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의 남산공방] 전쟁에서의 교훈 분석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이상 계속되면서 언론뿐 아니라 여러 기관에서 전쟁에서의 교훈을 찾는 연구를 하고 있다. 사실 전쟁에서의 교훈 분석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원인 연구의 경우, 처음에는 참전 강대국 간의 무한 경쟁의 결과로 인한 전쟁이므로 전쟁 책임도 강대국 모두에 있다는 분석이 대세를 이룬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어서 새로운 증거들이 발굴되면서 독일이 전쟁을 계획했고 그에 따른 책임도 있다는 피셔 학파의 주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쟁에서의 교훈 분석은 당장 결론 낼 만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국방정책을 수립하는 입장에서는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교훈을 정책에 반영할 시기를 놓치지 않을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졌던 제2차 세계대전 독소전 당시, 독일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던 소련에 있어서도 전쟁 교훈 분석과 정책 반영은 시급한 문제였다.

그 당시 소련은 독일에 비해 병력이나 무기의 숫자도 우세했을 뿐 아니라 소련제 T-34 탱크는 전쟁 초기 독일 탱크 모델들을 질적으로 압도하고 있었지만 전투에서는 지고 있었다. 소련은 전쟁 분석을 통해 그들의 초급 간부들이 독일군에 비해 훈련이 부족했으며, 탱크들을 집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독일군 방식의 부대 편성을 하지 못했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소련군이 참모본부 1개 부서 전체를 모두 전투의 분석과 교훈 전파 임무에 할당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그 덕분인지 전쟁 후반부터 소련은 군대의 양적 우세뿐 아니라 전술과 훈련 그리고 부대 편성을 통한 군대의 질적 우세까지 확보해 최종적으로 독일군을 압도할 수 있었다.

이런 사례는 오늘날 ‘국방혁신 4.0’이라는 국방력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때늦지 않게 연구해야 할 이유가 돼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연구시점을 실기해서는 안 되겠지만 동시에 지금은 전쟁 분석에 필요한 증거와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 자칫하면 정작 중요한 교훈이 가려질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한때 러시아 탱크들의 손실이 우크라이나의 대전차 미사일이나 무인기 때문이라고 했던 분석이 많았는데 이것은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무기 체계의 영향 탓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실제로는 대전차 지뢰 역할이 가장 컸다는 주장이 나중에 알려진 것이었다.

이런 차원에서 역시 미디어의 관심을 적게 받아 놓칠 가능성이 있는 영국의 저명한 학자이기도 한 로런스 프리드맨 교수의 우크라이나 전쟁 분석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는 군사력을 하드웨어에 속하는 화력무기 체계와 소프트웨어에 속하는 군 운용능력으로 나눈 다음 우크라이나 군대가 2014년부터 나토 표준식으로 훈련받으며 얻게 된 우월한 지휘통제능력과 효율적인 병력훈련, 동원능력 때문에 러시아 군대와 맞설 수 있었다고 했다.

AI 과학기술 강군을 표방하는 우리나라 국방을 위해서는 무인기나 스타링크 위성처럼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내용뿐 아니라 이렇게 우크라이나 전쟁 연구에서 놓칠 수도 있을 분석을 사려 깊게 찾아볼 필요가 있다.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공군대학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