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모르핀 일종 오이코달 중독

흥분제 페르비틴 대중들에 필수품

전투 앞둔 군인들 너도나도 복용

두려움없는 용맹함은 ‘각성제 효과’

[북적book적]히틀러의 독일은 ‘마약제국’…진격의 군 뒤엔 메스암페타민이
“독일은 또 다른 화학물질에서도 선두를 달렸다. 메르크, 베링거, 크놀 기업은 세계 코카인 시장의 80퍼센트를 장악했다. (…)신생 공화국 독일은 인간의 정신을 변화시키고 환각에 빠트리는 중독성 물질에 빠져 허우적거렸을 뿐 아니라 헤로인과 코카인을 사방으로 퍼뜨리는 글로벌 딜러로 부상했다.”(‘마약중독과 전쟁의 시대’에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범죄자 히틀러에 대한 연구는 차고 넘친다. 히틀러의 정신병리학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정도다. 그럼에도 그의 내면의 악마성이란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기자 출신의 작가 노르만 올러는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열린책들)에서 학자들이 70여년 연구해온 정황 증거와 당시 기록물을 토대로 히틀러에 대한 새로운 독법을 제시한다. 히틀러의 주치의이자 ‘주사의 달인’ 모렐을 통해 히틀러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우회경로다.

히틀러의 치명적인 약물 중독 얘기는 새로운 건 아니다. 유명한 히틀러 전기 작가 이언 커쇼는 “히틀러는 전시 중에 총 90가지의 약물과 매일 28가지의 알약을 복용했는데 그로 인한 육체적 붕괴는 어쩔 수 없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는 오히려 결과론적 얘기다. 히틀러의 약물 의존성은 훨씬 오래고 깊고 치명적이며 통치 기간 보여진 그의 모습은 약물로 빚어진 것이었다.

[북적book적]히틀러의 독일은 ‘마약제국’…진격의 군 뒤엔 메스암페타민이

모렐은 1941년 8월부터 1945년 4월까지 히틀러를 치료했고, 이를 세밀하게 일지에 기록했다. 기록은 1349일 가운데 총 885일치가 남아있다. 약물은 1100번 기재돼 있고 거기에 800회 남짓 주사가 추가된다. 하루 한 번 꼴로 주사를 맞았다는 소리다. 더 이상 주사를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고 팔에는 주사자국 흉터인 지퍼자국이 선명했다. 주사제로는 각종 동물 유래 호르몬 제제와 스테로이드, 아편 유사제, 코카인, 오이코달 등 각종 약물과 마약 등 종합세트가 처방됐다.

히틀러는 늘 주치의와 나란히 걸었고 몇 걸음 뒤에 조수가 주사기 가방을 들고 따라다녔다. 1941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80여 가지가 넘는 다중 약물 사용은 더 이상 정상 생활이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점점 더 남용의 길로 이끌었다.1941년 가을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 학살과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낸 러시아에서의 범죄적 침략전쟁은 이 약물 위에서 벌어졌다.

저자는 모렐의 기록을 토대로 히틀러의 주요 행보를 재현해낸다. 가령 1943년 7월18일 동부전선이 소련의 대규모 공격으로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이탈리아가 독일과의 동맹을 파기하겠다고 나서자 히틀러는 심인성 변비와 위 경련으로 끔찍한 고통에 빠졌다. 무솔리니와의 중요 회담을 앞둔 차에 한밤 중 소환된 모렐은 기본 약물 치료로는 효과가 없자, ‘꿈의 물질’이라는 모르핀의 일종인 오이코달을 처치했다. 히틀러는 금세 수행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히틀러는 비행장으로 떠나기 전 오이코달 앰플 하나와 근육주사를 또 맞았다.그가 무솔리니를 만났을 때 쉴 새 없이 떠들며 이상할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는 건 보고서에서 확인된다.

히틀러는 점점 더 오이코달 의존성에 빠졌고 수면장애와 몸 떨림, 경련성 변비 등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이는 전세에 대한 상황 판단과 인간에 대한 동정심마저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이런 약물 중독이 히틀러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당시 제3제국 독일에 만연한 마약 실태와 용맹스럽다는 독일군의 실체가 바로 메스암페타민임을 폭로한다.

히틀러 치하에서 페르비틴이라는 알약은 인기 상품이었다. 막 화학실험실에서 나온 이 알약은 1938년 도시의 광고와 미디어를 장악했고 순환기 장애, 무기력, 우울증은 물론 알코올과 아편의 금단 증상까지 완화시켜준다는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먼저 복용한 의사들의 찬사와 논문이 이어졌고, 얼마 안 가 대중들에게는 커피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심지어 메스암페타민을 넣은 과자까지 출시됐는데 과자 하나에 함유된 메스암페타민은 페르비틴 알약의 거의 다섯 배에 달했다.

저자는 독일 군사 기록물 보관소의 수백만 개 파일을 뒤져 새로운 자료를 찾고 분석해 나치 독일 시대를 마약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한다.

이 마약의 엄청난 가능성을 알아본 이는 국방 생리학 연구소의 오토 F. 랑케 교수로 그는 베르비틴이군에 가장 이상적인 약임을 알아챘다. 군에 보급된 메스암페타민은 몇 주 만에 병영을 점령했다. 의무장교들은 폴란드 침공을 위해 군장을 꾸리면서 시내의 약국을 모조리 뒤져 페르비틴을 확보했다.

당시 브레스트-리토프스크로 진격한 제3기갑 사단의 보고서는 페르비틴 효과를 극적으로 묘사한다. 마약은 쓸 데 없는 생각을 없애고 자신이 해야 할 임무에만 집중하게 만들었으며 이틀 밤낮을 깨어있어도 지치지 않고 배고픔마저 느끼지 못하게 했다. 살짝 들뜬 느낌과 가벼운 환각이 나중에는 폴란드에서 잔인한 나치 범죄를 가능케 했다. 야간 진격을 앞두고 있을 때는 모든 지휘관과 전차 운전병들이 마약을 복용했다. 수많은 보고서들이 페르비틴의 효용을 기록했고 더 많은 알약을 요청했다.

서부전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일군은 주머니 속에 늘 각성제를 갖고 다녔다. 언제든 공격을 개시할 수 있으려면 한순간에 최고의 몸 상태를 만들어줄 알약이 필요했고 이들은 연습 삼아 복용했다.

여기에 날개를 달아준 일이 생긴다. 1940년 낫질 작전을 앞두고 군 역사상 유례없는 ‘각성제 시행령’이라는 문서가 군에 하달된다. 수면 격파를 위해 각성제를 사용해도 되며 페르비틴을 체계적으로 의료 장비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이다. 템러 제약공장에선 하루에 83만 3000정이 대량 생산됐고 병사들의 식량 주머니로 들어갔다.

마약 복용으로 각성된 독일군은 밤낮없이 두려움 없이 진격했고 이들에겐 용맹한 독일군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책은 독일 국방군이 화학약품에 의존한 세계 최초의 군대라는 사실, 군 정보기관은 마약딜러 노릇까지 했으며 순수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내세웠던 독일의 본 모습은 마약에 취한 이상 상태였음을 기록들을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히틀러와 전쟁, 독일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퍼즐이 맞춰졌다.

이윤미 기자/meeleel@heraldcorp.com

마약중독과 전쟁의 시대/노르만 올러 지음, 박종대 옮김/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