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화려한 색깔도, 휘황찬란한 광채도 없는데 주인공이다. 다이아몬드를 들러리로 만들고, 17세기 유럽 왕실과 귀족들의 남다른 사랑을 받는 신스틸러(Scene Stealer)로 활약한다. 별명은 ‘인어의 눈물’. 올타임 클래식으로 불리는 보석 ‘진주’(眞珠) 얘기다.
화려함에 화려함을 더한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대관식이 지난 6일(현지시간)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렸다. 이날 로열 블루와 빨강이 어우러진 예복을 입은 케이트 미들턴의 귓불에선 단정한 진주 귀걸이가 조용한 존재감을 뽐냈다. 같은 날 대관식에서 길이 121㎝, 무게 3.6㎏짜리 보검을 51분간 흔들림 없이 들어 이목을 끈 페니 모돈트 영국 하원장관의 귓불에서 빛난 것도 역시 진주였다. 대단한 색도, 눈부신 광채도 없지만 화려한 월계관과 ‘국가의 검’만큼이나 눈에 띄는 아이템이다.
뭐든 다 걸치고 입을 수 있는 유력자들이 중요한 순간마다 선택하는 진주. 진주를 향한 왕실과 귀족 가문의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알듯 모를듯 한 ‘바로크 예술’에 담긴 진주 한 알의 미학은 어떤 것일까.
반클리프·그라프·피아제 반열에 오른 日미키모토…그 배경엔 ‘진주의 힘’
진주는 양식 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 자연산 진주조개에서 나오는 우연의 선물 같은 보석이었다.
진주 양식에 성공한 최초의 인물은 일본 미키모토사(社) 창업주다. 미키모토는 창업자 미키모토 고키치(御木本幸吉)가 1893년 세계 최초로 진주 양식에 성공하면서 일찌감치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 세계 10대 주얼리 가운데 유일한 아시아 기업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국내 인지도와 인기는 해리윈스턴·그라프·피아제·쇼파드·불가리·반클리프·티파니·부세라티 보다 현격히 낮지만, 세계 시장에선 일찌감치 명품 진주 브랜드로 인지도를 쌓았다.
진주 양식으로 획득한 특허 기간은 이미 끝난 지 오래지만, 미키모토는 100년 넘게 고급 진주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사실상 진주의, 진주에 의한, 진주를 위한 브랜드 그 자체다.
“일본 출장 갔다 올 땐 ‘하나다마’ 진주 하나 사올게요.”
미키모토가 성공한 비법은 ‘일본산 진주’에 대한 이름값과 신뢰도로 요약된다. ‘테리’라고 불리는 광택, ‘마키’라고 불리는 진주 층의 두께, 표면의 매끄러움 등 기준을 통과한 10% 상등품 진주 만이 미키모토 이름을 달고 팔린다. 최근 종영한 배우 김서형 주연의 드라마 ‘종이달’에서 타인의 시선과 평판에 목숨 거는 남편이 부인에게 권했던 ‘하나다마’ 진주가 바로 이같은 깐깐한 심사를 통과한 미키모토 진주다.
일본인에겐 자랑인 미키모토지만, 외교 무대에선 핀잔을 산 일화도 있다. 2017년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아시아 순방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 부인인 아키에 여사는 아베와 트럼프가 골프 회동을 하는 동안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미키모토 본점을 찾았다. 그러나 이 방문은 ‘진주’라는 키워드로 얽혀있는 일본의 진주만 침공을 상기시켰다. 심지어 트럼프는 방일 하루 전 트위터에 ‘Remember #PearlHarbor’(진주만을 잊지 말라)란 글까지 올린 터였다. 언론은 일본 진주 회사를 찾은 멜라니아의 심기가 다소 떨떠름 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멜라니아는 미키모토 진주를 단 한 점도 구매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왕자는 진주를 좋아해”…알고보면 뿌리깊은 귀족템
여성들의 사랑을 받는 진주는 과거엔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사료를 들여다보면 조선 양평군 등도 진주 귀걸이를 착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8년(1513) 1월 7일자는 양평군에 대해 “그 당시 강수의 나이 9세인데, 큰 진주 귀걸이를 달았고 백회(百會·정수리 중앙부분)에 뜸뜬 흔적이 있었으니”라고 적었다.
조선 뿐 아니라 중국 황실과 서양에서도 귀족 남성들이 진주를 착용했다는 사료는 여러군데서 발견된다. 소설 ‘삼총사’에도 등장하는 제1대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의 1625~1626년 초상화에는 그가 여러 줄의 진주 목걸이를 목에 두른 모습이 그려졌다. 페르시아와 인도 무굴제국, 중국 군주들 역시 진주 사랑은 유별났다. 중국 청나라 5대 황제인 옹정제(1678년~1735년)가 착용한 진주 목걸이 ‘동주조주(東珠朝珠)’는 유물로 보존돼 2010년 소더비 경매에서 6786만 홍콩달러(약 100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 진주는 20대부터 할머니가 될 때까지 나이 상관없이 여성의 클래식 주얼리로 자리잡았다.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최근엔 '레트로(복고) 바람'을 타고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남성들 사이에서도 진주 목걸이는 눈독 들이는 패션템이 됐다. 일반인이 선뜻 시도하긴 어려운 아이템이지만, 남자 연예인 사이에선 과감하게 진주 목걸이를 착용하는 모습을 적잖이 볼 수 있다.
