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10월 27일 사망한 故 신해철씨. [연합]
지난 2014년 10월 27일 사망한 故 신해철씨. [연합]
살아 생전 헤럴드경제와 인터뷰 할 당시 신해철씨. 윤병찬 PD
살아 생전 헤럴드경제와 인터뷰 할 당시 신해철씨. 윤병찬 PD

[헤럴드경제=고재우 기자]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히 병원에 걸어 들어갔던 환자가 ‘오후’에는 싸늘하게 식어서 돌아옵니다. 가족들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을 시작합니다. 적금을 깨고, 집을 팔아 마련한 돈은 ‘환자가 왜 죽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쓰여 집니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이 의료기관의 책임을 입증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의료분쟁은 크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한 조정·중재 신청(연평균 약 2100건), 민사소송(연평균 약 1000건·보험연구원 연구자료) 등을 통해 이뤄집니다. 매해 ‘3000건 이상’의 의료분쟁이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처럼 펼쳐지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법무법인 오킴스와 함께 다양한 의료분쟁 판례를 분석하고, 다윗이 어떻게 해야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지 톺아보려 합니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메디컬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마왕 신해철 씨가 떠난 지 벌써 11년이 흘렀다. 가요계를 넘어 우리 사회를 향해 다양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그의 마지막 길은 내내 슬펐다.

하지만, 황망한 이별을 맞았던 유가족들은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지난한 법적 싸움, 그 이유는 그의 죽음이 평범하지 않았던 탓이다.

지난 2014년 10월 17일 오전 11시 50분. 신 씨는 복부 통증을 호소하며 A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후 B병원으로 전원됐다. 여기서 그는 의사 D씨를 만난다.

D씨는 복부 CT, 흉부 엑스레이 등을 통해 신 씨를 ‘마비성 장폐색’으로 진단했다. 그리고 그는 같은 날 오후 이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당일에 D씨는 그를 치료했다. 소장, 대장, 위, 복막 사이에 유착된 부위를 박리하고 이 과정에서 약해진 소장 부위를 봉합하는 ‘유착박리술’을 진행했다. 약 15㎝ 위벽을 위 내강 쪽으로 집어넣어 주름을 만든 후 봉합하는 ‘위 봉합술’도 이뤄졌다.

수술을 받은 직후부터, 신 씨의 고통은 시작됐다. 17일부터 19일까지, 그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D씨는 그에게 페치딘(마약성 진통제), 산소 3ℓ, 니트로글리세린(혈관확장제), 몰핀(마약성 진통제), 디아제팜(신경안정제), 트라마돌(비마약성 진통제) 등을 연달아 투여했다.

그래도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19일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고, 해당 사진에서 횡격막 상부 공기 음영이 관측됐다. 그래도 D씨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2일에 신 씨가 병원을 찾았을 때, 그는 의식을 잃게 됐다. 급하게 대학병원으로 가 응급수술까지 받았지만, 27일 오후 8시 19분. 끝내 마왕은 사망했다.

마왕의 믿기 힘든 죽음, 논란의 서막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우리 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던졌다. 사인을 둘러싼 논쟁도 피할 수 없었다.

11월 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소장 천공 부위를 통해 복강 내로 유출된 내용물로 인한 ‘복막염’ ▷복강 내 염증이 심낭 천공을 통해 들어오면서 발생한 ‘심낭염’ ▷동반된 삼출액, 심낭기종 발생과 이에 따른 ‘심낭압전’ 등과 이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 등을 사망 원인으로 꼽았다.

신 씨가 처음 진단받은 장폐색은 소장이 막혀 음식물, 소화액, 가스 등 장 내용물이 통과하지 못하게 되는 질환이다. 크게 기계적인 원인으로 막히는 ‘기계적 장폐색’, 장의 운동 중지로 발생하는 ‘마비성 장폐색’으로 나뉜다.

기계적 장폐색의 경우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으나, 마비성 장폐색의 경우에는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거의 없다.

위장관 유착박리술은 유착으로 인해 장폐색이 발생하는 경우에 시행한다. 위장관과 복벽 유착은 복부 수술 환자의 90% 이상에게 발생하는 증상이다.

