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고석홍 소수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인터뷰
성수동 ‘핫플’ 등 도심 내 주거+상업 복합 건물 설계
“공공성과 수익성 공존…거리를 선도하는 건축 추구”
“서울 절반은 다가구…건강한 주택으로 편견 바꾸고파”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서울 강동구 성내동은 천호대로를 사이에 두고 대규모 재건축 단지와 소규모 주택단지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강풀 만화거리’로도 유명한 주택단지에는 최근 엇비슷한 노 주택 사이로 눈에 띄는 회색 첨탑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멀리서 봐도 낡은 주택가와도, 획일화된 아파트 단지와도 이질적인 건물이지만,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는 ‘멋있게 생긴 그 집’으로 통한다. 소수 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T roof’가 그 주인공이다.
‘T roof’는 폭 8m, 길이 30m의 좁고 긴 대지 위에 지어졌다. 아내와 딸과 함께 오랫동안 살던 이층집을 다시 짓고자 찾아온 건축주에게 김미희·고석홍 소수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는 ‘거리를 선도할 수 있는 건축물’을 제안했다. 1층과 2층에는 근린생활시설을 지어 주민들이 편히 찾을 수 있도록 하면서 3, 4층에는 젊은 직장인들의 아늑한 1인 주거 기능을 담당한다. 가장 위층은 성내동을 지켜온 건축주 가족의 ‘노을 맛집’이 됐다.
실제로 건물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2층을 차지한 긴 테라스다. 고 대표는 “기다란 토지 특성상 길과 맞닿은 면적이 넓었다. 단순히 건물을 짓기보다는 건물과 맞닿은 길이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2층에 과감한 테라스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풀 만화거리에 달린 전구를 보며 2층에서의 풍경이 굉장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T roof’의 테라스가 첫 사례로 거리의 풍경을 선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동시에 건축주와 주거민을 배려할 수 있도록 1층과 2층, 주거층의 출입구를 모두 분리했다”라고 덧붙였다.
도심 내 다가구 주택을 주로 지으며 ‘거리와의 관계’에 주목한 부부 건축가의 생각은 작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소수건축이 성수동 2가에 설계한 ‘일삶빌딩’은 층이 올라갈수록 바닥이 넓어지는 독특한 구조로 유명하다. 저층의 상업시설과 고층의 주거시설이 공존하는 건물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좁은 이면도로 사이에서 답답함을 주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개성을 살렸다.
이들이 말한 ‘거리를 선도하는 건축물’의 개념에 맞게 일삶빌딩이 들어온 뒤 좁은 다가구 골목은 카페와 음식점으로 바뀌었다. 빌딩 자체가 1층을 필로티 구조로 설계하며 개방감을 주자 바로 옆 카페와 맞물리며 일종의 ‘도심 공원’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고 대표는 “애초 계획 때부터 건물 앞 거리가 하나의 광장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거리에 새로 짓는 첫 건물이었는데, 우리가 무조건 크게만 건물을 짓는다면 다른 건물들도 부피를 키우려고 해 결국에는 균형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했다”라며 “다행히 거리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지금은 개방감 있는 공간으로 변했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작업을 하는 사무실 역시 성수동의 이른바 ‘핫한’ 카페 사이에 위치해있다. 유명 맛집과 카페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글로우 빌딩’ 역시 이들이 설계했다. 애초 낮은 담장과 넓은 마당으로 트여 있던 단독주택은 5층 규모의 빌딩으로 바뀌었는데, 이들은 재건축을 의뢰한 건축주에게 ‘도시 마당’을 제안했다. 반듯한 직사각형 건물 대신 움푹 파인 곡선 벽을 세워 공간을 만들고 거리와 건물 사이의 완충 공간을 만든 것이다.
실제로 건물 앞에는 걸터앉기 편한 벤치에 가까운 담장이 자리잡았다. 서울 숲 앞 카페 거리를 걷다가 지치면 커피를 놓고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고 대표는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단독 주택이 갖고 있던 개방감을 재해석했다”라며 “민간 재건축인 탓에 건축주가 수익성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공성을 확보하면서 주변과의 조화를 통해 건축물 자체의 가치도 높일 수 있다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소개했다.
각자 다른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했던 부부는 지난 2016년 성수동에서 함께 일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당시에는 임대료가 저렴하기도 했지만, 성수동은 서울 도심 내에서도 가장 빨리 급변하는 지역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아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공업지역 특유의 생동감이 매력으로 다가왔고, 아직까지 그 모습이 유지되고 있다”라며 “점차 개발이 진행되며 거리의 외형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내용적으로는 예전의 활력을 잃고 있는 것 같아 우려가 되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동네”라고 했다.
두 건축가가 함께 설계한 건물 중 대다수는 상업시설과 주거시설이 함께 하는 도심 내 소형 복합 건물이다. 여러 역할이 혼합된 도심 내 복합 건물이라는 특성 탓에 이들은 ‘건축주와의 소통’을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여긴다. 의뢰를 맡은 지역에 대한 사전조사를 거쳐 건축주에게 ‘공공성’과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고 대표는 “사무실을 찾는 건축주들은 ‘소수건축’이라는 이름을 두 반응으로 나뉜다. 어떤 분은 ‘상위 1% 소수를 위한 건축’이라고 받아들이는 반면, 어떤 분은 ‘사회적 약자인 소수를 위한 건축’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오기도 한다. 재밌는 모습인데, 우리는 그 둘을 모두 추구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애초 소수건축의 ‘소수’는 1과 자신으로밖에 나눌 수 없는 숫자라는 뜻으로 시작했다. 고유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숫자 체계라는 생각에 지은 이름인데, 도시 내에서의 보편적 역할과 건물 특유의 고유성을 동시에 살리는 방식을 건축주들에게 제안하면 모두 만족한다”고 설명했다.
보편성과 고유성을 함께 가져가려는 소수건축의 지향점은 이들이 짓는 ‘건강한 도심주거공간’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김 대표는 “요즘 지어지는 도심 내 다가구 주택은 건물을 짓는 방식이나 마감 모두 건강한 ‘좋은 주거’라고 할 수 있지만, 주거 형태에 따라 삶의 수준을 평가하는 편견 탓에 저평가되고 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 좋은 자재로 건강한 주거환경을 만들어 주거 문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조금씩 바꿔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 대표 역시 “재건축, 재개발을 한다 하더라도 서울의 모든 동네를 바꿀 수는 없다. 이미 서울 주택의 절반, 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도심 내 주거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도심 주거 환경을 위한 적절한 규제와 지원이 이뤄지면 조금 더 나은 주거 환경 제공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