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윤미 선임기자]히틀러의 나치와 독일, 스탈린 시대를 흔히 집단 광기의 시대라 부른다.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한 사람의 목소리에 주파수를 맞추고 최면에 걸린 것처럼 맹목적으로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한나 아렌트의 기념비적 저작 ‘전체주의의 기원’은 더욱 예리한 통찰을 보여준다. 아렌트는 원자화 된, 그래서 불안한 개인들은 그들을 묶어줄 이데올로기에 포섭돼 자아와 현실을 망각한 채 지도자에 맹종하게 된다고 말한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와 독재를 구분하며, 그 차이점의 본질이 심리적 차원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마티아스 데스멧 벨기에 겐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전체주의의 심리학’에서 한나 아렌트의 주요 개념과 통찰을 이어받아 전체주의의 심리학적 뿌리를 심층적으로 파헤친다.
저자에 따르면, 독재는 신체 공격이라는 원시적인 공포를 기반으로 삼지만, 전체주의는 ‘대중 형성(mass formation)’이라는 사회심리적 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전체주의 체제 국민들의 충격적 행동을 이해하려면 대중 형성 과정을 면밀히 살피는 게 필요하다.
전체주의는 일종의 ‘집단 최면’
‘전체주의화’된 사람들의 특징은 전형적이다. 집단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맹목적으로 희생하고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에게는 극단적 비관용을 드러낸다. 또한 편집적인 밀고자 심성을 지니고 있어 정부가 개인의 삶 한가운데 파고들도록 허용한다. 유사 과학을 토대로 한 터무니 없는 세뇌와 선전에 이상할 정도로 취약하고, 모든 윤리적 경계를 넘어서는 편협한 논리를 맹목적으로 따른다.
본질상 대중 형성은 개인들의 윤리적 자기 인식을 파괴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앗아가는 일종의 ‘집단 최면’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전체주의의 심리적 과정에 메스를 댄 건 현재 새로운 전체주의가 부상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메일 확인과 IT(정보기술) 시스템 조사, 도청 등 치안기관이 개인의 삶을 침범하는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감시와 사생활에 대한 압박이 커진 데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 감시와 억제가 위협적으로 늘어 백신 접종 증명서와 QR코드가 없으면 공공장소 접근이 거부되는 등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 대한 지지마저 약화되고 있다. 정부가 만든 채널에 시민들이 서로를 밀고하는 사례가 급격히 느는 것도 그런 징후다.
기술을 동원해 사람들을 추적하고 찾아내는 일이 점점 더 용인되고, 심지어 필요한 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현실을 기술 관료가 이끄는 새로운 전체주의 출현으로 본다.
원자화된 개인…이유없는 불안에 공격 대상 찾아
대규모 대중 형성의 조건도 무르익고 있다. 필수 조건인 사회 전반에 외로움과 고립, 유대의 단절이 확산하고 있다. 이는 소셜 미디어와 의사 소통 기술 사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적 연결성이 끊어지면서 삶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대중 형성에 필요 조건이다. 여기에는 기계론적 세계관도 한몫 하는데, 이유 없는 불안과 심리적 우려, 좌절과 공격성이 생겨난다.
그 결과, 불안과 좌절을 분출할 대상을 찾게 된다. 최근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인종적이고 위협적인 언어 사용이 급증한 건 이런 이유다.
그렇다면 이런 조건들이 어떻게 대중 형성을 낳는 것일까?
대중 형성의 촉매제는 바로 공공 영역에 존재하는 암시다. 가령 나치주의에서의 유대인, 스탈린주의에서의 귀족 정치, 현재의 코로나 백신 접종 거부자 등은 불안의 대상을 가리키는 암시적인 이야기다. 대중 매체를 통해 이야기가 퍼져 나가고 동시에 이런 불안 대상을 다루는 전략이 제공될 경우 그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 없는 불안까지 모두 그 대상에 달라붙게 된다. 이어 그 대상을 통제해야 한다는 사회적 지지가 폭넓게 형성된다. 강압적인 통제는 공포로 이어지고 공포는 더 많은 강압적 통제를 낳는다.
군중, 희생양 통해 불안 해소·해방감 만끽
사회가 이렇게 악순환의 희생양이 되면 이는 불가피하게 전체주의 즉 극단적인 정부의 통제로 이어져 결국 인간의 심리적·육체적 완전성을 철저히 파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얻는 소득이 있다. 사회에 깔려있던 불안이 급격히 해소되고, 사회는 공동의 싸움이란 응집력을 얻게 된다. 수면 아래 끓고 있던 좌절과 공격성, 감정이 불안 대상과 거부 집단에 모두 분출돼 대중에게 어마어마한 해방감과 만족감을 선사한다. 대중이 이를 쉽게 내려 놓으려 하지 않는 이유다. 또한 개인은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 상호 연결된다. 이는 일종의 도취를 일으킨다.
저자는 이를 축구 경기장에서 함께 노래 부르고 구호를 외치는 군중에 비유한다. 개인의 목소리는 사라지지만 집단의 에너지가 몸으로 파고들어 전율하게 된다. 중요한 건 노래나 가사가 아니라 함께 부른다는 사실이다.
이는 인지적 차원에서도 일어나는데, 이런 방식으로 대중은 터무니없는 생각 마저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며 행동하게 된다.
불안을 먹고 사는 전체주의…저항 계층 역할 중요
전체주의는 불안을 먹고 살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불안 대상을 찾아나선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사회는 세 그룹으로 나뉜다. 하나는 대중 자체로서 주어진 이야기에 진심으로 동조하고 최면에 걸린 집단으로, 대개 약 30%를 차지한다. 최면에 걸리지는 않았으나 침묵하는 집단은 대개 40~60% 정도다. 최면에 걸리지 않았으며 적극적으로 대중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약 10~30%로 저자는 이 세 번째 그룹 구성원들의 역할이 크다고 강조한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지배적이고 최면적인 목소리의 공명이 절대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진실한 방식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침묵 그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는 이 책은 대중 형성의 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목적을 이루는지 탁월한 분석을 보여주며, 오늘날 사회의 움직임을 읽어내는 틀을 제공한다.
전체주의의 심리학/마티아스 데스멧 지음, 김미정 옮김/원더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