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서 ‘화제의 임용자’ 소개
변호사 자격·의사 면허 갖고 경찰 지원해 합격…국내 최초
“공익법무관 때 사명감 갖는 직업 택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죠”
누나들도 의사출신 검사·변호사…의학·법학 접목 전문성 지켜봐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경찰이 되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사명감을 갖고 보람 있게 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경찰의 꿈을 꾸게 된 것 같습니다.”
‘의사 면허를 가진 최초의 한국 경찰’ 타이틀을 달게 된 이병철(35) 신임 경감의 말이다.
최근 충남 아산시 경찰대학에서 열린 2023년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에서 ‘사회적 다양성을 구현할 화제의 임용자’로 소개돼 주목을 받은 그의 스토리를 헤럴드경제가 들어봤다. 이 경감과의 인터뷰는 그가 현재 경찰수사연수원에서 연수를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해 24일 전화통화와 서면 등으로 진행됐다.
서울대에서 응용생명화학을 전공한 ‘이과생’이었던 이 경감이 경찰이 되고싶다는 꿈을 꾼 건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무부 공익법무관으로 대체복무를 하면서다.
이 경감은 “공익법무관으로서 법률구조공단에서 소송대리 및 형사변호 등 업무를 맡았는데 경제적·사회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힘든 사람들을 돕는다는 사명감으로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있었다”며 “고의 교통사고를 일으킨 거짓 피해자로부터 고소당해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을 변호해 무죄를 받은 사건이 공단 우수사례로 뽑히는 등 일의 결과도 좋아서 직업적 만족도가 높았다. 그래서 사명감과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건 현장의 매력을 느낀 것도 공익법무관으로 활동하면서다.
이 경감은 ‘집 주인이 태풍을 대비해 주택 뒷산의 죽은 나무 몇 그루를 벌목했다가 수 년이 지나 산림자원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을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떠올렸다.
그는 “직접 현장에 나가 쌓여있는 나무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벌목 시점이 상당히 오래됐다고 볼만한 단서들이 있었다”며 “결국 연도별 고해상도 위성사진을 활용해 피고인이 나무를 벌목한 시점이 검사의 주장보다 오래됐음을 입증했고, 공소 시효가 완성된 시점에서 기소가 이뤄졌음을 인정받아 면소의 판결을 받았다”고 했다.
이렇게 현장에서 보람찬 결과를 만들어 내다보니, 늘 현장에서 답을 찾는 경찰 일을 하고 싶다는 확신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의학전문대학원에까지 진학한 것은 가족들의 권유가 크게 작용했다. 이 경감의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약사이고, 큰누나와 매형은 의사 출신 검사, 작은 누나는 의사 출신 변호사로 활동하는 모습 등을 어려서부터 지켜봤다고 한다.
이 경감은 “가족들이 의학과 법학을 접목해 각자 특화된 영역에서 전문성과 보람을 갖고 일하는 것을 가까이서 봐왔다”며 “변호사로서도 의학을 전문 분야로 특화시키면 사회에 더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신임 경찰로서 앞으로 의료사고 수사 분야에 전문성을 발휘하고 싶다는 각오도 전했다.
향후 2년은 일선 경찰서 경제팀 소속으로 의무 근무를 해야 하지만, 이후에는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의료수사 부서에 배치돼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목표다.
이 경감은 “의료사고라고 하면 보통 의사의 과실을 밝혀내는 분야라고 생각하지만, 억울한 피의자(의사)도 있을 수 있다”며 “억울한 피해자(환자)도, 억울한 피의자(의사)도 생기지 않도록 의학적 지식을 활용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공정한 판단을 하고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최근 언론 기사로 소개된 뒤 동기, 지인들로부터 응원 연락을 많이 받았다는 이 경감은 “앞으로도 전문지식을 갈고 닦아서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법을 집행하는 근면하고 성실한 경찰이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