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더 날카로운 ‘매파(긴축 선호)’ 발톱을 꺼내 들며 좀처럼 식지 않고 있는 시장을 겨냥하고 나섰다. 사실상 금리 인상 사이클이 종료됐다며 랠리를 이어가고 있는 시장을 향해 ‘2연속 금리 인상도 가능’하다는 강경 발언을 내놓으면서다.
파월 의장의 발언이 현실화 될 경우 기술주 중심의 급등 후 조정장을 지나고 있는 미 증시의 ‘숨고르기’는 좀 더 길어질 수 있단 목소리가 나온다.
여기에 역대 최대 수준인 한미 금리차가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아진 데 따른 외국인 투자금 유출 가능성이 상승할 수 있다는 점도 국내 증시엔 악재가 될 전망이다.
파월 “연이은 금리 인상 고려 대상서 제외 안해”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28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포럼에 패널로 참석해 “연이은 (FOMC) 회의에서 (금리를) 움직이는 방안을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을 것”이라며 연준이 두 차례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하더라도 연속 인상보다는 인상과 동결을 차례로 반복하며 시장 영향을 신중히 관찰할 것이라는 관측이 틀릴 수 있다고 시사했다.
이는 지난 14일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연준이 내놓은 성명서를 더 구체화한 것이다. 앞서 연준은 6월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대신 기준 금리를 5.50~5.75%까지 올리는 내용을 담은 점도표를 공개한 바 있다. 연내 최소 2회 ‘베이비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연 것이다.
파월 의장은 이날 인플레이션이 이토록 오래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놀랍다”며 “제약적 (통화)정책이 충분히 오랫동안 제약적이었던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 비용이 비주거 서비스 물가를 끌어올린 “최대 요소가 되고 있다”며 “매우 강력한 노동시장”이 인플레이션 고착화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일부 시장의 낙관론에 대해 경계하며 경기침체 가능성이 상당하다고도 했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파월 의장의 이날 발언에 대해 연준이 오는 7월과 9월 FOMC 정례회의에서 연속 금리인상에 나설 수도 있다는 신호를 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에서 마감 시점 연준이 7월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은 18.2%를,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은 81.8%에 달했다.
뉴욕증시 전문가들, ‘파월 매파 발언이 지수 상단 제한’ 평가
예상을 뛰어넘는 파월 의장의 매파 발언에 미 뉴욕증시(NYSE)도 혼조세를 보였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중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제재 가능성 등은 뉴욕증시를 더 끌어내리는 요인이 됐다.
28일(미 동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74.08포인트(0.22%) 하락한 33,852.66으로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장보다 1.55포인트(0.04%) 떨어진 4,376.86으로, 나스닥지수는 전장보다 36.08포인트(0.27%) 오른 13,591.75로 장을 마감했다.
뉴욕증시 전문가들은 파월 의장의 매파적 발언이 지수 상단을 제한했다고 말했다. 또한 연준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시장의 변동성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보케 캐피털 파트너스의 김 포레스트는 미 CNBC 방송에 “시장은 4대 중앙은행(美 연준·유럽 ECB·英 영란은행·日 일본은행) 총재들의 발언을 소화하고 있다”며 “시장이 정말로 더 오르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우리는 더 오래 더 높은 금리가 필요하다’는 당국자들의 발언이 오늘 저항선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커먼웰스 파이낸셜 네트워크의 크리스 파시아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마켓워치에 “연준이 무엇을 할지, 얼마나 더 인상할지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연준 뉴스와 연준 당국자 발언에 따라 시장에서 이와 같은 변동성은 계속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韓美 금리차 2.25%P까지 벌어질 수도…투자금 유출?
파월 의장의 매파 발언은 최근 2560대까지 밀리며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국내 증시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리 인상에 민감한 미 기술주가 약세를 보이게 될 경우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내 증시 역시 하방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AI 반도체 붐에 힘입어 최근 급등세를 보였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주는 물론이고 네카오(네이버+카카오) 부진의 골도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역대 최대 수준인 한미 금리차가 더 벌어지는 것도 큰 부담이다.
7월 말 미국이 금리를 올릴 경우 한미 금리 격차는 현재 1.75%포인트에서 2%포인트로 벌어져 역대 최대 금리차를 다시 쓰게 된다. 파월 의장의 경고대로 두 차례 베이비스텝을 밟을 경우 2.25%포인트까지 격차가 늘 수도 있다.
금리차 확대에 따른 외국인 투자금 유출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상반기 국내 증시 랠리를 떠받친 주요 축 중 하나가 외국인 투자자의 강력한 순매수세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고민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지난 23일 연준의 긴축 우려에 따라 2주 만에 다시 1300원대로 진입한 것도 자본 유출 가능성을 더 높이는 요인이다.
일각에서는 물가나 경기 둔화 등 국내 요인 때문에 추가 금리 인상에 신중했던 한국은행이 추가 인상 카드를 만지작할 가능성에 조심스레 저울질해 보는 모습도 관찰된다.
다만 연준이 추가 2회 인상을 시사한 반면 정작 시장에서는 인상이 다음 달(1회)에 그칠 것이라고 보는 점, 하반기 수출 개선 시 환율 안정 가능성도 존재하는 점 등이 한은의 실제 인상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금통위가 7월 실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낮으며 만일 동결한다면 인상 소수의견 정도는 제시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일시적으로 주춤할 수는 있지만 원화는 지금보다 한 단계 추가 절상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면서 “7월 금리 인상이 단행되고 나면 그 이후 연준 통화 정책에 대한 우려는 빠르게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JP모건 전략가 “기준금리, 하반기 최대 6.5%” 발언 회자
한편, 파월 의장이 금리인상 사이클을 멈추지 않을 것이란 의지를 보이면서 지난해 12월 JP모건의 한 전략가가 제시했던 분석이 다시 한번 회자되고 있다.
니콜라오스 파니기르초글루 JP모건 전략가는 자신의 고객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훨씬 더 견조한 흐름을 유지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예상보다 더 뜨거울 경우 미국의 최종금리가 상향 조정될 수 있을 것”이라며 “시장 관계자들의 예상치인 5%를 훌쩍 넘어 내년 하반기에는 최대 6.5%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더 관심을 끈 부분은 JP모건이 해당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을 월가 전문가들보다 2.8배나 높게 평가했다는 점이다.
파니기르초글루 전략가는 “월가에서 미국의 최종금리 6.5% 도달 가능성을 10%로 예상하고 있는 것도 결코 낮지 않은 확률인데, JP모건이 해당 시나리오를 분석해 본 결과 가능성이 28%에 달했다”면서 “연준이 가장 최근 기준금리를 6.5% 수준으로 유지했던 2000년대처럼 대부분의 자산이 흘러 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금융정보업체 모닝스타 등에 따르면 해당 서한의 내용은 일명 ‘아마겟돈(Armageddon·종말)’ 시나리오로 불렸다.
다만, 미 연준이 제시한 점도표와 파월 의장 등 연준 주요 인사들의 발언을 고려해볼 때 이 같은 극단적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