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최근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노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시장에서는 MZ(밀레니얼+Z)세대나 알파세대 등 젊은 층에 대한 관심만 높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우수경력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지낸 수전 윌너 골든은 미국에서만 하루에 65세 인구가 1만명씩 늘어나는 상황에서 MZ만 믿어서는 사업의 기회를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저자의 말처럼 아프리카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노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인구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은 오는 2035년 65세 인구 수가 18세 미만 인구 수를 추월하고, 205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50세 이상의 인구가 지금의 2배인 32억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세계 최고령 국가인 일본은 이미 국민의 3분의 1이 65세 이상 노인이며, 한국 역시 2020년 현재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6%를 넘어섰다.
이처럼 노령인구의 급증으로 장수 시장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 시장에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연령 차별주의가 심화되면서 노령층 성인의 구매력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팽배해졌다. ‘나이 듦’이 은퇴와 질병 등과 등치되며 노령층 성인들을 건강하지 못하고 구매력도 없는 ‘뒷방 늙은이’로 취급한 것이다.
하지만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생물학적 수명은 물론, 건강 수명도 늘면서 70~80대에도 여전히 운동을 즐기고, 은퇴 후 재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하는 액티브 시니어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같은 75세라도 어떤 사람은 병들고 가족의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지만, 또 다른 사람은 ‘제2의 인생’을 위해 재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하는 등 활발하게 경제 활동을 한다. 이들의 나이가 같다고 같은 소비층으로 묶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따라서 60대 이상을 실버 시장이나 시니어 마켓 등 단일 시장으로 보기 보다 18개의 다양한 ‘단계’로 분류해 입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실제 23개의 시장 선도 기업들의 사업 전략 분석을 통해 이같은 고객 분류가 얼마나 효용이 있는 지 설명한다.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스포츠 의류업체 나이키다.
나이키는 지난 2019년 10월 ‘크루저원’이라는 신제품을 출시했다. ‘슬로우 러너(Slow Runner)’들을 위해 고안된 이 제품은 뒤축, 중창, 앞면을 재설계해 착지할 때 하중이 뒤축에 더 실리게 하고, 앞으로 굴러가는 움직임을 유도해 속도를 내 달리지 않더라도 추진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나이키 제품 중 가장 발이 편한 모델로 꼽힌다.
크루저원은 전설의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가 육상선수 출신이자 나이키의 창업자인 필 나이트로부터 “아직도 뛰고 있지만, 움직임이 느려졌다”는 말을 듣고 설계한 제품이다. 필 나이트가 80대 중반임을 고려하면 이 제품은 시니어를 겨냥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제품 설명 어디에도 나이와 관련한 설명은 없다. 덕분에 70~80대 노인은 물론, 편한 신발을 원하는 20~30대도 이 제품을 찾는다.
즉 ‘목표 고객’을 연령으로 구분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선수가 되고 싶은 고객’으로 설정해 시니어 고객 뿐아니라 오래 서있거나 걸어야 하는 젊은 고객들도 찾는 범용 제품이 됐다. 시니어 고객으로부터 얻는 높은 충성도는 덤이다.
진짜 돈 되는 시장/수전 윌러 골든 지음·이희령 옮김/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