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측에 성추행 제보 전한 관리자 논란 -익명성의 명암…“제보글 게시 신중해야”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 서울 시내의 A대학교에서 남학생이 여후배를 성추행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익명 제보로 운영되는 대나무숲의 관리자 대처법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22일 한 대학 정보 커뮤니티 페이스북에 학내의 성추행 사건을 폭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피해자 A씨의 언니라고 주장한 제보자는 “단과대 학생회 새내기 기획단 모임에서 한 학생이 동생의 신체 부위를 만졌고 동생은 놀라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고 했다. 이어 “이 내용을 대학의 대나무숲 페이지에 전했지만 관리자가 예민한 사안이라며 사연을 올려주지 않았고 오히려 가해자가 다니는 단과대에 이 사실을 알렸다”고 했다.
피해자의 신상 노출을 두고 재학생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대나무숲 관리자는 “사건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대나무숲 전 관리자이자 해당 단과대에 다니는 학생에게 알린 것 뿐”이라며 “제보자의 신상 정보는 알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실확인을 이유로 가해자측에 제보 내용을 알린 것에 대해 재학생들은 여전히 분개하고 있다.
대나무숲 관리자는 제보글의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글을 게시해야 할까.
대나무숲의 가장 큰 특징인 ‘익명보장’은 재학생들이 대학 내 문제를 자유롭게 제기하고 공론화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선배의 가혹행위, 성범죄, 불합리한 학교 문화 등을 바꾸는 계기를 제공한 것도 대나무숲이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서울의 B대학교 중간고사 기간에 벌어진 집단 부정행위 사건을 알린 곳도 대나무숲이었다. 이후 해당 학생들이 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는 모두 익명성이 주는 순기능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익명성의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사실관계 확인이 힘들다는 점을 악용한 근거없는 제보글이 난무하면서 곤욕을 치룬 학교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한 대학교의 대나무숲에는 과거 자신을 강간한 학생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글이 올라와 가해자로 추측된 학생의 신상까지 털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나 확인결과 사실무근으로 판명나면서 당시 대나무숲 관리자는 “폭로글, 저격글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필터링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나무숲 관리자가 남을 대신해 글을 올리는 만큼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변호사는 “대나무숲 관리자가 제보글의 사실여부를 할 권리나 의무는 없지만 제보글이 만약 허위사실이라면 글을 게시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사실을 기초로 한 글이더라도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책임을 물어야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확인을 위해 수사대상이 될 수 있는 가해자 측에만 진위 여부를 묻는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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