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X인터 92년생 상사맨 인터뷰
사업 모델, 사업 접근방식 등서 가장 큰 변화
“야근 NO” “경쟁보단 교류” 사내문화도 달라
‘3배 빠르게, 3배 강하게’ 신사업 등 속도낼 듯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약 10년 전인 2014년 드라마 ‘미생’을 기억하십니까? 직장인의 애환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죠.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주옥 같은 대사만큼이나 눈길을 끈 건 장그래와 오 과장, 김 대리의 회사생활이었습니다. 종합상사에서 일하는 그들의 매일을 통해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팔고 아프리카에서 신발을 판다’는 상사맨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죠.
한때 상사맨은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국가 수출의 선봉장으로 전 세계를 누볐죠. ‘라면에서 미사일까지, 이쑤시개에서 인공위성까지’라는 말처럼 그들은 돈이 되는 모든 것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상사의 입지는 좁아졌습니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각 기업이 글로벌화되면서 상사의 ‘중개’가 더는 필요하지 않아진 거죠.
그렇지만 어느 92년생 상사맨의 말을 빌리자면 “상사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트레이딩 외에도 자원개발, 사업투자, 현지 생산판매, 사업 기획·설계·수행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며 성장을 계속하고 있죠. 말하자면 ‘종합사업회사’로 변모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 상사는 미생 속 그때 그 상사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우리나라 대표 종합상사 LX인터내셔널에 근무하는 MZ(밀레니엄+Z)세대 상사맨에게 직접 들어봤습니다.
“그 시절 상사와 지금의 상사는 확연히 다르죠.” 지난달 26일 서울 모처에서 만난 이선형(31) LX인터내셔널 투자2팀 선임은 사내문화는 물론 사업모델과 사업 접근방식에서도 변화가 가장 많다고 했습니다.
우선 달라진 사내문화를 보면 파트너국 시간에 맞춰 밤늦게 소통해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있지만 야근이 더는 미화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팀 간 경쟁보다는 팀 간 상호교류를 통한 시너지 창출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죠.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줌(Zoom)을 통한 화상회의가 일상화되다 보니 ‘현장에 답이 있다’는 구호도 이제는 다소 희미해졌습니다. 소소하지만 회사에 ‘영업팀’이 따로 없다는 것도 미생과는 다른 점입니다.
그럼에도 상사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트레이딩은 아니지만 새로운 사업을 기획·발굴하고 수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결국엔 ‘세일즈’와 결을 같이한다는 겁니다. 돈 되는 물건을 파는 ‘만물상’이 돈 되는 사업을 하는 ‘비즈니스맨’으로 업그레이드됐다고나 할까요.
상사의 전통 영역인 트레이딩 부문이 줄어든 자리를 각종 신사업이 꿰차면서 중개무역회사의 정체성이 옅어졌다는 것도 큰 변화입니다. 일찌감치 뛰어든 자원 개발사업은 이미 회사의 핵심 캐시카우(수익창출원)가 됐죠. LX인터내셔널은 인도네시아를 주요 거점으로 석탄 광산을 개발·운영하고 팜농장 운영을 통해 팜오일도 글로벌 시장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것은 친환경사업입니다. 친환경 광물이나 소재, 신재생 발전 분야에 투자해 미래 에너지 분야 선도 사업자로 도약하겠다는 게 LX인터내셔널의 구상입니다. 트레이딩에서 자원으로 사업의 무게중심이 옮겨갔듯 앞으로는 친환경사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가 재구축될 것으로 회사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단독 사업보다는 스타트업 협업이나 벤처캐피털(VC) 투자, 합작사 설립 등을 통해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등 형태가 다양화됐다는 점도 눈에 띄는 변화입니다.
사업 접근방식의 변화도 큽니다. 과거에는 탄탄한 해외 네트워크와 풍부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개개인의 촉이나 감각에 의존해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네트워크의 제한이나 정보의 비대칭성이 사실상 사라진 지금은 정확한 데이터 분석과 다양한 정보의 융합을 통해 사업을 고안해내야 한다는 겁니다.
