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순위 7,9위 두 그룹의 미래 짊어진 라이벌
아버지부터 이어진 인연 주목
조선·우주·에너지·로봇·AI 등 무한경쟁 예고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헤럴드경제=양대근·김은희·한영대 기자]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의 재계 순위는 7위와 9위입니다. 닮은 점은 더 많습니다. 두 그룹 모두 승계 구도가 뚜렷하고 사업 영역도 상당 부분 겹칩니다. 무엇보다 동년배인 젊은 차기 총수들이 ‘미래 먹거리 확보’를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1982년생인 정기선 HD현대 사장과 1983년생인 김동관 한화 부회장이 바로 그들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크고 작은 경조사까지 챙길 만큼 재계에서도 ‘소문난 절친’으로 통합니다.
정 사장의 부친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김 부회장의 부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장충초등학교 동창이자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인연을 시작으로 대를 이어 두 사람의 각별한 친분 관계로 이어진 것입니다.
새롭게 태어난 한화오션, 조선 1위 HD현대에 도전장
하지만 최근 한화가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성공하면서 두 절친 사이에도 피할 수 없는 무한경쟁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글로벌 1위 조선사인 HD현대는 국내외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조선 빅3’로 함께 묶이긴 했지만 주인 없는 회사로 20년 가까이 운영됐던 옛 대우조선해양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한화오션이 한화그룹의 일원으로 합류하고 막강한 계열사들의 지원까지 받게 되면서 어느 때보다 큰 도전자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화오션은 액화천연가스(LNG), 수소·암모니아, 해상풍력 밸류체인(가치사슬) 등 조선과 에너지 사업의 시너지 창출을 통해 글로벌 해양·에너지 전문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습니다. 방산에서도 잠수함과 구축함 등 특수선 분야의 성장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에 맞서 HD현대는 신사업 분야에서 격차를 더 확대하겠다는 전략입니다. HD현대는 글로벌 환경규제에 대응한 ‘친환경 선박’과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미래 첨단조선소(FOS)’를 중심으로 미래 사업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업계의 패러다임 변화를 선도하고 제조원가에서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글로벌 1위 위상을 굳히겠다는 것입니다. 정 사장이 지난 1월 CES 2023에서 바다에서 미래 잠재력을 발견하겠다는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을 선언한 것도 HD현대의 친환경·기술력 분야 우위에 대한 자신감으로 풀이됩니다.
민간 우주 사업 주도하는 한화…HD현대 독보적인 기술력 선보여
우주 사업 분야에서도 양사의 물밑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021년 국내 인공위성 전문업체인 쎄트렉아이 지분을 인수했습니다. 쎄트렉아이는 현재 세계 최고급인 30㎝급 초고해상도 관측 기술을 갖춘 지구관측 위성 ‘스페이스아이-티’를 개발하고 있죠. 발사 목표 시기는 내년입니다.
또 다른 계열사인 한화시스템은 지상·공중 및 우주의 모든 플랫폼을 연결하는 통합 솔루션 개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역시 2021년에 영국 위성통신 서비스 기업인 원웹 주식 25만주를 3456억원에 매입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발사에서 ‘체계종합기업’으로 참여해 제작 총괄 관리를 맡은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으로부터 ‘누리호 고도화사업 발사체 총괄 주관 제작 사업’을 수주한 데 따른 것이죠. 앞으로 남은 3차례 발사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참여 범위는 더욱 확대될 전망입니다.
이에 뒤질세라 HD현대 계열사인 HD현대중공업은 3차 발사에서 ‘발사대시스템’ 운영지원을 전부 맡았습니다.
발사대시스템은 연면적만 약 6000㎡에 달하는 초대형 시설입니다. HD현대중공업은 기반시설 공사(토목·건축)를 비롯해 발사대 지상 기계 설비(MGSE), 발사대 추진제 공급 설비(FGSE), 발사대 발사 관제 설비(EGSE)까지 발사대 시스템 전반을 독자 기술로 설계·제작·설치하고 발사 운용까지 수행했습니다. 그동안 초대형 선박을 건조한 기술력과 경험이 발사대에 고스란히 담긴 것이죠. 이 모든 공정 기술을 100% 국산화에 성공한 것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에너지·로봇·AI까지…“절친의 맞대결, 앞으로가 더 기대”
로봇 분야는 앞으로 양사 더욱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HD현대의 로봇 계열사인 HD현대로보틱스는 현재 국내 1위 산업용 로봇 기업입니다. 산업용 로봇 외에도 호텔, 식당 등에 서비스 로봇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중국 장쑤성에 생산 기지를 설립하는 등 글로벌 시장 점유율 높이기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한화에서는 ㈜한화 모멘템 부문이 협동로봇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조선사들이 협동로봇 도입에 관심을 보이는 만큼 한화오션과 모멘템 부문 간 시너지가 예상됩니다.
에너지 분야도 불꽃튀는 경쟁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태양광 사업이 대표적인데요. 당장은 태양광에서 한화솔루션이 앞서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한화솔루션은 미국 태양광 모듈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입니다. 게다가 약 3조2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내 태양광 통합 생산단지 ‘솔라 허브’를 구축하고 있죠.
2027년까지 미국의 태양광 패널 수요 가운데 30%를 공급한다는 게 한화솔루션의 계획입니다. 인버터·ESS(에너지저장장치) 등 태양광 발전시스템 전반에서 점유율을 높여 토탈 에너지 솔루션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이에 맞서 HD현대에너지솔루션도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유럽·일본 등에 잇따라 태양광 모듈을 공급한 데 이어 최근에는 아프리카 시장에서 태양광 모듈을 처음으로 수주하며 영토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글로벌 태양광 전문 검증기관인 PV에볼루션랩스(PVEL)가 실시한 ‘2023 태양광 모듈 신뢰성 평가’에서 ‘톱 퍼포머’로 선정되기도 했죠. 원천기술인 초고효율 태양광 제품 개발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각 그룹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대와 AI(인공지능) 기술 개발, 핵심 인재 채용 등 그룹 운영 전반에 있어 김 부회장과 정 사장의 라이벌 구도는 한층 부각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 사장은 최근 HD현대 본사를 경기도 판교로 이전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를 통해 중공업 중심이라는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가족친화 기업으로 자리를 잡고 IT 분야 젊은 인재들을 끌어올 것으로 관측됩니다.
김 부회장은 지난달 1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통합 비전 선포식에서 임직원들과 직접 셀카를 찍으면서 소통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룹 내 주요 계열사들의 대표이사를 겸직하는 등 전략가적인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절친 두 사람의 무한경쟁이 앞으로 더 주목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