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의 남산공방] 핵 억제와 대화 채널

국제적인 제재 속에서도 계속돼 온 북한의 핵 개발은 지난 9월 8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핵무력을 법제화하는 데 이르렀다.

이 법령은 북한이 국제적으로 책임있는 핵 보유국임을 내세우려는 의도로도 보이지만, 위험에 처할 경우 핵타격을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한다는 조항이 눈에 뜨인다. 북한은 이미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의 지시로 전술핵무기 개발에 돌입한 상태인데, 이와 같은 자동 핵타격 조항은 전술핵무기 지휘통제 권한을 작전부대 지휘관에게 위임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그리고 이번 달 들어 주요 전술핵무기 운반수단으로 알려진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또 했다. 이와 같은 핵무력 법령 조항, 전술핵무기 개발 지시, 전술핵 투발 수단 실험 지속은 북핵 능력이 전술핵무기 보유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하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사실 전술핵무기의 특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파괴력과 사거리로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분쟁 초기에 전술핵무기가 사용되더라도 상대방 전략핵무기의 보복까지는 확전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기에 더 위험한 측면이 있다. 이처럼 전술핵무기까지 갖추게 될 북한의 핵 사용을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가 우리의 심각한 안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점에서 마침 북한 핵문제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던 미국 카네기 연구소의 앤킷 판다 연구원이 우리 군의 북핵 억제 방안 중 하나인 대량응징보복(KMPR)을 평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판다 연구원은 북핵 억제를 위해 강력한 보복 수단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북한 리더십을 직접 보복하겠다는 대량응징보복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촉진하며 한반도의 전략적 안정성을 해치는 위험한 수단일 수 있다고 했다.

사실 리더십을 직접 위협하는 방안은 역사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냉전시대에 미국 카터 행정부와 레이건 행정부는 소련의 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의 핵 표적에 소련 리더십을 포함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핵 억제의 역사에서 적의 리더십을 보복 표적으로 삼는다는 것은 논리적인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가운데 판다 연구원이 제시한 전략적 안정성의 위험에 대해서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냉전 시대에 초강경 군비경쟁을 주도했던 레이건 대통령도 소련이 미국의 공격 의도를 오판해 핵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에는 주목했다. 그래서 집권 초기부터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해왔던 레이건 대통령은 오판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1983년부터 연설의 톤을 바꿨고, 소련과도 평화가 가능하다며 대화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레이건의 제안은 1987년이 되어서야 미소 정상회담으로 이뤄졌으므로 대화 채널 형성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핵 억제 노력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도 북한 핵 위협을 억제하기에 적합한 보복 능력을 키우면서 동시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판과 우발적 행동에 의한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대화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적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식별해 보복할 수 있는 억제력과 함께 적과의 대화 채널을 함께 만드는 혜안이 필요한 시대이다.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 전 공군대학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