 웃으며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고는 창문을 타고 빠져나갔다. 이들은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가 생명체를 만들 때 쓰지 않고 남겨둔 제우스의 '선물 보따리' 속 특성들이었다. "튼튼한 뒷다리는 사슴에게, 화려한 날개는 공작에게…. 그런데 질병, 증오, 분노, 배신, 시기, 질투, 미움, 원망? 이런 건 왜 함께 담겼을까. 이따위 것은 줘봤자 하등 쓸모없을 텐데?" 형제는 악(惡)을 따로 모았다. 주둥이가 긴 항아리에 밀어넣곤 봉인해버렸다. 그런데, 이를 판도라가 열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19세기 영국 화가 어니스트 노르망의 그림에선 깜짝 놀란 판도라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 그녀 뒤에선 악의 연기가 자유자재로 퍼지는 중이다.

갑자기 세상에 어둠이 깔렸다.

시끄러워졌다. 그것은 사람들의 싸움 소리였다. 사자와 호랑이가 우짖는 포효였다. 도둑이 유리창을 깨는 소음이었다. 칼과 망치가 서로 부딪히는 굉음이었다. 눈보라가 빚어내는 비명이었다. "왜 그랬지? 내가 대체 왜 그랬지?" 판도라는 뒤늦게 항아리에 마개를 끼웠다. 항아리 안은 여전히 요동쳤다. 온갖 악에 깔려있다가 홀로 탈출하지 못한 건 '희망'이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왜 희망까지 악으로 묶은 걸까. 헤시오도스는 판도라가 남긴 희망을 '마지막 재앙'으로 정의했다. 인간이 종종 품는 헛된 희망은 질병과 증오, 배신만큼 해롭다는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소설 '파우스트'에서 희망을 놓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일이다. 고로 희망은 악"이라고 해석한다. 인간은 희망 때문에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다. 그러고선 미래가 되면 더 먼 미래를 바라보며 또 고통받는다는 분석이다. 판도라는 하필 그런 희망을 풀어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인간은 악의 농락 속에서도 계속해 헛된 희망을 품게 됐다는 말이 있다. 다만, 판도라가 희망이라도 간직해줬기에 인간이 절망적 미래에도 꿋꿋이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월터 크레인, 판도라
“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쥘 조제프 르페브르, 판도라

월터 크레인은 뒤늦게 뚜껑을 닫은 판도라의 모습도 묘사했다.

절망에 젖은 그녀는 축 늘어졌다. 세상은 이미 변하기 시작했다. 당장 바깥에선 나무가 뽑힐 듯 요동치는 모습이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쥘 조제프 르페브르가 그린 판도라는 참혹하고도 눈물겹다. 초점을 잃은 두 눈, 뒤늦게 뚜껑에 얹은 손에서는 후회와 상실감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녀 주위에는 이미 짙은 어둠이 내리 깔렸다. '판도라의 상자'는 이제 재앙의 근원과 같은 뜻을 갖게 된다. 진작에 알지 말았어야 할, 알리지도 말았어야 할 모든 것을 의미하게 된다.

"거봐, 역시나!"

올림포스 산에서 판도라를 지켜보던 제우스가 킬킬댔다. "이렇게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었군. 내가 한 게 아니야. 인간이 알아서 재앙을 자초한 것이야."

신의 심판

“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윌리엄 터너, 눈보라(눈폭풍,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과 그의 군대·'판도라' 내용과는 관련 없음)

판도라는 뒤늦게 뉘우쳤지만, 이때는 늦었다.

에피메테우스 또한 프로메테우스의 충고를 떠올리며 뒤늦게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밑 세상은 엉망이었다. 인간은 걸핏하면 싸우고, 훔치고, 죽였다. 패싸움을 벌이고, 전쟁도 피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뭘 더 갖겠다며 나무를 베고 꽃을 꺾었다. 땅은 동물의 피로 얼룩졌다. 바다에는 기름 덩어리가 둥둥 떠다녔다. 끝까지 인간 편에 섰던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디케)마저 인간을 버렸다.

제우스는 이 광경을 잠자코 지켜봤다.

그는 갑자기 모든 신을 불러 모았다. "지옥과 다름없는 저 꼴을 어찌하면 좋겠소." 제우스가 신들에게 물었다. 제우스는 여전히 인간이 미웠다. 이미 신들에게 듣고 싶은 답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를 보고 있는 신 모두 시큰둥했다.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어떻소?" 제우스가 말했다. 나머지 신들은 그 말에 놀라지 않았다. 이럴 줄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모두 동의하는 걸로 알겠소." 그 순간 제우스가 번쩍였다. 그는 어느새 번개를 쥐고 있었다. 제우스 주변으로 먹구름이 끝없이 몰려왔다. 모여든 구름은 저마다 부딪치며 비를 마구 쏟았다. 하늘 곳곳에 수백, 수천개의 폭포가 생긴 듯했다.

