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에디 앨리스: 테이크’ 개봉

활동가 에디, 전 조명감독 앨리스

‘나’를 찾아가는 트랜지션 4년 기록

“다시 태어나도 기꺼이 나이기를”

다큐 ‘에디 앨리스: 테이크’에 출연한 트랜스여성 에디, 앨리스. 이상섭 기자
다큐 ‘에디 앨리스: 테이크’에 출연한 트랜스여성 에디, 앨리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 이름 에디 · 나이 39세 · 별명 ‘유니콘’ · 직업 인권활동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커뮤니T’ 대표 · 2022년 성확정 수술 · 트랜스젠더 여성

“몸과의 싸움은 끝났어요. 다만 몸을 드러내는 건 아직 어려워요.”

#2. 이름 앨리스 · 나이 53세 · 별명 ‘큰 나비’ · 직업 전 영화 조명감독, 현 회사원 · 2013년 성확정 수술 · 트랜스젠더 여성

“나비가 될 줄 알았는데, 아직 애벌레로 머물러 있어요.”

두 명의 트랜스젠더 여성이 있다. ‘트랜지션(Transition)’, 태어날 때 정해진 성별이 아닌 스스로 알고 있는 성별로 살아가기 위해 몸과 삶을 바꿔 가는 과정. 에디는 “몸을 바꾸는 일뿐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내 삶을 해석해 내는 모든 과정이 트랜지션”이라고 했다. 주어진 성별을 떠나 같은 강을 건넜지만, 세상과 맞닿는 방식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가 김일란 감독의 다큐멘터리 ‘에디 앨리스: 테이크’(10월 28일 개봉)에 담겼다.

두 사람, 두 개의 트랜지션

영화는 앨리스의 이야기로 문을 연다. 앨리스는 20년 가까이 현장을 지킨 베테랑 조명감독이다. K-드라마와 K-무비가 위세를 떨치는 동안 영화와 드라마 현장에서 조명을 들었다. “남자답게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평생의 직업이 됐다. 앨리스라는 이름은 이준익 감독이 지어 줬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다며 “앨리스 어떠냐”고 건넨 한마디였다.

다큐 ‘에디 앨리스: 테이크’에 출연한 앨리스. [시네마달 제공]
다큐 ‘에디 앨리스: 테이크’에 출연한 앨리스. [시네마달 제공]

카메라는 그 뒤로 에디를 따라간다. 에디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과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에서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도운 활동가다. 먼저 걸어온 길이었기에 에디가 건네는 말에는 분투의 흔적이 배어 있다. 촬영이 이어지던 몇 해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촬영을 막 시작한 2021년 3월, 동료 활동가이자 친구였던 변희수 하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성확정 수술 뒤 강제 전역 처분을 받고 소송을 이어 가던 중이었다. 이듬해 에디는 태국으로 건너가 성확정 수술을 받았다. 영화는 이 모든 시간을 담담히 응시한다.

두 사람은 참 다르다. 에디는 “트랜스젠더가 1000명이면 원하는 몸도, 트랜지션도 1000가지”라고 했다.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은 에디를 ‘유니콘’이라 불렀다.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아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전쟁통에도 웃을 것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앨리스를 본 성소수자들은 “꼭 내 이야기 같다”고 입을 모은다.

영화 촬영을 마치고 2년. 개봉을 앞두고 만난 에디는 “가장 빛나는 순간을 찍은 게 아니라 그냥 흘러가는 삶을 찍은 거라, 찍고 나서도 일상은 똑같이 흘렀다”고 했다. 그사이 에디는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 필요한 자원을 나누는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겠다며 단체 ‘커뮤니T’를 세우고 대표를 맡았다. 변희수재단의 법인 설립에도 힘을 보탰다. 앨리스는 극영화 일을 내려놓았다. 지금은 영화와 무관한 회사에 다닌다. “말 그대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어요.”

다시 만난 스크린 속 자신은 낯설고도 익숙하다. 에디는 “3년 차이인데 피부도 체형도 달라졌다”며 웃었다. 앨리스는 2년 전의 자신을 거울 삼았다. 소통 방식에서의 서툶을 발견하고, 고쳐 나갈 점을 찾는다. 그렇기에 앨리스에게 이 영화는 ‘참고서’다.

