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33% 식품시스템서 배출
“대량 생산-값싼 소비에 불편한 진실”
친환경 농업이 지구생태계 지킴이 첫 발
농약 안 쓴 유기농산물 소비와 맞물리면
지력 회복·물 보호·인체 면역력 증강 효과
“생산부터 가공과 유통, 그리고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까지…모든 과정에서 식품은 본질적으로 기후위기와 관련돼 있다” 미국의 타라 가넷(Tara Garnett) 기후변화연구소 설립자가 강조한 말이다. 기후위기하면 화석연료나 자동차가 떠올려지지만 그의 말처럼 식품도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돼있다. 식품 시스템으로 전체 온실가스의 1/3 정도인 33%(Meridian Institute, 2017)가 배출되며, 식량 재배를 위해 물과 토지를 잘못 사용하면서 환경은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 이로 인한 기후위기는 인류의 먹거리를 위협하며 반격중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 또한 식품 시스템에 있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친환경 농업이 생태계를 지키는 방법=지난해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기후변화’ 단어 대신 위급함을 알리는 ‘기후위기’로의 변경을 주장했다. 실제로 ‘먼 미래의 일’만 같던 기후위기는 이제 우리의 일상까지 침범하는 ‘긴박한’ 문제가 됐다. 국내에서는 이례적인 긴 장마와 잦은 가을 태풍이 몰려오고, 중국과 아프리카에서는 메뚜기 떼가 습격하는 등 세계 곳곳은 기상재해 기록을 갈아치우며 신음하는 중이다. 이상기후 현상은 앞으로 더 잦아질 것이라는 두려운 전망까지 나온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은 이에 대한 주요 원인을 “현재의 식량 생산 시스템과 소비 패턴”이라고 지목하면서 “그 안에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고 꼬집었다. 무분별한 대량 생산을 통해 값싸고 간편히 먹겠다는 인류의 목표가 환경을 오염시켜 기후위기를 가속화했다는 문제 제기다. 즉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면 현재의 식품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대안은 친환경적인 농업이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뿌리지 않는 친환경 농업은 토양을 보호한다. 기후위기에 토양이 중요한 이유로는 우선 토양 생물의 다양성 보전을 들 수 있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지구생명보고서 2020’에서 “토양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물다양성 저장고’ 중 하나이기 때문에 토양내 생물 다양성이 없어지면 육상 생태계는 붕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토지의 오염은 탄소 배출로 연결돼 대기 오염까지 일으킨다. 살충제 등으로 토양 미생물들이 파괴돼 토양의 질이 나빠지면 식물이 토양에 가두어 둔 탄소가 다시 대기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반면 유기농업으로 밀재배를 할 경우 토지 1헥타르(㏊)당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일반 농업에 비해 60% 감소된다는 유럽·지중해 기후변화센터(CMCC)의 연구가 있다. 지난 2018년 국제기후변화협의회(IPCC)총회에서는 “유기농 토양이 이산화탄소를 효과적으로 흡수해 대기권 온실가스의 최대 40%를 감축할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됐으며, 이에 따라 기후위기 대처법으로 유기농 채소농업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토양이 오염되면 식물의 성장도 방해받아 영양소가 떨어진다. 미국 에코올가닉스 기관의 어거스트 더닝(August Dunning) 박사는 “우리가 1950년대 한 개의 사과로 섭취했던 미네랄 양을 얻으려면 1998년에 생산된 사과 26개를 먹어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친환경 농업은 토양과 대기에 이어 수질오염도 줄일 수 있다. 친환경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오염된 물을 농업용수로 쓰거나 유해 화학물질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물로 흘러들어가는 오염도 막는다.
지구 생태계 복원의 시급한 과제도 풀 수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연구진은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최신호를 통해 “환경오염에 견디지 못한 생물들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생물의 다양성 파괴는 갑작스럽게 우리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친환경 농업은 자연의 훼손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한편 최대한으로 생태계를 보호하면서 생물의 다양성 유지를 돕는다.
또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식량안보 위기에도 중요하다. 특히 식량자급률이 46.7% (농림축산식품부, 2018)로 낮은 우리나라는 세계 식량위기 발생시 큰 위협을 받을 수 있으므로 친환경 농법을 통해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내년도 ‘식량안보 강화’ 예산을 올해보다 4배 이상 확대한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자리잡고 있다.
▶친환경 농산물, 건강도 지킨다=환경을 지켜내는 친환경 농업은 우리의 건강도 지켜준다. 살충제 등의 농약은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으로, 소비자는 이러한 농산물 잔류 농약이나 중금속, 유기오염물질, 유해생물 등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수많은 농민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식품의 안전성뿐 아니라 영양소 혜택에 대한 연구도 많다. 국제저널 독성학(Toxicology Science) 최신호에 실린 미국일리노이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농약을 포함한 환경오염 물질들은 장내 미생물의 환경을 바꾸면서 면역력등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유기농 식품이 암 발병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는 여러 차례 나왔다. 미국의사협회저널에 실린 프랑스 연구(2018)에 따르면 유기농 식품을 많이 섭취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비호지킨 림프종(면역 담당 림프구의 종양) 발병률은 73%, 폐경 후 유방암 발병 가능성은 21%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에는 면역력을 돕는 파이토케미컬 성분이 일반 농산물보다 유기농산물에 더 많다는 연구(미국 텍사스 주립대·우루과이 농목축산연구소)가 발표된 바 있다.
▶친환경 식품 이끄는 ‘가치 소비’ 트렌드=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친환경 농산물의 가치가 최근 소비자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러한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환경과 윤리를 고려하는 ‘가치 소비’ 트렌드가 일면서 유기농을 비롯한 ‘지속가능식품’의 소비가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4월 발표된 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 커니(Kearney) 연구에서는 미국 소비자의 절반 가량이 “코로나19로 환경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으며, 약 11%의 소비자는 지난 1년 간 “제품의 환경보호 표기에 따라 구입을 바꾼 적이 있다”고 답했다. 국내 상황도비슷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지난 2월~4월)에 따르면 “코로나사태 이전보다 친환경농산물의 구매량이 늘었다”고 답한 소비자 비중은 21.2%로, 감소했다는 응답(8.1%)보다 많았다.
▶정부, 지속가능식품의 가치 강조=정부도 나서고 있다. 친환경농업의 육성을 위해 인증제도도 개선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8월 말 시행된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해 ‘친환경 농어업’의 정의부터 바꿨다. ‘안전한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이라는 뜻에서 ‘농업생태계의 건강과 생물의 다양성 등 생태환경 보전의 실천·과정 중심’으로 그 의미를 확대한 것이다. 환경을 보호하고 식량안보를 지키며, 국민 건강에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서는 ‘친환경농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즉 사람과 자연이 모두 건강해지는 ‘지속가능한 농업 생태계 조성’의 강조이다. 주형로 친환경농산물자조금 위원장은 “코로나19로 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앞으로 친환경농산물이 더욱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며 “인류의 건강과 지구 생태계를 위한 친환경농업의 가치에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육성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