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대성당 앞 시시각각 터지는 환호
수백년 이어도 늘 신선, 60대 주민 “난 1세”
곳곳, 땅끝, 웰니스, 유류극복피해기념비 등
새 예술장르 개척 영감 얻고파..셀프 파인딩..
재설계, 성찰, 도전 등 다양...중독성도 있어
[헤럴드경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함영훈 기자] 지난 13일 오후 산티아고 대성당 앞. 이날도 어김없이 순례자의 감동 어린 환호와 축하 인사가 이어진다. 몇 분에 한 번 씩, 늘 이런 풍경이 연출된다. ▶기사 하단, 헤럴드경제 리오프닝 특별기획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기사 목록
이슬비가 막 그치고 저녁 푸른 하늘이 잠시 드리워진 5시를 조금 넘기자 대성당 북쪽 벽면과 닿아있는 프랑스길 마지막 구역에서 갑자기 환호성과 함께, 파이프 악기를 비롯한 관악 오케스트라의 환영 팡파레가 울려퍼진다. 10여명의 청년들이 100㎞ 이상을 걸은 다음 당도한 것이다. 도착 직전까지 비가 내려 비옷을 입었지만, 비옷도 일부 찢어지고 그 안의 옷들도 젖어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환호와 미소를 멈출 줄 모른다.
그들이 올 줄 알고 기다리던 몇몇 친구들이 일일이 안아준다. 이들을 알지 못하는 오빠뻘, 이모뻘 사람들, 다른 완주순례자들이 “참 잘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격려해준다. 이어 발랄한 이 스페인 중-남부지방 청소년들은 대성당 한복판에 바로크형 대칭 퍼포먼스를 보이며 카메라를 눌러대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포즈를 취해준다.
65세 동갑인 마누엘 프란시스코와 후안 안토니오는 라딘 출신의 동네 친구이다. 그들도 포르투갈-스페인 접경 발렌사(포르투갈 영역)에서 출발해 포르투갈 코스를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가족들은 차를 타고 몇시간 만에 미리 와서 이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가장(家長)의 순례길 도전으로 인해 헤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만나는데엔 일주일이 걸렸다. 불과 일주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그들은 이산가족 상봉 장면처럼 감동적인 재회 장면을 연출한다. 여인들은 남편, 오빠의 쾌거를 기뻐했고, 한국 나이로 내일모레 70줄인 두 친구는 산티아고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완주 기념 순례자 여권을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두 죽마고우는 어릴적 모험을 즐기 둣 “우리 이 나이에도 한번 도전해보자”고 해서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 주변엔 또 하나의 친구가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조셉 안토니오 마르티네스이다. 같은 뜻으로 다른 곳에서 순례길 완주 도전을 시작했다가 순례 코스 어느 한 길 위에서 만나 새로운 친구가 되었다. 이들 셋은 하루 20km안팎, 총 110km를 걸었다.
청년 10여명, 60대 노인 3명, 길 위에서 만난 50대 남성과 40대 여인 두명 등등 시시각각 도착하는 순례자들을 위해 오비에도 예수성심회 오케스트라가 멋드러진 연주를 해주었다. 연주자들 중에도 순례자가 당연히 적지 않다. 지난(至難)한 순례의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은 어떤 예술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열락(悅樂)이고, 인문예술 최상의 재료가 되기에, 연주자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아낌없이 순례자들을 위해 내주었다. 어쩌면 그들의 예술활동도 ‘희망과 도전의 순례길, 눈물과 환희’라는 최고의 인문학적 가치를 다루었기에 득이 되었을 것이다.
순례객들 사이사이로 동네 청소년, 유모차를 탄 아이와 젊은 가족, 모처럼 산티아고로 놀러온 댄디한 차림의 연인, 힐링을 위해 성지로 여행 온 우아한 자태의 고령부부도 끼어있고, 당도한 순례자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주민들도 1200년간 매일, 시시각각 늘 보는 장면이지만, 언제나 같은 감흥, 같은 표정으로 이들을 반기고 맞아주고 있었다.
