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쓰듯 물쓰면? [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깨끗한 물은 축복이다. 지구 내 존재하는 물의 대부분은 소금물.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담수는 2.5%에 불과하다. 담수 중에서도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은 더 극소수. 그마저 환경오염 여파로 갈수록 줄어든다. 전 세계에서 매주 평균 3만명이 오염된 물로 사망한다. 이상기후로 홍수와 가뭄이 급증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물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물쓰듯’ 물을 쓰면 큰일 날 시대다.
우리가 하루에 쓰는 물 사용량은 얼마나 될까? 국가상수도정보시스템 상수도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295.1ℓ. 2019년(294.9ℓ), 2018년(294.7ℓ), 2017년(289.2ℓ), 2016년(287.1ℓ) 등 최근 5년간 보더라도 매년 조금씩 증가세다. 이 수치는 1인당 사용량이다. 전체 인구로 사용량을 비교해보면, 5년 전보다 하루에 5억6378만ℓ를 더 쓴 셈이다. 1년으로 따지면? 5년 전보다 한 해 동안 2057억ℓ를 더 썼다.
가정에서 가장 물을 많이 쓰는 건 무엇일까? 목욕 등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알고 보면 변기로 흘려보내는 물의 양이 더 많다. 가정에서 낭비되는 물의 양을 줄이는 데에 양변기 역할이 중요한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양변기 대부분은 용량이 13ℓ에 이르렀다. 지금도 연식이 있는 상당수 변기는 이 같은 대용량이다.
그래서 널리 알려진 절수법이 물탱크 안에 벽돌이나 물을 채운 페트병을 넣어 물 용량을 줄이는 방식이다. (대용량 변기라면 내부 부품 파손 우려가 없는 한 여전히 좋은 절수 방안 중 하나다.)
정부는 신축 건물에 설치되는 양변기 물 사용량이 6ℓ 이하가 되도록 의무화하는 수도법 개정안을 2014년부터 시행 중이다. 하지만, 기존 설치된 양변기는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적지 않은 변기는 이 같은 용량 제한에 열외다. 2020년 5월엔 수도법 시행규칙을 개정, 양변기 사용 수량 조절 부속품을 임의로 조정하기 어려운 양변기만 제조·수입하도록 했다.
나아가 소비자가 변기의 용량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됐다. 지난 18일부터 절수설비 제조·수입자는 절수설비에 절수등급을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대상은 신축건물에 들어가는 절수설비, 숙박업이나 목욕탕 등 물 사용량이 많은 업종, 공중화장실 등이다. 1회 사용수량이 4ℓ 이하는 1등급, 5ℓ 이하는 2등급, 6ℓ 이하는 3등급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1등급 변기가 기존 6ℓ 변기 대신 전국 2300만여대가 보급된다고 가정할 때 연간 1억5000만t의 물을 아낄 수 있다. 특히, 수돗물 생산 과정에 소요되는 에너지도 절감할 수 있다. 탄소배출량으로 연간 1만3700t을 절감할 수 있는 효과다.
기존 제품은 어쩔 수 없지만, 향후 출시되는 제품을 구매할 땐 소비자들이 등급으로 쉽게 절수효과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절수용 변기가 세척 등에서 기존 제품 대비 불편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업계의 기술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미국에선 1994년부터 미국 내 모든 가정에서 변기 물의 양을 6ℓ 미만으로 제한했다. 2006년엔 ‘워터센스’ 인증 프로그램 시행으로 약 4.8ℓ 이하만 쓰는 제품엔 인증을 더해주고 있다. 6ℓ란 수량은 이미 오랜 기간 충분히 시장에서 검증(?)된 수량인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19년 “사람들이 변기 물을 한 번이 아닌 10번, 15번씩 내리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물이 너무 적으니 변기 물 사용량 규제를 완화하자는 취지였다. 요는 환경규제가 과도하다는 골자의 발언이었지만, 미국 사회 내에선 ‘화장실게이트’란 해시테그로 해당 발언을 반박하는 유행이 일 만큼 반발도 상당했다.
굳이 따지자면, 당연히 넉넉한 물이 편리하긴 하다. 혹여나 제대로 처리되지 않을까 걱정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린 편리함만 보며 살아왔다. 절수용 변기. 10번이나 내릴 일이 있을까 싶지만, 간혹 2~3번쯤 내려야 할 수도 있다.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해야 할 때가 왔다. 깨끗한 물의 축복을 이어가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