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아기도 공정 인식·돕는 법 알아

좋은 사회 형성에 자연선택 압력 결과,

협력·상호작용 뇌와 유전자에 새겨져

자원공유, 이타적 행동 재난극복 도움

희생과 도움 가상 게임,.호혜성 확인돼

종족주의, 보편적 유산으로 극복 길 제시

[북적book적]모든 공통체에 공통된 진화의 비밀…8가지 형질 있다
“온갖 현대식 정치와 인공물(도구, 농업, 도시, 국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사회적 본능을 드러내는 타고난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 본능은 실질적이며, 더 나아가 도덕적으로 주로 좋은 쪽이다.”(‘블루 프린트’에서)

심리학자 폴 블룸은 생후 3개월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언덕 위로 올라가는 빨간색 동그라미를 ‘돕는’ 파란색 네모와 빨간색 동그라미를 아래쪽으로 미는 노란색 세모를 보여주고 아기들에게 선택하게 하자 일관되게 파란색 네모를 골랐다. 색깔과 모양에 따라 선호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두 요소를 다양하게 바꾸어 실험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돕는’ 쪽을 택한 것이다. 또 다른 실험에선 아무런 유인을 하지 않았는데도 걸음마를 뗀 아기들이 서랍을 열려고 애쓰는 척하는 어른을 자발적으로 나서 도왔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서로 돕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도록 뇌가 프로그래밍돼 있다는 연구 사례로 종종 인용된다.

[북적book적]모든 공통체에 공통된 진화의 비밀…8가지 형질 있다

수십 년 간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을 넘나들며 인간 진화의 비밀을 탐색해온 석학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예일대 교수는 ‘블루 프린트’(부키)에서 우리 유전자에는 서로 돕고 사랑하고 배우도록 좋은 사회를 위한 청사진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자연선택은 지속적으로 이런 유형의 사회를 만들도록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는데, 블루 프린트에는 사회를 만들 때 준수해야 할 어떤 제약들이 담기게 된다. 어느 선까지는 청사진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너무 많이 벗어나면 사회는 붕괴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안에는 좋은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사회성 모둠’이라 부르는 8가지 형질이 있다. 즉 사랑, 우정, 협력, 학습 능력, 개성을 알아차리는 능력 등으로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온 특성이다.

저자는 진화의 비밀인 협력 유전자를 찾아 다양한 공동체를 우선 탐색한다. 가령 재난으로 인한 우연한 공동체를 비롯, 의도한 공동체, 상상의 인공 공동체 등 다양한 공동체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살핀다.

역사상 수많은 난파선 생존자들의 생존기는 우발적인 공동체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전해준다. 1629년 호주 서부 해안에 조난 당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바티비아호의 선원들은 자원을 아끼려고 여성과 아이들을 대량 학살할 계획을 세웠고, 1816년 북아프리카 서부해안에 난파한 프랑스 메두사호는 146명 가운데 15명이 살해와 식인 끝에 살아남았다.

반대로 성공한 조난 사례도 있다. 1855년 9월7일 태평양 산호섬인 실리섬에서 난파된 줄리아앤호의 생존자 51명은 적절한 리더십 아래 자원 공유와 위험을 무릅쓴 자원봉사 등 이타적 행동으로 모두 살아남아 구조됐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공동체 만들기라는 인류의 오랜 꿈도 있다. 1694년 독신주의 남성 학자 40명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저먼타운 인근에 만든 ‘황야의 여성 사회’라는 공동체, 소로와 에머슨 등이 거쳐간 조지 리플리가 구상한 유토피아 공동체 브룩팜 등 미국 역사 내내 수천 개의 유토피아 공동체가 생겨났다. 브룩팜은 개성을 존중하고 온건한 리더십과 함께 노동과 교육, 놀이 등 좋은 공동체의 특성을 갖고 있었지만 프랑스 유토피아 사상가 푸리에의 급진적이고 엄격한 교리로 바뀌면서 붕괴됐다. 이스라엘 민주적 공동체 키부츠도 반가족주의에서 가족주의로 바뀌면서 해체됐다.

가상공간에서의 저자의 공동체 실험은 이 책의 백미다. 저자는 가상의 플랫폼 아마존 매커니컬 터크를 이용, 2만5000명을 모집, 40개 집단으로 나눠 특정 구조를 지닌 사회연결망에 무작위로 배치했다. 그리고 등대나 우물처럼 서로 협력하고 어느 정도 희생을 해야 혜택을 얻는 상황을 제공한 뒤 게임이 끝나면 현금으로 교환할 전표를 줬다. 게임은 여러 번 진행됐고 각 게임 때 참가자는 돈을 그냥 갖고 있거나 이웃에게 기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부할 경우 이웃에게 그 액수만큼 더 얹어 주었다. 즉 누군가 조금 희생하면 이웃은 더 큰 혜택을 입는다. 이 게임을 여러 번 진행한 결과. 호혜성이 강력한 규범으로 자리잡는 게 확인됐다.

다른 실험에선 누구와 상호작용할지를 고를 권한을 부여하자 사람들은 협력하는 좋은 사람과 유대를 형성하고 기여하지 않는 ‘배신자’인 비열한 사람과 유대를 끊는 쪽을 택했다. 어떤 연결망 구조에 끼워지느냐에 따라 서로에게 관대하게 혹은 비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인간이 만들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공동체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출현한 공동체는 손에 꼽을 정도이며, 이들에서 한결같이 ‘사회성 모둠’이라 불리는 규칙들이 작동하고 있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자자는 인간의 애착과 사랑 역시 진화의 산물로 본다. 단독생활을 하던 불안정한 암컷이 식량 공급을 잘하는 남성과 짝을 이루면서 안정적인 집단생활로 전환한 것은 우리 종에게 획기적인 돌파구였다. 짝 결속은 공동육아라는 유용한 방식을 이끌었고 아버지와 자녀 간의 지속적인 애착을 형성하게 된다. 친족 인지는 친척 육아 등 집단 내 협력의 진화를 더욱 촉진하고 나아가 친척이 아닌 개인들 간의 협력과 우정을 탄생 시킬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여기서 나아가 저자는 일처다부, 일부다처, 동성애, 독신을 비롯한 짝짓기의 다양성이야말로 우리 종을 결정적으로 구분하는 특징으로 본다. 사회행동이 고정된 형태로 설치돼 있다기보다 다채로운 형태로 표현되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으며 수정도 가능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과학적 연구가 종족주의, 폭력성, 이기심, 잔인함 등에 초점을 맞춰 왔다면, 저자는 생물학 유전의 또 다른 이면을 밝힌다.

자연선택으로 빚어진 공통된 유전 형질, 즉 함께 살아가는 법과 관련된 보편적 유산을 통해 현재 횡행하고 있는 부족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비전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블루 프린트/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지음, 이한음 옮김/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