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의 남산공방] 한미 ‘워싱턴 선언’과 북핵 대처방안

날로 고도화하는 북한 핵 위협에 맞서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이때 함께 공개된 핵협의그룹(NCG) 창설 합의는 한미 양자회담이나 확장억제협의체에서 미국이 거론하기를 꺼렸던 미국 핵무기 운용에 대해 한국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공식적 채널이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워싱턴 선언’을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는 한층 더 강화됐다고 할 수 있다. 일견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 것이다.

이번 ‘워싱턴 선언’ 이전까지 국내에서 논의돼 온 북핵 대처방안은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미국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배치, 우리의 자체 핵무장과 핵 잠재력 보강 등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이 4가지 방안은 모두 미국의 동의와 공감이 있어야 원활하게 추진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가운데 이번 ‘워싱턴 선언’에서 미국은 확장억제 강화를 보장했다. 그와 함께 한국의 국제 핵비확산 체제 준수를 재확인하며 자체 핵무장방안은 배제됐고, 미국 전략핵잠수함 방한 등 전략자산 전개 약속을 통해 미국 전술핵무기 한반도 배치방안도 대체됐다.

이런 맥락에서 ‘워싱턴 선언’ 이후 당장 미국과 추가적으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북핵 대처방안은 핵 잠재력 보강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핵 잠재력 보강 방향은 오커스(AUKUS·호주와 미국, 영국의 삼국 동맹체)에서의 호주 방식처럼 핵추진 잠수함을 확보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일본 방식처럼 완전한 핵연료 주기능력을 갖추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국제 핵비확산 체제와 한미 원자력 협정이라는 제도 내에서 추진되려면 미국의 적극적인 공감과 지원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역사적으로 미국이 우리의 핵 잠재력 보강에 협력했던 경험도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대표적 사례로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과정을 들 수 있다. 1970년대에 한국은 핵무장을 하려 했었고, 그 상황을 인지한 미국은 한국이 핵무기와 핵 투발수단 확보를 포기하게끔 하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당시에 한국은 미국의 요구 속에서 국제 핵 비확산 체제 의무 준수와 함께 핵 투발수단인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는 한미 미사일 지침을 수용했다.

이때 미사일 지침의 존재 자체는 한국의 미사일 능력이 핵 잠재력의 일부분임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1998년 북한의 대포동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미국은 미사일 지침 완화에 동의하기 시작했고, 북한 핵위협이 고조되던 2012년에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증대가 허용됐다. 그리고 북핵 위력이 급성장하던 2017년에 한국 미사일의 탄두 중량 제한도 해제됐으며, 2021년에는 미사일 지침 자체가 종료됐다.

미사일이 지닌 핵 투발능력을 생각해본다면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과정은 한국의 핵 잠재력 보강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모두 미국의 동의와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 ‘워싱턴 선언’ 시대에 추가적인 북핵 대처방안인 한국의 핵 잠재력을 보강하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미사일 지침의 경험을 복기하며 미국과의 공감대를 이루기 위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공군대학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