최근 진주목걸이 패션을 선보인 유명인은 새신랑 이승기다. 이승기는 지난 8일 SNS에 루이비통 블라우스에 진주 목걸이를 한 사진을 올리며 결혼 전과 180도 달라진 패션을 선보였다. 이보다 앞서 배우 이정재도 지난해 tvN 유퀴즈온더블록에 출연하며 핑크 트위드룩에 진주 목걸이를 매치해 화제가 됐다. 호불호가 뚜렷했던 그의 복장이 남긴 여운이 가실세라 BTS 뷔, GD, 축구선수 황희찬 등도 ‘진주 목걸이를 한 남성들’ 대열에 합류했다.
“못난이 진주여도 괜찮아”…‘바로크 정신’ 진주 한 알에 다 있다
일본산 미키모토 양식 진주가 좋다한들, 진주는 아직까지도 자연산을 최상품으로 친다. 다만 최근엔 양식이냐 천연이냐보다 다양한 디자인에 무게중심이 쏠린다. 일명 못난이 진주로 불리는 ‘바로크 진주’가 각광받는 분위기가 이를 증명한다.
‘바로크’(Baroque)는 ‘울퉁불퉁 못생긴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17세기 절대왕정시대 문화예술 사조의 하나인 바로크 미술이 바로 이 못난이 진주라는 어원에서 비롯됐다. 우아한 빛을 간직한 채 비정형의 자유로움을 표방한 못난이 진주야말로, 최소한의 질서 속에서 우연과 자유분방함을 강조한 당시 심미감(審美感)의 압축판이다. 당대 귀족들이 높이 샀다는 불규칙한 형태의 커다란 진주는 셀린느 ‘바로크 트리옹프 귀걸이’ 등으로 변주돼 현 시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엔 샤넬 트위드룩 같은 클래식룩에 진주 아이템을 매치하기 보다는, 맨투맨이나 반팔 티셔츠 등 캐주얼룩에 진주를 더한 믹스매치 패션이 사랑받고 있다. 진주 목걸이가 마냥 편안하기만 할 수 있는 옷차림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되 무겁고 중후한 진주의 느낌은 캐주얼룩으로 상쇄시켰다. 이런 절묘한 밸런스야말로, 인간 중심 르네상스와 절제미의 고전주의 사이를 오가는 현대판 바로크 스타일이 아닐런지.
‘인어의 눈물’, 우크라 눈물 닦아줄까…故다이애나비 진주 주얼리에 쏠린 눈
영국 찰스3세 대관식이 열린 지 일주일, 그의 전 부인인 고(故) 다이애나 비가 썼던 진주 주얼리가 경매에 나와 눈길을 끈다. 소유주는 우크라인으로, 국가를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경매에 부친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세상을 떠난 다이애나비가 재위 기간 선보였던 주얼리 대부분은 왕실 소유였기 때문에, 1996년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뒤 재벌 2세 도디 알 파예드로부터 받은 목걸이가 첫번째 경매품이 됐다.
총 51캐럿의 다이아몬드 178개가 사용된 럭셔리 주얼리지만, 주인공이 되는 펜던트 자리를 차지한 건 일곱 알의 진주다. 12㎜ 남해 진주 5알로 만들어진 목걸이는 다이아몬드를 안개꽃처럼 두른 채, 다이아를 압도하는 우아한 존재감을 뽐낸다. 귀걸이 역시 늘어진 다이아몬드 장식 아래로 진주알이 하나씩 탐스럽게 달려있다.
이번 경매가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진주 주얼리가 착용 즉시 값어치가 급락하는 보석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이애나비의 주얼리 세트는 이 공식을 깨고 수십년 전보다 최소 5배 이상 비싼 가격에 팔릴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 경매 업체 건지스 소속 전문가들은 낙찰가를 400만~1100만파운드(약 66억∼183억원)로 내다봤다. 2008년 판매가격인 100만달러(13억원)의 최대 14배에 달하는 액수다.
제작된 지 20년이 넘은 시점에도 깜짝 놀랄 경매가가 예상되는 배경엔 故 다이애나비의 이름값이 자리한다. 이 ‘진주 일곱 알’이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하고도 묵직하다. 때론 ‘무엇을’ 착용하는지 보다 ‘누가’ 착용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돼가는 조국을 위해 기꺼이 보석을 내놓은 우크라 일가족의 사연을 값어치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인어의 눈물’로 우크라의 눈물을 닦아주고픈 전 세계인의 염원, 이 마음은 과연 기록적인 경매가로 이어질 수 있을까. 내달 27일 뉴욕에서 들려올 소식이 의미심장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