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테슬라에 이어 현대자동차와도 가시적인 협력을 발표했습니다. 오는 2025년을 목표로 현대차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프로세서를 공급할 예정입니다.
차량용 반도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시스템반도체 1위’ 꿈을 이루기 위한 핵심이기도 합니다. 3년 안에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시스템 반도체 중 가장 단기간에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먹거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반도체 분야에서 소극적이던 LG전자 마저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출사표를 던질 정도입니다.
TSMC를 넘어 시스템반도체 정상을 차지하겠다는 이 회장의 꿈. 정말 실현될 수 있을까요? 오늘 칩만사는 글로벌 기업들의 격전지가 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삼성전자-현대차, 드디어 차량용 반도체 협력 ‘물꼬’
7일 오전 삼성전자는 깜짝 발표를 했습니다. 현대자동차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손잡고, 2025년을 목표로 현대차에 자사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IVI)용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오토 V920’을 공급한다는 내용입니다. 삼성전자가 현대차에 차량용 반도체를 공급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현대차그룹과 삼성전자는 지난 2009년 ‘자동차-반도체 상생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맺고 차량용 반도체를 공동 개발한 역사도 있습니다. 이후 2012년에는 현대 그랜저 HG의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 시스템’이라는 장치에 삼성전자에서 만든 반도체 칩이 탑재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삼성이 자동차업계에 다시 발을 들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던 탓인지, 양사의 협력이 꾸준히, 그리고 활발하게 이어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다시 양사의 반도체 협력설이 돌기 시작한 건 지난 2021년 전세계적으로 자동차 반도체 수급 문제가 불거졌을 때입니다. 당시 정부가 꾸린 ‘미래차-반도체 연대·협의체’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모두 포함되면서 양사가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손을 잡을 것이라는 협력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특히, 자율주행차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이같은 전망은 힘을 얻었습니다. 통상 자율주행차에는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전기차에는 1000개 가량의 반도체가 탑재된다고 합니다. 일반 내연기관 차량에 필요한 반도체(200~300개)의 최대 10배인 셈이죠. 이젠 삼성전자도, 현대차도 서로가 필요한 시점이 도래해 양사의 협력이 물꼬를 텄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시스템 반도체 2030’ 비전 속 핵심 역할
차량용 반도체는 삼성전자 전체에게도 중요한 제품입니다. 이재용 회장이 앞서 찜한 4대 주요 미래 먹거리 중 하나이자,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꼭 필요한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이 회장은 2019년 ‘시스템반도체 2030’이라는 비전을 선포하며 파운드리 뿐 아니라 AI 반도체, 차량용 반도체에서도 선두 자리에 오르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 중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단기간 빠르게 성장한 곳입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올해 자동차 반도체 시장이 전년 대비 13.8% 성장한 769억 달러(101조6618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옴디아도 지난 2021년 500억 달러(약 67조원)이던 세계 차량용 반도체 매출이 2025년 840억 달러(약 112조원)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차량용 반도체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무려 2000개 가량의 반도체가 차량에 탑재되기 때문에 다양한 설계자산이 적용된 칩을 수주받아 제작하는 파운드리 역할도 중요합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모빌아이, 암바렐라 등 주요 기업들의 차량용 반도체를 도맡아 생산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자체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AP 설계를 하고 있는 테슬라를 주요 파운드리 고객사로 두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2019년부터 14나노 기반 완전자율주행(FSD)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재용 회장이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만나 화제가 됐습니다.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있는 삼성전자 북미 반도체연구소에서 이재용 회장은 머스크 CEO를 포함한 테슬라 주요 경영진과 만나 첨단 차량용 반도체를 포함한 미래 첨단산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두 거물급 인사의 회동으로 삼성과 테슬라의 자율주행 반도체 기술 동맹이 공고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안전과 직결, ‘신뢰도’ 중요…LG도 참전?
삼성전자의 강점은 자율주행(AD), 첨단주행보조시스템(ADAS), 인포테인먼트(IVI) 등 다양한 부품에 필요한 최적의 메모리 솔루션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차량용 반도체는 운전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제품인 만큼, 브랜드 신뢰도도 매우 중요합니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 고객으로 아우디,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두고 있습니다. 2017년 아우디에 ‘엑시노스 오토 8890’을 공급했고 2021년 폭스바겐에 ‘엑시노스 오토 V7’을 탑재했습니다. 이번 현대차에 ‘엑시노스 오토 V920’을 공급하면, 주요 완성차 업체 대다수에 삼성 차량용 반도체 칩이 탑재될 예정입니다.
한편, LG그룹도 최근 차량용·AI 반도체 관련 사업을 발표하고 있어서 반도체 사업에 재진출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LG AI연구원은 7일 AI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 퓨리오사AI’와 파트너십을 맺고 초거대 AI 모델을 구동할 수 있는 차세대 AI 반도체 개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LG전자가 캐나다의 AI 컴퓨팅 설계기업 ‘텐스토렌트’와 손잡고 AI 반도체 개발에 나선다고 한지 약 1주일 만입니다. LG전자는 지난해 5월 독일의 시험·인증전문기관인 TUV라인란드로부터 차량용 반도체개발 프로세스에 대한 'SIO 26262' 인증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난 1999년 반도체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던 LG그룹이 반도체 사업을 재개할지 관심이 쏠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