“영화의 기록은 과거잖아요. 저인데도 떨어진 개체로 바라보게 돼요. 남들은 갖지 못한,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비교 대상이죠.” (앨리스)

다큐 ‘에디 앨리스: 테이크’에 출연한 에디. [시네마달 제공]
다큐 ‘에디 앨리스: 테이크’에 출연한 에디. [시네마달 제공]

삼킨 말과 지켜 낸 거리

“여자야, 남자야?”

호르몬 치료만 받던 시절, 서류 속 성별이 바뀌기 전, 에디는 길 위에서 이런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 일자리를 구할 때도, 집을 구할 때도 매번 설명이 필요했다고 돌아본다.

불편한 시선은 종종 ‘호의의 얼굴’을 하고 온다. 에디는 이를 ‘선의의 따귀’라고 표현했다. “‘너 되게 여자 같다’, ‘말 안 하면 트랜스젠더인지 몰랐어’ 같은 말이요. 칭찬으로 하시는 말이지만, 그 밑엔 ‘트랜스젠더처럼 보이는 건 좀 그렇다’는 생각이 깔려 있거든요.” (에디)

반복되는 질문과 호기심 앞에서 에디는 말을 삼키는 데 익숙해졌다. 해야 할 말은 많지만, 너무도 많은 것을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내내 따라다녔다. 에디는 “저희는 열을 말해야 하는데, 듣는 사람의 감수성에 맞추다 보면 하나밖에 말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앨리스는 에디와는 또 다른 삶 속에 있었다. 그는 “처음 만나 대화할 때 타인에게서 당혹스러운 머뭇거림이 보인다”고 했다. “큰 키와 목소리 때문이죠.” 도돌이표 같은 반응에 일일이 마음을 쓰진 않는다. 스쳐 가는 사람은 그저 스쳐 가게 두는 것이 앨리스의 방어법이다. 하지만 매일 얼굴을 맞대는 일터에선 겹겹이 감정이 쌓이고 부딪혔다. 20년을 몸담은 영화 현장이 그랬다.

“어떤 현장에선 무언의 압박과 혐오를 느낀 적도 있어요. 곁을 지켜주던 사람들이 하나둘 줄었고요. 어떤 곳에서든 ‘일을 못해서’ 잘리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 사람이 싫으니 ‘일 못하는 사람’이라는 틀을 씌울 뿐이죠.” (앨리스)

지금 다니는 물류 회사의 동료들은 앨리스가 어떤 옷차림을 하든, 외모가 어떻든 무관심하다. 각자 맡은 일만 잘 해내면 그만이다. 앨리스는 “이곳에서 비로소 ‘안전’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다큐 ‘에디 앨리스: 테이크’에 출연한 트랜스여성 에디, 앨리스. 이상섭 기자
다큐 ‘에디 앨리스: 테이크’에 출연한 트랜스여성 에디, 앨리스. 이상섭 기자

싸우고, 화해하는 시간

두 사람의 삶은 끊임없이 자기 몸과 싸우고, 몸을 받아들이고, 몸과 화해하는 시간이었다.

에디에게 트랜지션은 오랜 준비의 과정이었다. 어머니에게 수술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무려 9년. 그 시간 동안 ‘정말 수술을 원하는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활동가의 적은 월급으로 비용을 모으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수술을 받은 것은 서른다섯이었다.

“몸과 싸우는 일이 줄었으니 이젠 제 몸과 관계가 좋아요. 문제는 너무 좋아서 살이 찌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에디는 요즘 호르몬보다 다이어트 주사를 더 고민한다며 경쾌하게 웃었다. 다만 그는 “어떤 순간에 내가 어떤 성별인지 인식하는 과정은 수술을 한다고 끝나지 않는다”고 했다.

앨리스의 삶은 한순간의 결단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어진 성별’로 살기 위해 40년의 시간을 몸부림쳤고, 세상이 정한 규율과 가치를 따랐다. 자신의 마음을 부정했고, 응당 부정해야 한다고 믿었던 날들이었다. 남성으로서 결혼했지만 1년 만에 이혼을 선택했다. 그것이 앨리스의 도화선이었다. 그는 “남자로 살려고 노력했지만, 도저히 안 돼서 스스로 둑을 무너뜨렸다”며 “남자로서의 삶을 접고 한꺼번에 바꾼 삶”이라고 했다. 트랜스젠더가 일반적으로 거치는 과정과 달리 수술을 먼저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술을 ‘완성’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어요. 사회적 기준에 부합해야만 여성으로 인정받는다는 시선이 있죠. 하지만 제겐 그 사회의 기준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40년 동안 남자로서 남의 기준에 맞추고 살아왔는데, 이젠 그게 아니라 오직 ‘내가 원해서 선택하는 삶’을 살고 싶었거든요.” (앨리스)

