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법적 제재 피해…갑질 행태 시정 약속

공정위, 애플의 자구안 실천 여부 지켜보기로

애플 측 남는 장사…수백억 과징금 안내고 해외서 기존 영업구조 유지

애플 로고 [연합]
애플 로고 [연합]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애플에 대한 제재를 중단하고, 자진시정안을 받아주기로 했다. 국내 이동통신사를 상대로 광고비 갑질을 저지른 애플은 법적 처벌을 피하게 됐다. 미국 기업에 면죄부를 줬다는 논란이 일 전망이다.

공정위는 지난 17일 전원 회의에서 애플코리아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 건과 관련,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고 18일 밝혔다. 동의의결은 공정위가 제재를 내리는 대신 사업자가 제시한 원상회복 또는 피해구제 방안을 받아들이는 절차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애플은 크게 3가지의 시정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먼저 애플은 그간 SK텔레콤·KT·LG유플러스에 일방적으로 광고비를 떠넘긴 관행을 없애고 거래조건을 개선하기로 약속했다. 또 앞으로는 비용 분담을 협의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상생지원기금을 만들어 중소사업자나 소비자를 위해 쓰겠다고 했다.

공정위는 이러한 애플의 시정방안이 합리적이라고 봤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적 제재보단 자율 시정을 통한 신속한 거래 질서 개선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단말기와 이동통신 시장은 대표적인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으로 변화가 빠르고 동태적인 시장인 동시에 국민 일상생활과 밀접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발적 시정을 통해 애플과 통신3사 간 '갑을'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고, 중소사업자나 소비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봤다.

법을 위반한 미국 기업에 면죄부를 부여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고 잘못된 거래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절차로 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애플은 법적 처벌을 피하는 동시에 천문학적인 이득을 보게 됐다. 우선 제재를 받았다면 관련 매출의 2%까지 과징금으로 내야 했다. 대내외적으로는 과징금 규모가 수백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게다가 애플은 해외서 기존의 영업구조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애플은 다른 나라서도 통신사에 광고비, 사후서비스(AS) 비용 등을 떠넘기고 있는데, 한국 법원에서 이같은 행위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해외서 이뤄지는 관행까지도 시정해야 했다.

길게는 5년 동안 법원서 불복 소송을 이어가며 부담해야 할 리스크를 피하는 대신 혐의를 일부 인정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게 애플 입장에선 합리적이기도 하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조 위원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유통-납품업계 상생협약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조 위원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유통-납품업계 상생협약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이번 공정위의 결정에 조성욱 공정위원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조 위원장은 올 초 업무계획을 통해 "ICT 분야에서 동의의결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두 차례 애플의 시정방안에 퇴짜를 놓은 것도 결국엔 동의의결을 받아주기 위한 절차였다는 분석이 있었다.

애플은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SKT와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사에 광고비, 제품 수리비 등을 떠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아이폰·아이패드·애플 워치 등 광고를 제작할 때 이통사한테 걷은 '광고 기금'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매장에 전시하는 애플 제품 구매비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무상 수리비 일부도 이통사가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