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만 있고 ‘워킹대디’ 없는 한국 -안심하고 아이 맡길 곳이 절실 -국공립 어린이집ㆍ유치원 늘려야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 워킹맘인 C씨(40)는 올 3월부터 아이를 사립유치원에 보내고 있다. 주변에 병설유치원이 있긴 하지만 거리가 좀 멀어서 추첨에 당첨되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당첨이 되더라도 보내기가 어렵다. 병설유치원을 비롯한 국공립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차량 운행을 하지 않기때문이다. 결국 집 근처에서 괜찮다고 소문이 난 사립유치원에 운 좋게 합격이 돼서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연간 700만원 정도 드는 학비가 부담이긴 하지만, 차량 운행도 되고 한달 이상 다녀보니 아이가 재미있게 다니는 모습을 보여 안심하고 맡기고 있다. C씨는 돈이 들더라도 아이가 즐겁고 안심하며 다닐 수 있는 유치원에 들어가게 된 것에 그나마 만족하고 있다. 수차례 어린이집을 바꿔 다니면서 걱정에 늘 맘 고생이 심했던터라 안심보육이 되는 곳이라면 괜찮다는 입장이다.
#. 전업맘인 K씨(35)는 올해 유치원 추첨에 떨어져서 결국 한 놀이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다. 인근의 괜찮다는 사립유치원은 경쟁률이 높아 추첨에서 떨어졌기때문이다. 아침마다 놀이학교에 안 가겠다며 울고불고 떼를 쓰는 아이를 억지로 놀이학교 차량에 태워 보내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다. 그나마 일을 하지 않으니 아이를 짧은 시간만 보내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놀이학교 비용은 한달에 100만원대로 유치원 보다 훨씬 비싸지만, 갈 곳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때 아닌 유치원 논란으로 시끄럽다. 발단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지난 11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한국유치원 총연합회 사립유치원 유아 교육자대회 연설에서 “대형 단설유치원의 신설을 자제하고, 사립유치원에 대해 독립 운영을 보장하겠다”는 발언에서 비롯됐다. 국공립 대신 사립유치원만 늘리겠다는 데 논란이 확산되자 안철수 후보는 “단설유치원 대신 병설유치원을 6000개 학급에 추가 설치해 공립유치원 이용률을 40%로 확대하겠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보육 실상을 모르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한국은 참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다는 생각이 수차례 든다. 저출산이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곳을 쉽게 찾아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주변의 미혼 여성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아이가 없어 난리라고 하는데, 보낼 곳이 왜 그렇게 없어요?”라고.
한국은 아직까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법적인 보장기간까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법적으로는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2개월 등 총 15개월을 쓸 수 있지만, 실제로 15개월을 쉬는 사람은 매우 적다. 교사나 공무원의 경우, 육아휴직이 24개월이라 상대적으로 긴 편이긴 하다. 상황이 이렇기에 아이 출산 후 최소 3개월에서 최대 13개월 안에는 아이를 맡길 곳이 필요하다. 이때는 아이가 아직 말도 하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심하고 맡길 곳이 특히 필요하다.
하지만 입소대기 신청을 해도 아이 한명인 경우, 국공립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그러니 자연히 민간 어린이집을 찾게 되는데, 등하원 시간이 출퇴근 시간과 맞지 않는다. 한마디로 늦게 보내고 일찍 찾아야 하니 출퇴근시간과 불일치하는데서 오는 워킹맘의 심적 부담과 스트레스는 크다.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유치원도 마찬가지다. 병설유치원의 추첨은 어렵고, 설령 된다고 해도 집이 가깝지 않으면 등하원 시키는데 상당히 애를 먹을 수 있어 기피하는 경우가 있다. 사립유치원과 달리 병설유치원은 차량 운행을 하지 않는다. 안전상의 이유다. 하지만 워킹맘의 경우, 병설유치원이 아무리 좋아도, 또 추첨에 된다고 해도 보내기가 어렵다. 차량이 운행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기때문이다.
사립유치원도 극과 극이다. 괜찮다고 입소문이 난 곳은 추첨 경쟁률이 몇 대 1을 기록할 정도로 들어가기 어려운 반면, 그렇지 않은 곳은 원아를 모집해 정원을 채우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안철수 후보가 유치원 논란에 휩싸이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6개의 보육정책 공약을 내놓았다.
국공립 어린이집 40% 확대, 보육료 현실화, 보육교사 8시간 노동제 도입, 누리과정 지원금 강화, 보육ㆍ요양ㆍ간호 등 3대 돌봄 일자리 공공성 강화, 육아휴직급여 2배 및 아빠육아휴직보너스제 도입 등이다.
먼저 현재 12.1%에 국공립 어린이집 이용 아동을 40%까지 늘리겠다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워킹맘이 경력단절이 되지 않으려면 아이가 어릴 때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어린이집이 많아야 한다. 또 보육교사 8시간 노동제 도입도 환영할 만하다. 현재 상당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보육교사들이 8시간 이상 장시간 일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직이 잦고 피로감에 아이들 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이렇게 될 경우 일부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보조교사를 쓰는데 드는 추가비용이 부담돼, 등하원 시간을 더욱 짧게 운영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취지는 좋지만, 실제 운영과정에서 이를 빌미로 보육시간을 단축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때문이다. 철저한 단속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다.
육아휴직급여 2배 및 아빠가 육아휴직 사용시 6개월까지 육아휴직 급여를 소득대체율 80%, 상한 200만원 지급한다는 ‘아빠육아휴직보너스제 도입’도 환영할 만하다. 다만, 이에 앞서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 조성이 먼저 이뤄질 필요가 있다.
대선후보들의 보육정책 공약을 보면서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한국의 보육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단설, 병설, 사립유치원을 따지기 전에 근본적으로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곳을 확보해달라.”
아마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아이를 안심하고 맡기고 일할 수 있는 사회적인 제도와 분위기 조성이 우선이다. 당장 국공립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대거 늘려야 하고, 근본적으로는 ‘워킹맘’만 있고 ‘워킹대디’는 없는 한국 사회의 인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엄마와 아빠, 워킹맘과 워킹대디 모두의 일이다. 아빠도 엄마처럼 아이가 아프면 조퇴를 할 수 있고,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워킹맘의 부담도 한결 가벼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