영화 속 앨리스는 치열한 ‘몸과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나의 것’이지만 아직 마주하기 어려운 몸을 끊임없이 확인해 간다. 앨리스는 “영화 촬영 당시에도 화면 속 내 몸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두려웠고, 그 마음은 지금도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다큐 ‘에디 앨리스: 테이크’ [시네마달 제공]
다큐 ‘에디 앨리스: 테이크’ [시네마달 제공]

앨리스는 남성으로 살던 시절 연인에게 들은 말을 오래도록 품고 있다. “당신은 왜 스스로의 삶을 타인의 것인 양 함부로 대하느냐”는 물음이었다. 자신의 몸과 삶조차 내 것이 아닌 듯 겉돌던 시간을 앨리스는 부정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앨리스는 이제 “오랜 시간 휘어져 있던 삶의 영점을, 내가 진정 원하는 모습과 생활 방식에 천천히 맞춰 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럼 너는 누군데?”

벌처럼 날카롭고, 티타늄처럼 단단해 보여도 이들에게도 일상의 얕은 상처가 켜켜이 쌓여 때론 눈물을 쏟고 화를 내기도 한다. 에디는 두 사람이 겪는 상처의 뿌리가 사회가 두텁게 쌓아 올린 벽에 있다고 했다.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이래야 하고, 트랜스젠더는 이래야 한다는 틀이 있어요. 아무리 멋지게 살아도 그 벽 앞에서 우리는 늘 부족한 사람이 돼요.” (에디)

그토록 오랜 시간 성(性) 정체성을 고민했지만, 무엇이 성별의 잣대가 되는지는 어려운 질문으로 남는다. 에디는 “나는 남자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답은 ‘그럼 넌 여자야’밖에 없다”고 했다. 둘 중 하나로는 가를 수 없는 것이 있지만, 세상은 여기에 더 많은 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누군데?’ 하고 되물어 주는 사회라면, 이렇게 두꺼운 방패를 두르지 않아도 괜찮을 거예요.” (에디)

에디와 앨리스는 이 영화 한 편이 모든 트랜스젠더의 삶을 대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저 ‘의료적 트랜지션’을 선택한 에디와 앨리스의 이야기이자,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담아낸 작은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영화를 통해 바라는 건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너무도 쉽고 당연하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아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것들이다.

다큐 ‘에디 앨리스: 테이크’에 출연한 트랜스여성 에디, 앨리스. 이상섭 기자
다큐 ‘에디 앨리스: 테이크’에 출연한 트랜스여성 에디, 앨리스. 이상섭 기자

“트랜스젠더가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와 화해하려 애쓰듯 사회도 그렇게 다가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에디)

앨리스 역시 “영화, 콘텐츠 속에서 트랜스젠더를 그리는 방식이 조금은 더 다양해지길 바란다”고 했다. 치열하게 남겨진 이 기록이 “에디와 앨리스를 지나, 그다음 누군가의 이야기”로 이어지길 둘은 기도한다.

무수한 편견과 엇갈리는 시선에도 자기만의 언어로 명확히 답해 온 두 사람이지만, 이들의 삶에도 ‘가정법의 질문’은 남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을까.

앨리스는 “성별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삶”, “남들은 하지 않아도 될 고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온전히 나로서 꿈을 꾸는 삶”을 꼽았다. “발레를 하고 싶어요. 발레리나든, 발레리노든 상관없어요.”

자기 몸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마음껏 움직여 볼 기회가 없던 앨리스가 영화에서 춤을 배우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에서다. 정해진 통제 속에서 자유로움을 꿈꾸며, 자기 몸과 비로소 친해지는 소중한 과정이었다.

에디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트랜스젠더로 사는 건 괜찮다”고 말한다. 다만 바람은 있다. ‘성별 정체성’을 존중받으며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는 삶이길 소망한다.

“고달팠지만, 그건 저 때문이 아니라 주변 환경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이 정체성이 없었다면 앨리스도,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도 못 만났을 거예요. 기회를 주는 환경에서 다시 태어나도 에디로 태어나고 싶어요.” (에디)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