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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은 축복 받은 일이지만, 육아는 특히 워킹맘에게는 지옥(hell)처럼 고된 일이기도 합니다.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워킹맘들의 고충과 도움이 되는 정보를 담겠습니다. 제보는 언제든 적극 환영합니다.

“아이 깨워 준비만 1시간인데”…유치원 9→8시 등원 ‘찬반팽팽’ [장연주의 헬컴투 워킹맘]
교육부가 제3차 유아교육발전 기본계획 및 제1차 한부모가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한 10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유치원 인근에서 어린이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 "출근시간 때문에 아이를 8시20분쯤 유치원에 데려다주는데, 아이들이 많지 않아 늘 마음이 불편하다. 등원시간이 8시로 당겨지면, 한결 나아질 것 같다."(맞벌이 학부모)

# "늘 일찍 오고 늦게 가는, 때로는 8시간을 근무하는 교사 보다 훨씬 오래 남아있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가두는 정책이 아닌 가정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정책을 해야 한다."(유치원 교사)

교육부가 내년부터 희망하는 유치원은 교육과정 시작을 오전 9시에서 8시로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학부모의 돌봄 수요를 고려한 조치이지만, 출퇴근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일찍 등원시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아이들을 어른의 시간에 맞추기보다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는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동 발달권 침해” vs “부담 줄어들 것”…찬반 논란

“아이 깨워 준비만 1시간인데”…유치원 9→8시 등원 ‘찬반팽팽’ [장연주의 헬컴투 워킹맘]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가 지난 4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3차 유아교육발전기본계획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

유치원 등원 8시 방침에 당장 유치원 교사들은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동조합을 주축으로 한 교사노동조합연맹 유아학교TF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9시에 시작되는 유치원 교육과정을 한 시간 앞당겨 8시에 시작하는 것은 아동 발달권 침해이자 인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달 10일 '제3차 유아교육 발전 기본계획(2023∼2027)'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학부모 돌봄 수요를 고려해 내년부터 희망하는 유치원은 교육과정 시작을 오전 9시에서 오전 8시로 앞당기고, 1학급짜리 소규모 병설 유치원은 3개 안팎을 통합해 단설 유치원급으로 규모를 키우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유아교육TF는 "무분별한 소규모 유치원 통폐합은 등하교시 유아의 피로도와 안전상의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며 "유치원 0교시 계획은 반드시 백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의 기본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에는 유치원 교사 1만695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한 유치원 교사 박모(30) 씨는 "유치원 교사들의 자녀는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지금 초·중·고등학교 9시 등교가 아이들 발달에 맞춘 것인데, 더 어린 유아들을 8시에 등교시키는 것이 과연 맞느냐"고 반문했다.

'8시 등원' 방침에 반대 의견을 내고 있는 것은 비단 유치원 교사 뿐만이 아니다. 전업맘들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유치원에서는 9시 이전에 등원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아침돌봄을 제공하고 있는데, 아침돌봄이 필요한 아이들만 지원하면 되지 일률적으로 0교시를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서울의 한 학부모 권모(31) 씨는 "아침에 푹 재우고 잘 먹여서 좋은 컨디션으로 유치원에 보내고 싶다"며 "일하는 엄마들 때문에 왜 모든 아이들이 8시에 강제로 등원을 해야 하나"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최모(32) 씨는 "8시부터 유치원 수업을 시작하면, 셔틀버스를 7시30분 전후에 타야 한다"며 "애들 씻기고 밥 먹이고 옷 입히는데 1시간 걸리는데, 새벽부터 애들을 깨워서 보내라는 거냐"고 반발했다.

반면, 이미 맞벌이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조기 등원이 일상화된 만큼 이를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유아 등원 시간을 조사한 결과 48.5%가 오전 8시30분 이전에 등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정책국장은 “조기 등원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오전 9시 이전까지 정규 과정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 교육과정 시간을 앞당기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맞벌이 부모들은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려면 일찍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8시 등원에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이다.

경기도의 한 맞벌이 학부모인 이모(37) 씨는 "출근시간 때문에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는 일이 매일 전쟁 같다"며 "일찍 오는 아이들이 별로 없으니 눈치도 보이는데, 유치원 수업이 빨라지면 한결 수월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맞벌이 학부모인 김모(48)씨는 "아이를 키워보니 출퇴근 시간과 등원, 등교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다반사"라며 "오죽하면 이런 대안이 나왔는지, 그 만큼 맞벌이 가정의 고충이 크다는 점을 인지했다는 점에서는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 네티즌은 "미국에서는 오전 7시부터 원아를 받고, 아침도 주지만 대개 간단한 도시락을 싸준다"며 "이 경우 수업료를 더 내고, 아침에 일찍 가면 부족한 잠을 더 자게 하기도 한다"며 8시 등원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부모 출퇴근 시간 조정해야”…제3의 대안 요구도

“아이 깨워 준비만 1시간인데”…유치원 9→8시 등원 ‘찬반팽팽’ [장연주의 헬컴투 워킹맘]
교육부가 제3차 유아교육발전 기본계획 및 제1차 한부모가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한 10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유치원 인근에서 어린이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치원 8시 등원을 놓고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단순히 등원시간을 앞당기기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학부모의 출근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일찍 등원시킬 것이 아니라 부모들의 출퇴근 시간을 보다 유연하게 조정하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는 것이다.

경기도의 학부모 김모(47) 씨는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지 그냥 아이는 일찍 맡기고 일이나 하라는 식이라면, 누가 애를 낳겠느냐"며 "아이를 낳으면 부모의 근로시간을 2시간씩 줄이던가, 출퇴근 시간 조정으로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홍모(43) 씨는 "8시 등원이면 애들을 몇 시부터 깨워서 준비시키라는 거냐"며 "애들이 푹 자야 성장이 되지, 정책 방향이 한심하다"고 성토했다.

그 외 맞벌이 부부의 경우, 1시간 늦게 출근하도록 하는 등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워킹맘 구모(41) 씨는 "회사 다니면서 아이랑 8시에 나가는 것도 엄청 힘들었다"며 "아이가 조금만 꾸물거리면 소리 지르고 하다가 결국 일을 쉬고 있는데,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해 죽겠다"고 했다. 구씨는 "아이 키우는 사람들은 늦게 출근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치원 8시 등원을 놓고 찬반 논란이 확산되자 교육부는 "유치원 8시 등원은 희망하는 유치원에 한해 시행하는 것으로 강제는 아니다"며 "유치원 내부 논의를 거쳐 희망하는 곳에 한해서만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