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시작 가나아트 40주년
서울옥션 매각은 현재진행형
소더비와도 시간두고 고민할 것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소더비에서 관심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시장 상황을 보고 성급하게 마무리 하기보다 시간을 두고 서로 윈윈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하는 그런 과정에 있습니다.”
이호재(69) 서울옥션 회장이 서울옥션 매각에 관련해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21일 가나아트 40주년을 기념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들과의 차담(茶談)자리에서다. 이 회장은 “자세한 사항은 주가에 영향을 주기때문에 언급이 어렵다” 면서도 “서울옥션은 시장의 선도자 역할을 해왔다. 미술시장이 더 커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 자본이 들어와 판을 키워야한다. (서울옥션)매각도 이같은 차원에서 추진중이다”라고 밝혔다.
서울옥션 매각 관련 첫 입장 밝혀
국내 화랑 톱 3에 꼽히는 가나아트가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1983년 29살에 인사동에 가나화랑이라는 이름으로 미술계에 뛰어든 것이 시작이었다. 이 회장은 “미술이 ‘사업’을 넘어 ‘산업화’하는 과정에 가나아트와 서울옥션이 있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40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며 차분히 소회를 밝혔다.
당시 미술계 주요 갤러리는 현대화랑, 진화랑, 동산방화랑이었다. 잘나가는 작가들은 모두 이들과 계약이 맺어진 상황. 이호재 회장은 가나화랑의 첫 전시로 ‘도입기의 서양화전’을 기획한다. 이인성, 이중섭, 박수근 등 작고 작가들로 꾸린 전시였다. 29세에 화랑을 시작하며 나이 때문에 ‘대표’나 ‘사장’직함 대신 ‘상무’ 타이틀을 유지해야했던 신생화랑의 선택이었다.
한국 최초 전속작가제 도입…박대성과 인연
이후 이 회장과 처음 인연을 맺은 작가는 소산 박대성(78)이었다. “한국일보 앞 태인화랑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보았다. 몸이 불편하고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중앙미술대전에서 상을 받은 작가라는 설명을 들었다” 미술을 비전공자라는 말이 이 회장에겐 동료처럼 느껴졌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화랑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 미안했다. 다른 식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하다 전속작가제도를 생각했다. 내 나름 미술계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어서, 돈이 생기면 작가를 한 명 한 명 만들어가야겠다 생각했다”
이 회장은 박대성 작가의 수유리 화실을 찾아가 한 달에 30만원씩 주기로 하고 작품을 받아 판매하는 등 관계를 지속했다. 박대성은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하는 등 국제적 작가로 성장했다.
40년간 가나아트의 전속작가만 200여명이다. 수 많은 작가 중 이 회장이 가나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은이는 첫 작가인 박대성, 임옥상 등 이다. 임옥상과 인연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홍준 교수의 소개로 서울미술관에서 열렸던 젊은 작가 전시에 갔다가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2층에 독수리 그림이 걸려있었는데, 스펙타클 하고 괜찮았다. 당시 파리에 유학중이던 작가의 얼굴도 모르고 7점을 모두 샀다” 무리해서 산 작품이 인연이 됐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임옥상)전시 하고 있는데, 그만큼 스케일이 큰 작가다. 박대성은 LACMA에서 3000호 크기 작업을 선보였는데, 이런 큰 그림들을 할 수 있는 작가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오수환, 박영남, 고영욱, 황재영… 나에게 귀한 작가들이다”
바이엘러와 매그, 이호재 경영철학에 영향 준 2인
이 회장의 경영철학에 큰 영향을 끼친 외국 화상은 2명이 있다. 스위스의 에른스트 바이엘러와 프랑스 남부의 매그(Maeght)파운데이션이다. 매그 파운데이션 미술관을 보고 이 회장은 “화상이 이러한 미술관으로 성장할 수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고, 바이엘러에게서는 “좋은 작고 작가 그림은 팔고, 그 돈으로 젊은 작가의 대표작을 사라. 명분도 얻고 실리도 얻을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운도 따랐다.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첫 고객이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만날 기회가 있어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미술품 옥션 창설·코스닥 상장…이어지는 최초행렬
화랑으로 꾸준히 성장하던 가나아트는 1998년 국내 최초 미술품 경매사인 서울옥션을 세운다. 앞서 1997년에는 아트 상품을 판매하는 가나 아트샵을 열기도 했다. 2008년에는 서울옥션이 코스닥에 상장한다. 이처럼 가나아트는 화랑업을 ‘미술산업’으로 성장하는 길목에서 늘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러나 이같은 성장 스토리는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1998년 IMF가 터지자 시장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화랑 주인들이 화랑에서 고객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도망다녔다. 옛날에 산 그림을 팔아달라고 할까봐. 그래서 만든 것이 서울옥션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이 회장에게 최근 한국미술시장의 급격한 성장은 또 다른 기회로 읽힌다. STO(토큰 증권)에 대한 관심도 크다. “미술시장이 커지라면 산업화가 필수다. 여태까지 미술시장은 한정된 외부요인에 휘둘려왔다. 그걸 벗어날 호기가 왔다. 지금까지 그림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 취향에 따라 구매했는데, STO 등이 시작되면 자산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앞으로 흥미로운 현상이 펼쳐질 것이다”
LA 뷰잉룸 오픈·한남동 전시장도 성수동으로 확대이전
이 회장은 현재 화랑 사업은 큰아들인 이정용 대표에게, 경매사업은 동생인 이옥경 대표에게 맡기고 자신은 가나아트센터가 있는 평창동 일대를 예술인마을로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평창동에 프랑스의 파리국제예술공동체를 모델로 한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이정용 대표는 올해 LA에 뷰잉룸을 오픈하는 등 국제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서울 한남동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는 전시장도 성수동으로 옮겨 새로 오픈할 예정이다. 이정용 대표는 “해외 갤러리들이 공간성에 집중한 전시장을 많이 운영한다. 서울 도심에 그같은 곳을 찾다가 최근 성수동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일궈온 40년이 한국에서 미술을 산업영역으로 확대했다면, 아들은 그 토대를 바탕으로 미술시장을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여전히 그림을 좋아하는…
차담이 끝나고 40주년 기념전이 열리는 전시장에서 직접 기자들에게 컬렉션한 작품을 설명하는 이회장은 천상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작품이 좋다. 보고 또 봐도 좋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은 어린아이처럼 생기가 넘쳤다. “미술관을 짓기 위해 가나아트재단을 만든 게 2014년이다. 10년이 되는 해에 재단 이름으로 전시장을 만드는 게 꿈이다” 뜻대로 행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70세)’을 바라보는 이호재 회장, 그는 여전히 꿈꾸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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