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아트센터 서울, 1200여석 40초 만에 매진

강렬하고 자기 해석 두드러진 조성진

악기 소리 하나하나 살린 사이먼 래틀

수익금 3억원 예상…전액 기부

진화하는 조성진과 ‘지휘거장’ 사이먼 래틀의 함박 웃음 [고승희의 리와인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사이먼 래틀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LG아트센터서울 공연 [LG아트센터서울, 김윤희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 날’이 왔다. 한국 클래식 애호가들이 손을 꼽아 기다린 순간이다. 한국 최고의 ‘클래식 스타’ 조성진과 세계적인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만남이다. 조성진은 강렬했고,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는 묵직했다. 한 음 한 음 허투루 다루지 않는 이들의 호흡이 공연장의 온도를 바꿔놨다.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설계, 국내 공연장 사상 가장 뛰어난 외관 디자인을 자랑하는 LG아트센터 서울은 13일 개관 기념 공연으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사이먼 래틀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무대를 마련했다. 지난 9월 1일 판매를 시작한 개관 공연 티켓은 오픈 40초 만에 전석 매진됐다.

조성진은 첫 곡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 및 ‘사랑의 죽음’을 마치고 등장, 뜨거운 함성과 함께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이날 연주한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였다.

진화하는 조성진과 ‘지휘거장’ 사이먼 래틀의 함박 웃음 [고승희의 리와인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사이먼 래틀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LG아트센터서울 공연 [LG아트센터서울, 김윤희 제공]

최근의 조성진은 보다 다양하고 깊어진 음악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인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만큼 ‘쇼팽 스페셜리스트’로만 비춰지지 않기 위해 보다 다양한 작곡가의 음악을 자기만의 해석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라흐마니노프 ‘만년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곡은 조성진의 손끝에서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해석으로 태어났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는 탁월한 테크닉에 아름다운 소리의 조화로움을 잘 끌어내는 조성진의 강점을 잘 보여준 곡이었다. 1악장에서 첼로의 피치카토 위로 피아노가 얹어지는 강건한 화음, 짧은 마디 마디 안에서조차 만들어지는 클라이맥스는 관객들의 가슴에 짜릿한 감정을 안겼다. 양손의 정확한 템포와 화려하고 정교한 테크닉, 투명하고 맑은 음색은 조성진의 연주에 보다 다양한 색을 채웠다. 격렬하면서도 과장이 없고, 확신에 찬 음악은 곡의 주제와 본질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이 곡을 통해 조성진은 또 한 번의 자기 진화를 보여줬다.

이날 조성진이 쇼팽의 에튀드 작품10 제12번 ‘혁명’을 연주할 때 사이먼 래틀 하프 연주자의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지그시 눈을 감기도 하고, 다시 눈을 빛내며 음악을 분석하는 것처럼 보였다. 협연 중간 중간 조성진을 다정하게 바라보던 래틀은 연주를 마치고 함성과 박수가 터지자, 함박웃음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진화하는 조성진과 ‘지휘거장’ 사이먼 래틀의 함박 웃음 [고승희의 리와인드]
‘사이먼 래틀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LG아트센터서울 공연 [LG아트센터서울, 김윤희 제공]

2막에선 사이먼 래틀과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가 호흡을 맞춘 지난 5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압권은 2부 두 번째 곡이었던 라벨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무용시 ‘라 발스’와 앙코르였다. 연주는 각각의 악기들이 ‘자기 소개’를 하는 것처럼 소리의 조각들로 시작됐다. 다양한 주법이 서로 맞부딪히며 존재감을 드러내다가 아름다운 하프의 선율이 신호처럼 들려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왈츠가 시작된다. 묵직한 트럼본, 나서지 않는 타악기, 현의 하모니까지 작곡가가 의도한 소리들이 악단에서 살아났다. 마법같은 순간이었다. 음악이 격정의 세계에 빠져들면, 다소 시선을 방해하는 관람 행위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2017년부터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끌어 온 사이먼 래틀은 오케스트라 악기의 특성은 물론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는 소리의 특징을 간파한 지휘자였다. 래틀과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사이에선 끈끈한 신뢰와 넘볼 수 없는 호흡이 느껴졌다. 앙코르 곡으로 이어진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피날레’는 깊고 진중한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장점이 살아났다. 특히 단원들의 소리를 하나하나 끌어내는 래틀의 음악적 접근과 해석, 그것을 받아들이는 악단의 음악성이 주는 감동이 컸다. 이날의 무대는 사이먼 래틀이 런던 심포니의 수장으로 이끄는 마지막 무대였다는 점에서 한국 관객들에게도 큰 의미로 남았다. 래틀은 2023년부터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두 인연의 마지막 무대는 객석들의 기립박수로 이어졌다.

LG아트센터 서울의 출발이 좋았다. 조성진과 세계적인 거장 사이먼 래틀의 만남으로 신고식은 화려하게 마무리됐다. 다만 클래식 전용 공연장에 비해 음향이 건조하고, 악기들의 소리가 잘 섞이지 않았다는 아쉬움은 남았다. 음향은 시시각각 달라지고, 시간을 쌓을수록 정교해진다. 첫날 첫 공연이었던 만큼 새로운 소리를 찾아가리라는 것이 음악계 관계자들의 총평이다. 이날 공연은 1200여석이 초대권 1장 없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어머니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도 다녀갔다. LG아트센터서울에 따르면 개관공연의 입장권 판매 매출액 전액(약 3억원)을 한국메세나협회에 기부, 공연예술계 신진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