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TV·스마트폰 위주의 디스플레이 시장은 완전히 포화 상태입니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의 기술 선도도 중요하지만, 아예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에 집중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디스플레이 전문가들)
TV·스마트폰 위주로 성장해오던 디스플레이 시장에 확연한 정체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모멘텀이 없어 성장은 멈췄는데, 기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아예 ‘새 판 짜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XR(혼합현실) 기기, 자율주행차, 로봇 등 새로운 디스플레이 제품을 창출해 글로벌 시장 자체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2대 국가전략기술 전문가 연속 간담회-디스플레이’에서 김재현 한국기계연구원 나노역학장비 연구실장은 “과거 디스플레이 시장의 성장은 TV가 주도했고, 이후 정체기를 맞았다가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다시 성장세를 이어갔다”며 “하지만 2021년부터 전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은 멈춰섰다”고 말했다.
박찬우 ETRI 초실감메타버스연구소 본부장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디스플레이 시장 자체가 포화돼성장할 여지가 별로 없다”며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시장과 수요가 창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지난 2021년 중국에 ‘세계 디스플레이 1위’ 자리를 내줬다. 기술 진입장벽이 낮아진 LCD 패널 시장을 중국이 점령하기 시작했고, 저가 공세로 빠르게 점유율을 늘려갔다. 한국은 고부가가치 제품인 OLED 패널 시장을 독점하는 방향으로 돌파구를 찾았지만 최근 OLED 격차 역시 빠르게 좁혀지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스톤파트너스에 따르면, 2021년 한국과 중국의 중소형 OLED 시장점유율은 각각 79%, 21%로 나타났다. 하지만 올해 예상 점유율을 한국 61%, 중국 39%로 추정된다. 옴디아 조사에서도 올해 1분기 삼성디스플레이의 중소형 OLED 시장 점유율(매출 기준)은 54.7%로 집계됐다. 2022년 내내 60%대를 유지하다가 소폭 하락했다. 반면, 중국 BOE의 점유율은 지난해 4분기 13.9%에서 올 1분기 19.2%로 상승했다. LG디스플레이를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패러다임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과의 OLED 경쟁에서 우위를 점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TV나 스마트폰 중심의 패널 시장이 포화 상태나 다름 없다는 이유에서다. 완전히 새로운 디스플레이 제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현 연구실장은 “2021년 기준 한국과 중국이 전체 디스플레이 시장의 74% 가량을 차지하며 전체를 주도 하고 있다”며 “고정된 파이에서 중국과 한국 중 누가 비중을 더 차지하냐도 중요하지만, 추가적인 디스플레이를 창출해서 시장 자체를 성장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시장을 확대시킬 새로운 분야로는 XR 기기, 3D 입체 패널, 마이크로 LED, 반사형 아웃도어 패널, 센서 융합 디스플레이 등이 꼽혔다.
최근 애플이 MR 헤드셋 ‘비전 프로’를 공개하며 성장 기대감이 높아진 XR 기기 시장에서는 온실리콘(on-Si) 디스플레이가 핵심이다. 기존 유리 기판이나 폴리이미드(PI) 기판이 아닌 실리콘 웨이퍼 위에 OLED를 증착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다.
박찬수 본부장은 “디스플레이 패널과 그 패널을 사용하는 기기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전방산업이 융합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며 “센서가 융합되면서 디스플레이 자체의 융합화·지능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대만이 OLED를 넘어 차세대 기술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조성경 산업통상자원부 디스플레이가전팀장은 “OLED 패널 시장 진입에 기술 장벽이 있다 보니 중국과 대만에서 새로운 고부가 패널 시장을 노리고 있다”며 “마이크로LED·나노 LED 등 차세대 기술에 연구·개발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4년 내 세계 1위 디스플레이 자리를 탈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차세대 디스플레이 연구개발(R&D) 및 생산라인 증설에 65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투명·XR·차량용 등 3대 디스플레이 미래 먹거리로 꼽고 관련 신시장 육성에 향후 5년간 약 740억원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5000억원 이상의 정부 R&D를 투자, 소부장 자립화율을 80%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