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만 한 달이 됐다.
한 달 전만 해도 러시아의 대규모 군사공격보다는 하이브리드 방식 전쟁이 주로 예상됐다. 러시아군 총참모장의 이름을 딴 게라시모프 독트린으로도 일컫는 하이브리드 전쟁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할 때부터 널리 알려졌다. 당시 러시아는 대규모 군대가 국경을 넘지 않았고 대신 사이버전·심리전·특수작전 등 비군사 수단과 비정규 군사작전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전쟁을 수행했다. 휴가 처리된 러시아 군인들이 투입된다거나 친러시아 민병대에게 중화기를 제공하고 민간군사기업 용병을 보내는 식이었다.
그런데 2022년의 러시아는 예상과 달리 하이브리드 전쟁이 아니라 대규모 군대가 국경을 넘어 재래식 전쟁을 하고 있다. 전쟁 초기 러시아가 보여준 재래식 군사작전의 모습도 예상과는 달랐다. 특히 러시아군의 항공작전은 미스터리로 보일 정도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비해 지상군뿐 아니라 전투기 수 1571대와 231대 비교에서 알 수 있듯 공군력도 절대적으로 우세했는데도 대규모 항공작전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
현재 분석가들은 러시아의 재래식 전쟁 시작 자체가 초특급 비밀로 다뤄져서 공군을 포함한 주요 부대들이 전쟁 발발 직전까지도 통보받지 못해 대규모 항공작전을 계획할 시간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러시아군의 공지 합동작전이 실종됐고 우크라이나 방공망은 여전히 가동되는 가운데 러시아의 주요 전략거점 장악은 늦어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원활하지 않은 군수 보급의 약점과 함께 사기저하 문제도 노출시키고 있는 듯하다. 러시아군 공격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이러한 현상들의 다른 한편에서는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이 돋보인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에는 군의 역할도 있지만 특히 민간 분야의 노력이 두드러져 보인다. 우크라이나 민간 정치지도자인 젤린스키 대통령은 국가적 저항 의지를 성공적으로 결집시켰고, 키이우시장을 포함한 주요 도시 민간 지자체장들의 도시 방어와 주민보호활동도 눈에 띈다. 많은 우크라이나 시민이 군에 자원하면서 여러 형태로 러시아군을 방해하고 있고 시민은 SNS를 통해 전 국민의 전의를 고양하면서 러시아군 동향도 공유하고 있다.
전쟁 발발과 함께 우크라이나 페데로프 부총리가 인터넷 불통을 호소하자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 X가 화답했다. 2000여개의 상업위성으로 구성된 자사 소유 스타링크 시스템으로 인터넷 서비스와 함께 위성영상까지 지원해주고 있다. 많은 민간 기업은 자발적으로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면서 우크라이나에 기술적 지원까지 하고 있다.
이렇듯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민간의 역할은 단순히 군을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민간 행위자들의 영향력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것은 국방 분야에서 민간의 역할이 과거보다 커지고 있으며, 따라서 국방력 건설과 운용에서도 민간과 군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의 국방개혁을 설계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민간과의 협업 영역을 더 확대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공군대학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