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2.5조, 삼성전자 2.4조 등
엑손모빌, 애플, 도요타, 나이키 등 글로벌 기업들 脫러시아 확산
러 정부, 외국기업 자산회수 제한 조치 조만간 발령
국내 기업들 대응방안 고심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 러시아가 외국 기업의 철수를 막고자 일시적인 자산동결을 추진하는 가운데, 국내 주요 기업들의 러시아 현지 법인 자산이 8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악의 경우 현지 철수를 고려하더라도 대규모 자산이 묶여 사실상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헤럴드경제가 3일 국내 주요 25개 기업들의 러시아 현지 법인 자산 규모(2020년말 기준)를 확인한 결과 7조6320억원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 현대자동차 현지 법인이 2조4612억원으로 규모가 가장 컸다. 공장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법인(HMMR)이 1조6761억원이었고 모스크바에 소재한 독립국가연합(CIS) 법인(HMCIS)이 7202억원이었다. 이밖에 연구소(2억원), 금융사(125억원), 트럭·버스 판매법인(522억원) 등 주요 종속회사가 아닌 곳도 있었다.
삼성전자 러시아 법인들의 자산은 2조4148억원으로 판매법인(SERC) 1조2448억원, 칼루가 공장(SERK) 1조1245억원, 삼성리서치러시아(SRR) 455억원 등이었다.
루자지역에 공장을 운영하는 LG전자(LGERA)는 자산규모가 9325억원. 기아(Kia RUS&CIS)는 8295억원이었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철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석유기업 엑손모빌은 유전 개발사업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며 신규 프로젝트 투자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IT(정보기술)기업 애플은 러시아에서의 제품 판매를 전격 중단했고 자동차 기업 포드도 사업 중단을 선언했다. 항공기를 제조하는 보잉도 러시아 항공사 지원 중단을 발표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생산을 멈추고 수출을 중단한다고 선언했고 다임러트럭홀딩스는 러시아 합작 기업과 제휴를 끊었다. 이외에 볼보자동차와 폭스바겐도 현지 자동차 판매 등 영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러시아 정부는 외국 기업들의 이탈 움직임이 가속화되자 외국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외국 기업 및 투자자의 자산 회수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구체화된 조치는 대통령령으로 발령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신 등에 따르면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는 “기업들에 균형 잡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러시아 자산에서의 이탈에 일시적으로 제한을 가하는 대통령령 초안이 준비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제재가 자산회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SWIFT에 러시아 은행들이 배제된다면 러시아 은행들과 거래하는 국내 기업들의 송금 등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은행과 주로 거래하고 있어 큰 영향이 없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철수와 러시아 정부의 자산동결 방침에 국내 기업들은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부분 기업들의 러시아 매출 비중은 미미하다. 각각 300조원, 80조원 매출을 바라보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2020년 러시아 매출은 4.4조원, 1.6조원 수준이었다. 전체 자산에서 현지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작다. 자산회수가 어렵더라도 재무적 타격은 크지 않다.
다만 내수 판매가 중심이긴 하나 현지에 공장을 운영 중에 있고 스마트폰과 TV 등 가전 시장 선두를 달리고 있는 러시아 시장 내에서의 영향력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단순히 매출만으로 시장의 중요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현지 시장에 투자가 지속 이뤄진만큼 고심도 크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對)러시아 해외직접투자(FDI) 규모는 3.2억달러(약 3852억원, 2019~2021년 3분기)로 이 중 제조업이 1.9억달러(약 2287억원)로 절반이 넘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외교 문제와 국제 무역이 얽혀있어 경영상 차질이 있을 것”이라며 “제재나 자산동결 등 실제 구체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판단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