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2053년 12월 25일. 파리의 거리는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가 나기 보다 뭔가 분주하고 정신이 없다. 사람들로 가득찬 시내는 인파의 흐름에 몸을 맡기지 않으면 튕겨나갈 정도로 혼잡하다. 한 겨울인데도 기온은 섭씨 43도가 넘어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로 뜨겁다. 가판에 놓인 신문엔 전세계 인구가 150억 명을 넘었고, 식량난 때문에 발발한 제3차 세계대전은 무분별한 핵무기 사용으로 수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프랑스 천재 작가’로 불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4년 만에 신간 ‘꿀벌의 예언’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그가 묘사하는 미래의 지구는 50년, 100년이 아니라 30년 밖에 지나지 않은 가까운 미래인데도 어떤 예언서나 SF(사이언스픽션) 소설보다도 암울하다. 하지만 기후재앙이 세계 곳곳에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 기반을 두다 보니 어떤 논픽션 보다도 사실적이다.
과학교사 아버지, 역사교사 어머니 덕에 과학과 역사 지식이 풍부한 주인공 르네는 최면술쇼에서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다녀올 수 있는 새로운 최면을 시도, 일부 성공한다. 하지만 그의 최면술로 미래에 다녀온 관객은 통제된 상황에서 전생의 나나 미래의 나를 만났을 때 보였던 만족스러운 표정과 달리 공포에 질려 체면에서 깨어난다. 심지어 최면을 통해 만난 미래의 나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보여준 것 자체가 인류의 미래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꿀벌의 예언’이라는 예언서에 적혀있다는 말을 들은 르네는 이 책을 구하기 위해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고군분투한다. 1000여년 전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출정한 십자군 기사가 쓴 이 예언서는 사실 전생의 르네가 썼던 책이었다. 최근 영화나 소설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생과 멀티버스가 베르베르의 신작에서도 서사를 진행시키는 주된 기재로 작용하는 셈이다.
인류가 이같이 짧은 시간에 대재앙을 맞게 된 것은 꿀벌의 멸종과 연관이 있다. 인간이 소비하는 식물의 80%가 꽃 식물이며, 꽃식물 수분(수술의 화분(花粉)이 암술 머리에 옮겨 붙는 일)의 80%를 꿀벌이 한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꿀벌이 사라졌으니 인류는 식량난에 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멸망하지 않기 위한 해법의 힌트가 바로 꿀벌에 있는 것이다.
실제로 베르베르가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얘기했던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순간 인간에게 남은 시간은 4년 뿐이다”라는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 지난 5월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한 여름 날씨가 출현하고, 꿀벌의 집단 폐사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이때 베르베르의 신작은 소설 속 허무맹랑한 이야기 만은 아닌 듯 보인다. 특히 그의 전작을 통해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아닌, 다른 눈높이에서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 그가 이번에는 꿀벌의 눈에서 인간의 문명을 바라보는 시선은 새롭다.
꿀벌의 예언 1, 2/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전미연 옮김/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