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의혹 이어 곳곳서 투기 정황 포착
2030 무주택자 박탈감 호소
“또 속았다” 정부에 배신감·불신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내 집 하나 마련하겠다고 전전긍긍했는데 허탈합니다.” “혹시나 믿었는데 역시나 그들만의 리그였군요. ‘벼락거지’에 바보까지 됐어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에 2030 무주택자들이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흔히 연애·결혼·출산은 물론 내 집 마련과 서울 거주까지 포기한 N포 세대로 불리는 이들이다. 웬만한 시련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맷집이 단단해졌다지만 이번 논란에는 타격이 상당한 분위기다. 2·4공급대책 발표 당시 정부가 내놓은 확언에 대한 일종의 배신감으로 읽힌다.
2030 무주택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스물 네 번의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해왔다. 대책을 낼 때마다 시장이 가라앉기는커녕 요동쳤다. 집값은 치솟았고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져 갔다. 정부가 25번째 대책을 예고했을 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이유를 알만 하다.
2·4대책은 ‘공공과 물량, 속도’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정부가 직접, 빠르게, 많이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모든 공급정책이 그렇듯 당장 시장에 반영되긴 어려운 내용이다. 그럼에도 시장에선 어느 정도 반응이 왔다. 폭발했던 수요가 일부 관망세로 돌아선 것이다. 거래량이 줄고 매물이 늘고 가격 상승폭이 일부 줄었다는 통계가 이를 방증한다. 물론 2·4대책의 효과라고만 단언할 수 없다. 다만 긍정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봤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정부가 책임지고 할 테니 이번만은 믿어달라’는 절박한 호소가 통했는지도 모른다.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를 자인하며 고개를 숙였고 수요억제 대신 공급확대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스스로 ‘획기적’, ‘공급쇼크’, ‘명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읍소했다. 정부의 절실함을 보고 청년들은 ‘그래, 이번엔 믿어보자’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출범 이후 4년 간 ‘투기와의 전쟁’을 벌여온 정부 내부에 투기꾼이 팽배했다는 사실에 그들은 절망했다. LH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 막 조사를 시작했을 뿐인데 비슷한 투기 정황이 여기저기서 속출한다. 국회의원 가족, 지자체 의회 의원, 지방 공무원까지 주체도 다양하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도 전에 상자 틈새로 재앙이 삐져나온 것 같다. 대체 상자 속에는 얼마나 많은 부정이 담겼을까.
신뢰는 무너졌다. 스물 다섯 번째 배신이었다. 어쩌면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주택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것일지도 모른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공공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장관직을 걸겠다고 했다.
양치기 소년 앞에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더 이상 ‘양치기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사람들은 토로한다. 이제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말뿐이 아닌, 주택공급 성과를 국민의 눈앞에 보여주는 것뿐이다.
eh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