“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윌리엄 터너, 눈보라(항구를 나서는 증기선·'판도라' 내용과는 관련 없음)

이건 시작이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삼지창을 꺼냈다. 바다에 깊이 쑤셔 박았다. 그러자 물결이 역류했다. 집채만한 파도가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집어삼켰다. 물에 잠기지 않은 산 하나 없고, 물에 떠내려가지 않은 건물 하나 없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여전히 코카서스 산에 묶여 간을 내어주고 있고, 녀석의 농간에 놀아난 인간들은 온갖 악을 뒤집어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제우스는 이제야 만족한 듯했다. 완벽한 복수를 행한 것이었다. 그런데, 물바다가 된 세상에서 웬 정체 모를 배 한 척이 아슬아슬 떠다니고 있었다. 그 배에는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이 타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데우칼리온'의 이야기는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1849 ~ 1917)

그리스 로마 신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시인 테이슨의 시 등에서 작품 소재를 구해 화폭으로 옮긴 19세기 영국 화가다. 비극적 운명을 맞은 여성을 절절하고 신비롭게 표현하는 데 독보적 실력이 있었다. 초기에는 로렌스 앨마 태디마 풍의 고전적 화풍을 구사했지만, 원숙기에 들어서는 라파엘 전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쥘 조제프 르페브르(Jules Joseph Lefebvre·1836~1911)

프랑스 출신으로 특히 여성 누드화를 잘 그리는 화가였다. 예술과는 크게 관련 없는 빵집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타고난 재능으로 살롱전 1위, 파리 만국박람회 그랑프리 상,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거머쥐었다. 입지를 다진 후에는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다. 월터 크레인(Walter Crane·1845~1915)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존 에버렛 밀레이 등을 이은 영국의 라파엘 전파(前派) 2세대 화가로 꼽힌다. '라파엘로 이전 시대로 돌아가자'는 이름답게 크레인 또한 대상의 이상화, 완벽한 구도 등을 거부하고 대상의 자연스러운 재현을 추구했다.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아 '디자인의 기초', '선과 형태' 등 저서를 남겼다. 후에 맨체스터 예술학교 감독에 오르기도 했다. 〈참고 자료〉

헤시오도스, 신통기, 민음사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민음사

〈후암동 미술관 작품 편 읽는 순서〉

1)“내 딸이 얼어죽을뻔 했어!” 식은 욕조에 女모델 뒀다가 소송갈 뻔한 사연[후암동 미술관-존 에버렛 밀레이 편] - 오필리아 (2023. 9. 2.)

2)“그녀 남친을 제가 죽였어요” 짝사랑 훔쳐보던 괴물, 무슨 짓을 벌였나[후암동 미술관-오딜롱 르동 편] - 키클롭스 (2023. 9. 16.)

〈후암동 미술관 신화 편 읽는 순서〉

1)“독수리가 간 쪼아도 참는다” 최악고문 받는 男, 무슨 사연[후암동 미술관-프로메테우스 편] (2023. 9. 9.)

2)“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2023. 9. 23.)

〈후암동 미술관 현대미술 편 읽는 순서〉

1) “벌거벗은 女로 우릴 조롱” 욕이란 욕 다 먹었다[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최초의 모더니스트(모더니즘①) (2023. 6. 24.)

2)“11살 연하女와 비밀연애, 자식도 낳았다고?”…10년 숨겼다 ‘들통’[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현대미술 창시자(모더니즘②) (2023. 7. 1.)

3)“나체女에 웬 아프리카 가면?” 얼빠졌다 조롱당한 그의 ‘반전’[후암동 미술관-파블로 피카소 편] - 희대의 반항아(입체파) (2023. 5. 20.)

4)“무자비한 짐승男인 줄 알았는데” 쫙 빼입은 신사 등장, 모두 놀랐다[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행복의 야수(야수파) (2023. 8. 26.)

5)“내 이름은 로즈” 여장남자된 30대男 전말…‘빅픽처’ 있었다[후암동 미술관-마르셀 뒤샹 편] - 열정의 탐험가(레디메이드·개념미술) (2023. 6. 10.)

6)“외간여성과 시속 120km 광란의 음주질주” 즉사한 男정체 보니[후암동 미술관-잭슨 폴록 편] - 미국의 신화(액션페인팅) (2023. 7. 15.)

7)시뻘건 내 피와 교감해보겠나…울든, 기절하든 그대 마음[후암동 미술관-마크 로스코 편] -교감의 마술사(추상표현주의) (2023. 6. 17.)

8)“나나 네 엄마나 죽느냐 사느냐한다” 190㎝ 키다리 아저씨, 딸에게 한 고백[후암동 미술관-김환기 편] -붓을 든 시인(추상표현주의 특별편) (2023. 8. 19.)

9)“관음男-노출女가 만났네요” 조롱…둘은 ‘환상의 짝꿍’이었다[후암동 미술관-살바도르 달리 편] - 위대한 쇼맨(초현실주의) (2023. 7. 8.)

10)“여자랑 사느니 맹수랑 살겠다” 아내앞서 폭언…‘전쟁같은 사랑’을 한 부부[후암동 미술관-에드워드 호퍼 편] 고독의 화가(불모지) (2023. 8. 5.)

11)“난 고깃덩어리, 죽으면 시궁창에 던져버려” 폭탄발언…그는 ‘인간중독’이었다[후암동 미술관-프랜시스 베이컨 편] 고통의 화가(외딴섬) (2023. 7. 29.)

12)“죽일거야” 그녀가 쏜 3번째 총알이 몸 관통…죽다 살아났지만[후암동 미술관- 앤디 워홀 편] - 위대한 악동(팝아트) (2023. 6. 3.)

13)“흑인의 삶 어때?” 무례한 공격들…마돈나도 반한 27살男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장 미쉘 바스키아 편] - 자유의 반군(신표현주의) (2023. 5. 27.)

14)“엄마가 사라졌다, 속이 시원했다”던 그녀도 실종…1년뒤 ‘뜻밖’의 발견[후암동 미술관-아그네스 마틴 편] - 홀로 선 은둔자(미니멀리즘) (2023.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