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헤럴드디자인포럼] “답 내놓는게 목표였던 디자이너 질문하고 분석하기로 역할 이동”

“한때는 디자인의 목표가 답변을 제공하는 것으로 인식됐습니다. 깨끗한 물을 생산하기 위한 디자인, 더 많은 자동차를 판매하기 위한 디자인 등등. 그러나 이제 디자이너들은 답을 얻고 싶은 만큼이나 질문을 하고 싶어 합니다.”

1952년 영국 출생인 데얀 수직은 세계 디자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론가이자 평론가로 꼽힌다. 현재 런던 디자인뮤지엄 관장을 맡고 있는 그는 국내에서는 ‘거대 건축이라는 욕망(2011)’, ‘사물의 언어(2012)’ ‘바이 디자인(by Design, 2014)’ 등의 저서로 잘 알려져 있다. 오는 15일 헤럴드디자인포럼 2018에서 그의 국내 첫 강연이 열린다.

‘디자인의 미래(How fast can we go? The future of design)’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청중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헤럴드경제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미리 들어봤다.

데얀 수직은 디자인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디자인은 한때 답을 제공하는 것에 목표를 둔 과학적 방법의 하나로 인식됐고, 그 결과 디자이너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면 특정 문제에 대한 최적의 방안을 도출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며 “그러나 자신의 역할을 이런 방식으로 보지 않는 디자이너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술이나 형태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새롭게 만들어진 기술과 형태가 향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탐구하는 데 디자인을 적용하는 예술가가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인터넷이 인공지능이 되고 디지털이 생체 공학이 된다. 또 부유한 사람들과 디지털 집권층은 인간의 수명을 1000세까지 늘리고, 화성에서의 휴가를 추구하고 있다”며 “우리가 직면한 이같은 상황의 결과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을 ‘미래를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다.

그는 “디자인이 항상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바꾸려고 제안하는 건 도발적인 방법”이라며 “신중한 결정을 통해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실수나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이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는 헨리 포드와 스티브 잡스를 예로 든다. 포드는 자동차를 대량 생산해 저렴한 교통수단을 만들었을 뿐, 교통 체증이나 끝 없이 뻗어나가는 교외 지역을 만들 의도는 없었다. 잡스는 아이폰이라는 매력적인 기기를 제작했지만, 트위터, 우버, 틴더가 정치나 여행 방식, 파트너를 찾는 법 등에 변화를 줄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 디자인포럼의 주제인 ‘지속 가능한 미래를 디자인하다’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디자이너에게 ‘지속 가능한’이란 개념은 과거의 기능주의를 대신하는 일종의 지적인 버팀목”이라며, “형태와 상상력에 대한 디자이너의 책임감에서 ‘분석하기’로 역할을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디지털 혁명은 무한한 수의 물건들을 없애고 쇼핑몰을 죽일 수도 있다”며 “우리는 진정한 지속 가능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수 도시건축 프로젝트에서 디텍터를 맡았던 데얀 수직은 도시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들려줬다. 그는 “도시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완성돼 있다거나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도시화(化)에서 디자인의 역할은 수술보단 침술에 더 가깝다. 공간 구성이나 용도를 계획하는 데 있어 향후 변경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정도가 가장 긍정적인 개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도시ㆍ건축 디자인에 대해서도 운을 뗐다. 그는 “서울이라는 도시로부터 일제강점기 전후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구조와 서로 다른 층들을 이해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며 “한국의 건축가 중에서는 승효상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1세대 모더니즘을 이루는 독특한 감성을 개발했고, 그 감성에는 유럽에서의 그의 시간이 반영돼있기도 하다”고 전했다. 한편 데얀 수직은 새로운 저서 집필을 준비 중이다. 위협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전통적 가정 생활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가 가정에 대해 무엇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깊이 담아보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박물관을 이끄는 것 만큼이나 집필 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다만 지금은 개인적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일을 다시 고민 중이다. 위대한 일본 디자이너 시로 쿠라마타와 관련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