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전세계 반도체 설비투자가 4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란 관측이 나왔습니다. 불경기가 장기화되면서 내로라하는 주요 업체들도 지갑을 닫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 역대 최대 규모의 설비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위기일수록 투자를 늘려 초격차를 더욱 벌리겠다는 전략입니다. 연구개발(R&D) 뿐 아니라 대형 인수합병을 위한 실탄 확보에 나서고 있어 향후 투자 행보에 관심이 쏠립니다.
4년만에 줄어든 반도체 설비투자…10년만에 최대 하락폭
20일(현지 시각)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세계 10개 반도체 기업의 올해 투자 규모는 1220억달러, 한화 약 164조원으로 전년 대비 16% 감소했습니다. 조사 대상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TSMC, UMC, 글로벌파운드리,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인피니언테크놀로지,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키옥시아·웨스턴디지털 등입니다.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설비투자가 전년 대비 줄어든 건 2019년 이후 처음입니다. 특히, 투자 감소폭은 지난 10년 중에서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반도체 불황으로 무서운 속도로 재고가 쌓였고, 지난해에 10개사의 투자 총액이 1461억달러(약 196조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기저효과로 작용했습니다.
10개사 중 투자를 줄인 업체는 모두 6곳입니다. 미국 인텔과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키옥시아홀딩스의 합작회사, 그리고 SK하이닉스입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설비투자를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올 상반기에만 25조원 투자…남다른 삼성, 초격차 의지
그런데 이 와중에 삼성전자는 오히려 투자를 크게 늘려 눈길을 끕니다.
삼성전자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설비 투자 규모는 25조2593억원으로 전년 동기(20조2519억원) 대비 약 24.7% 늘었습니다. 이중 92%를 반도체에 투자했습니다. 연구개발비도 13조 777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12조1771억 원 보다 13.1% 증가했습니다.
전세계 반도체 업체들이 투자를 대폭 줄이고 있는 것과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올 상반기에만 9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는데, 위기일수록 오히려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최근 삼성전자는 가지고 있는 주식 지분까지 매각하며 ‘실탄’ 확보에 한창입니다. 최근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 지분 일부를 매각해 3조원 규모의 현금을 확보했습니다. 중국 전기차업체 BYD의 주식 238만주(약 1152억원, 지분율 0.1%), 국내 장비회사 에스에프에이 주식 154만4000주(약 676억원, 지분율 4.4%)도 매각했습니다. 올 2월에는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단기 차입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죠.
해외법인에서도 본사로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 해외법인이 본사로 보낸 수익금은 21조8457억원에 이릅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1378억원에 불과했는데, 158배나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투자를 위해 여기저기서 ‘싹싹 긁어모은’ 셈입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렇게 모은 돈을 반도체 초격차를 위한 설비 투자 및 대형 인수합병(M&A)에 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여러번 굳건한 투자 의지를 피력한 바 있습니다. 지난 2월 반도체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재 양성과 미래 기술 투자에 조금도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던 것이 대표적입니다.
앞서 예고했던 빅딜도 점차 가시화될 전망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1월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의미있는 M&A를 향후 3년 내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언급한 기한이 내년 1월로 다가왔지만, 아직 이렇다 할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올 들어 여러 방면에서 투자금을 모으고 있는 만큼, 연내 대략적인 청사진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나옵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3월 신제품 발표 행사에서 “(빅딜이) 조금씩 성사되고 있다. (연내 인수가 목표지만) 상대방의 입장도 있기 때문에 잘 맞춰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