중요한 건 복강경을 이용한 유착박리술을 시행할 때 투관침을 삽입하는 과정에서 ‘장천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술 후 면밀한 경과 관찰이 필요한 이유다.

장천공은 복강 내 장기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장 내용물이 복강 내에 고이면 복막염이 발생한다.

국과수가 또다른 사인으로 꼽은 심낭압전은 심낭 내에 공기·액체 등이 차게 되면 심장 내로 들어와야 할 혈액이 제대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 경우 심장 밖으로 나가는 혈액도 줄게 돼 혈압 저하와 심박수 증가, 쇼크 발생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제1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故 신해철 모습. [유튜브 엠플리 캡처]
제1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故 신해철 모습. [유튜브 엠플리 캡처]

“의료상 과실 및 설명의무 위반”…법원은 원고 손 들었다

법적 분쟁이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D씨와 보험회사가 신 씨 유가족에게 약 11억8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신 씨 유가족의 사실상 승소였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가 ‘심리불속행’으로 원심판결을 확정 지으면서다.

앞선 2심(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판사 이창형)에서도 D씨의 의료상 과실은 물론, 설명의무 위반 등이 모두 인정되면서 업무상과실치사 판결이 났다.

D씨가 신 씨에게 시행한 유착박리술, 환자로부터 동의받지 않은 봉합술 등이 관건이었다.

우선 유착박리술의 합리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신 씨의 위 복부 CT 검사 결과 기계적 장폐색을 의심할 만한 소견이 보이지 않았는데, 위장관 유착박리술을 시행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당시 신 씨가 유착박리술이 필요한 정도의 상황도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신 씨와 유가족 동의 없이 진행된 봉합술도 지적됐다. 신 씨가 서명한 수술 마취 동의서에는 ‘위밴드 제거’만 기재 됐을 뿐, 봉합술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법원은 신 씨의 위 변형을 잡기 위한 봉합술이 필요하다고 보지 않았다.

법원은 “소장 천공과 심낭 천공은 시행이 필요하지 않은 유착박리술과 사전 동의를 받지 않은 위 봉합술을 시행하는 도중 발생했거나, 수술 도중 손상을 입은 부위에 지연성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즉, 필요하지 않은 치료행위와 동의 없던 치료행위가 결국 그를 죽게 했다는 의미다.

아울러, D씨의 설명의무 위반도 지적됐다. 설명의무란 의사가 환자에게 수술 과정 등 의료행위를 설명하고, 환자가 해당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법원은 “설명의무 위반으로 신 씨는 (수술을 받을지 말지 결정할) 자기 결정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했다.

조진석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 [법무법인 오킴스 제공]
조진석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 [법무법인 오킴스 제공]

“경험 많은 변호가 승소 이끌었다”

조진석 오킴스 변호사는 신 씨 유가족이 승소한 이유로 의료분쟁 경험이 많은 변호사의 철저한 준비를 꼽았다. 또, 의사 측이 법적 공장 과정에서 신 씨의 의료기록을 유출하는 등 무리하게 대응하면서, 오히려 의사-환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주목받는 등 판결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조 변호사는 “해당 사건이 의료분쟁 경험이 많은 변호사에 의한 진료기록 검토 및 사실관계 확인 등이 사건 초기부터 잘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의료 전문 변호사는 의료분쟁 시 의사-환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참작된 판결이라고 봤다. 특히 D씨 측이 신 씨의 의료기록을 인터넷에 올리는 등 무리하게 대응한 데에, 법원이 괘씸죄를 추가한 것이란 해석도 덧붙였다.

실제 법원은 판결문에서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있어야 하는 분야”라며 “손해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의료상 과실로 인한 것인지, 일반인으로서는 밝혀낼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환자가 의료행위 이전에 건강상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을 증명한 경우를 들며 “의사가 ‘의료상 과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의료상 과실과 결과 사이 인과관계를 추정해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쉽게 말해 신 씨가 수술 받기 전 건강상 결함이 없었다면, 수술과 신 씨의 사망 사이의 증명을 의사가 해야 한다는 것. 일반적인 의료분쟁 판결과는 다른 양상이다.

한 의료 전문 변호사는 “법원의 판단이 이례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며 “D씨가 신 씨의 의료기록을 유출하는 등 무리한 것과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