풍찬노숙을 마다않으며 외로운 도전을 했던 순례자는 아마 인생에 대한 자신감, 누적된 마음 티끌의 해소 등 다양한 영감을 얻었을 것이고, 여기에 완주의 기쁨과 누구랄 것 없이 축하해주는 목소리에 빠져든다.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 번 만 온 순례자는 없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동쪽 땅끝 해남으로부터 유라시아 대륙을 이어받은 서쪽 땅끝마을, 피니스테라에서는 미술가 주앙(53)을 만났다. 스페인 사람인 그의 순례는 ‘인생 재설계’이다. 주앙은 “새로운 예술 영역 락앤롤 아티스트에 도전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다양한 면모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해변(대서양:포르투갈길+피스테라무시아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산티아고와 코루냐 사이에 있는 역사소도시 베탄조는 영국길 입구이다. 여기에서 만난 아담(32)과 파니(28) 남매는 ‘성찰형’ 순례자이다. 이들은 “헝가리 출신으로 영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홀리데이를 이용해 여행을 기획했는데, 아담의 여친은 스위스에, 파니의 남친은 헝가리에 있다보니, 가족 순례길 탐방을 감행하게됐다. 아담은 호스피델리티에 근무중인데 셀프 파인딩(나를 성찰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보는 것)을 해보려 순례에 나섰다”고 말했다.
코루냐 ‘쎈언니’ 여전사 마리아피타 광장 가는 길에 만난 제이슨(36)은 아일랜드 사람으로 ‘중독형’ 순례자이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항공편으로 와서 북쪽 노르트 코스를 걷다가 코루냐에 왔다. 이미 5년전 사리아(프랑스길 순례코스 중 갈리시아주 초입)에서 출발해 프랑스길을 순례하는 등 지금까지 두 번의 순례 경험이 있다. 결혼은 하지 않았는데 딸이 있고, 어느덧 열여섯살이 되었다. 어쨌든 다시 순례길을 걷고 싶었다. 걷는 동안 사람들과 사귀고 해변에서 놀고 그랬다”고 말했다. 발길이 자신을 이끌었다는 주장이다. 그는 “한국인들 만나서 반갑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쇼로 유명해진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잘 안다. 한국인 까미노(순례자)도 많다”고 말했다.
성당과 순례자여권 완주 인증사무소 사이에서 소프트 바(Bar)를 경영하고 있는 주인 꾸로(연령미상, 50~60대 추정)는 넷플릭스 ‘지옥’ 등 한국드라마에 푹 빠졌다는 한류팬이다. 한국인 순례자들을 보살피던 스페인 갈리시아주 공식 문화관광해설사 세르히오(Sergio)의 친구이다. 꾸로는 수많은 순례자들과 완주의 기쁨을 함께해주느라 오후6시인데 술이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그는 자신을 “한 살”이라고 주장했고, “백번을 양보해도 열 살”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순례자들의 웃음과 함께 하다보니 매일 매일이 새롭고 신선하다는 것이다.
하나 같이, 명랑하면서도 뭔가 큰 것을 깨우친듯한 순례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페인 갈리시아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신비한 매력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필라 퀴나 곤잘레스(Pilar Cuiña) 갈리시아주 문화관광책임자는 “갈라시아주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인생, 다짐, 성찰, 그리움, 사랑, 우정이 있고, 가는 곳곳 감춰진 아름다운 명소들이 매우 많다”면서 “한국민들도 어려움을 금방 잘 이겨낸 뒤, 제주와 산티아고의 우정, 전라남도 해남 땅끝과 피니스테라(땅끝)의 유럽-아시아 연결고리가 이어진 것 처럼 스페인과 갈리시아주를 사랑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헤럴드경제 인터넷판 글 싣는 순서 ▶3월8일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걸으면, 왜 성인군자가 될까 ▶3월15일자 ▷스페인 갈리시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산티아고는 제주 올레의 어머니..상호 우정 구간 조성 ▶3월22일자 ▷산티아고 대서양길①땅끝끼리 한국-스페인 우정, 순례길의 감동들 ▷산티아고 대서양길②임진강과 다른 미뇨강, 발렌사,투이,과르다 켈트마을 ▷산티아고 순례길, 대서양을 발아래 두고…신의 손길을 느끼다 ▷산티아고 순례지 맛집①매콤 문어,농어회..완전 한국맛 ▷산티아고 순례지 맛집②파니니,해물볶음밥..거북손도 ▷산티아고 순례길 마을식당서 만나는 바지락·대구·감자·우거지…우리집에서 먹던 ‘한국맛’ ▶3월29일자 ▷산티아고 대서양길③돌아오지 못한 콜럼버스..바요나, 비고 ▷산티아고 대서양길④스페인 동백아가씨와 폰테베드라, 레돈델라, 파드론 ▷산티아고 대서양길⑤(피스테라-무시아) 땅끝은 희망..행운·해산물 득템 ▷산티아고 프랑스길①순례길의 교과서, 세브리로 성배 앞 한글기도문 뭉클 ▶4월5일자 ▷산티아고 프랑스길②사모스,사리아,포르토마린,아르수아 ▷산티아고 프랑스길③종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매력들 ▷산티아고 영국길..코루냐,페롤,폰테데움,베탄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