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의 강한 항전 의지와 함께 서방의 군사지원 증가 속에서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 그와 함께 전쟁의 범위도 확대되는 경향이 있는데, 우주 영역에서도 전쟁 행위가 포착되고 있다.
미국의 발표에 의하면 서방의 GPS 우주 기반 항법 신호가 러시아의 방해로 인해 우크라이나에서는 사용되지 못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가 지원하는 해킹 집단은 러시아의 글로나스(GLONASS) 우주 기반 항법 신호 사용을 차단하는 중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주까지 확대된 것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모두 과거 구소련 민간 우주 프로그램 유산의 계승자로 상호 보완적 관계였다. 구소련은 러시아에 효율적인 우주 수송 수단 역할을 해주는 우주발사체와 유인 우주 체류 프로그램 등을 물려주었고, 우크라이나에는 대규모 로켓 엔진 생산 프로그램을 남겼기 때문에, 두 나라는 서로의 보완적인 도움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전쟁과 함께 두 나라의 우주 프로그램들도 군사작전의 표적이면서 동시에 수단이 된 듯하다.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제재는 러시아 민간 우주력에 필수적인 첨단부품 수입을 차단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최대 로켓 생산 인프라는 러시아군의 직접적인 타격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태이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는 미국 등 타국의 민간 우주 기업들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받은 민간 우주 기업들은 우크라이나에 높은 해상도의 상업 위성 영상과 우주 기반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으며, SNS의 미디어 영상 공유와 위성 전화로 폭넓고 빠른 정보 공유가 가능하도록 해주고 있다.
우주로부터의 지원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은 대전차 무기 유도를 위해 드론을 운용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러시아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여론전을 성공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러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민간 우주 기업 소유의 위성들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렇듯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국가 또는 기업 소유 민간 우주 프로그램들이 여론 주도 역할뿐 아니라 군사작전 지원에까지 참여함에 따라, 전쟁 수행에서 민간 우주력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이것은 민간 우주 기업들도 군사작전의 행위자가 되었으며, 동시에 민간 우주 프로그램들도 군사작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정도로 민간 우주력과 국방 우주력의 구분은 사라져 가는 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간 우주 프로그램의 상징인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두 번째 발사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간 우주력과 국방 우주력의 혼합 현상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우주 개발에서 민간 우주와 국방 우주 담당 기관들이 서로 업무의 장벽을 높이 쌓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최근 고조되고 있는 우주 개발에 대한 국민적 관심 속에서, 민간 우주 프로그램과 국방 우주력 발전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범정부적이고 통합적인 우주 개발 계획을 정립할 때이기도 하다.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 전 공군대학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