LX인터내셔널이 전문가 초빙 사내 특강이나 국내외 콘퍼런스, 각종 컨설팅과 교육 등 임직원의 인사이트(통찰력)를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올해에만 5번의 해외출장을 다녀왔다는 이선형 선임의 경우 현재 인도네시아 내 니켈광산 투자와 관련해 검토·실사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데요. LX인터내셔널은 2차전지 핵심 광물인 니켈을 미래 유망 광물로 점찍고 자원 개발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그는 앞서 탄소배출권사업과 스마트팜사업도 직접 구상·제안해 추진했는데 이 역시 모두 신사업군에 속합니다. 전통적인 트레이딩 업무에선 벗어나 있지만 회사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일을 해온 셈이죠.
LX인터내셔널을 포함한 상사업계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습니다. 높은 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의 영향이었죠.
그러나 올해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원자재 가격의 하향 안정화로 트레이딩 마진이 줄고 해상 운임지수까지 하락세를 보이면서 다소 부진한 실적을 이어가고 있죠.
LX인터내셔널의 올해 1분기 실적은 매출액 3조6700억원, 영업이익 161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영업이익 기준 34.2% 감소했습니다. 2분기에도 매출액 3조7500억원, 영업이익 1396억원으로 하향세를 이어갈 것으로 증권가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자원 시황 하락의 영향이 지속되면서 석탄 트레이딩 부문과 인도네시아 GAM 광산에서 부진한 실적이 예상된다는 게 공통된 분석이죠.
대외 환경이 매출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다 보니 상사업체로서는 다양한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안정적인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에 자체 사업을 확대하는 등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LX인터내셔널이 지난해 포승그린파워, 올해 한국유리공업을 연달아 인수한 것도 사업다각화를 위한 결단이었죠. 실제 올해 1분기 실적에도 포승그린파워와 한국유리공업의 온기가 상당 부분 반영됐습니다.
올해 시장 전망은 밝지 않습니다. 업계는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 축소로 전반적인 물동량이 줄어들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죠. 이에 신사업 성과가 실적 향방의 키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LX인터내셔널은 신사업 중에서도 니켈, 리튬, 규사 등 친환경 광물과 수력, 바이오매스(Biomass) 등 신재생 발전 분야에 각별히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니켈은 핵심 원재료를 확보하는 업스트림(Upstream) 분야를 중심으로 원재료를 가공해 기초소재를 공급하는 미드스트림(Midstream) 분야 등 2차전지 산업 밸류체인에 진입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친환경 에너지사업과 관련해선 우선 포승그린파워의 바이오매스 발전소 운영 역량을 내재화해 연료 공급사업에 진출하는 등 관련 밸류체인을 확장할 방침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선 하상(Hasang)수력 발전소를 운영해온 경험과 역량을 활용해 신규 민자 수력발전사업 참여를 계획하고 있죠.
아울러 LX인터내셔널은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외부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인오가닉(Inorganic) 전략을 이어가는 한편 기존 사업의 수익을 전략 사업에 투자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 경영안정성을 높여나갈 방침입니다.
생존을 위해 얼마나 빠르고 강하게 실행해나가야 하는지 몸소 체험했습니다.이제는 3배 빠르게, 3배 강하게 어쩌면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때로모든 일상을 근본부터 바꾸고 현장으로 돌아가 생동감 있는 움직임을 가속하겠습니다.윤춘성 LX인터내셔널 대표이사 사장의 올해 신년사에서
윤춘성 LX인터내셔널 대표이사 사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3배 빠르게, 3배 강하게’를 사업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지난 3월 제70기 정기주주총회에서도 “새로운 수익원 및 성장동력 육성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1953년 락희산업으로 출발해 70년간 변화와 성장을 거듭해온 LX인터내셔널이 종합상사에서 ‘미래 에너지 핵심 사업자’로 또 한 번의 도약을 해낼 수 있을지 올 한 해 발걸음을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