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제작 의도에 따라 영웅 얼굴 변해
효과적 서사 전달 위해 음악도 달라져
라모 하프시코드·드뷔시 세이렌 야상곡
‘고서방’은 고대 음악·현대 장르 결합해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오디세우스가 활시위를 당기는 그 순간. 거대한 아이맥스(IMAX) 스크린을 뚫고 짧고 단단한 ‘현의 울림’이 극장을 가득 메운다.
‘댕-’
쾌속 질주하는 활 소리를 만들어 낸 것은 장엄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도, 금관이 승리를 선언하는 팡파르도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현악기 리라(lyre)를 뜯는 소리가 오디세우스가 당기는 치명적 활 소리로 현현했다.
음악감독 루드비히 고란손(Ludwig Göransson)은 유니버설 픽쳐스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아이디어는 놀란이 직접 제안했다”고 말했다.
짧고 강렬한 ‘댕’ 소리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관객들 사이에선 “활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이 타격음은 ‘오디세이’의 음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고란손에게 이전과는 다른 “완전히 독창적인 음악”을 주문했다. 고대 그리스를 다루는 영화에 으레 등장하는 익숙한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을 덧칠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시대에는 오케스트라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의 오케스트라는 과거의 악곡을 연주하나 대형 공연장의 음향에 맞춰 개량된 현대 악기를 사용한다. 때문에 원초적 고대의 질감 구현엔 아쉬울 수 있다.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야 하는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고란손은 현대 영화가 사용하지 않는 악기를 찾았다. 고대 그리스 악기인 아울로스(aulos)와 리라(Lyre)를 복원했고, 청동기 시대라는 배경에 맞춰 크기와 형태가 다른 35개의 청동 징을 공수해 신시사이저와 겹쳐 녹음했다. 금속 난간과 벽, 폐금속, 심지어 에어컨 실외기 같은 주변의 사물을 두드리며 낯선 타악기 음색을 채집했다.
관현악의 웅장함을 철저히 거세한 서늘하고 폭력적인 금속성의 타격음은 관객의 세포를 직접 타격한다. 영웅의 낭만적 스펙터클을 기대한 관객에게 던지는 끔찍하고도 매혹적인 청각적 선전포고다.
서양 문학의 거대한 수원지인 호메로스(Homer)의 서사시 ‘오디세이아(Odyssey)’는 시대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마다 전혀 다른 소리의 옷을 입었다. 예술가들은 ‘오디세이아’에 자신의 미학적 욕망과 당대의 결핍을 기꺼이 투영했다. ‘영웅의 얼굴’이 달라질 때마다 음악 형식도 변했다. 21세기 베토벤으로 추앙받으며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아내를 둬 국내 팬들에게 ‘고서방’으로 불리는 루트비히 고란손은 긴 음악적 계보의 가장 끝에 선 주인공이다.
만약 호메로스가 살아있다면,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어떤 소리로 들려줬을까? 이 질문의 답은 서양 고전음악사로부터 놀란 감독의 영화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에서 짐작할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때론 지극히 현실적인 남편이었고, 때론 낭만적 영웅이었다. 이제는 기억의 무게를 짊어진 트라우마를 가진 인간으로 우리 앞에 섰다. 그 때마다 음악은 영웅을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17세기의 오디세우스…‘현실 남편’에게 낭만은 없다
1640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오페라 ‘율리시스의 귀환(Il ritorno d‘Ulisse in patria)’으로 다시 태어난 오디세우스는 ‘신화적 영웅’에서 인간 세계로 내려왔다. 지독하게 현실적이었다. 서양 오페라의 토대를 다진 몬테베르디가 직조한 세계다.
이 오페라는 당시 베네치아의 지식인 모임인 인코니티 아카데미의 세속적이고 철학적인 이데올로기가 반영, ‘신들의 개입’보다는 인간의 인내와 도덕적 승리에 초점을 맞춘다.
몬테베르디의 오디세우스는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라기보다 오랜 부재 끝에 집으로 돌아온 인간이다. 페넬로페가 기다리고 있고, 구혼자들이 궁전을 점령했으며,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귀환한다.
몬테베르디의 음악은 인물의 감정을 말과 노래 사이에서 세밀하게 구분한다. 그는 “음악은 가사의 구문론적, 의미론적 구조에 종속돼야 한다”는 제2작법을 통해 영웅의 화려한 스펙터클 대신 인간 심리의 밑바닥을 집요하게 훑어간다. 아내 페넬로페가 부르는 1막의 긴 비가(Elegy) “불행한 왕비의 고통은 끝이 없네(Di misera regina non terminati mai dolenti affani)”에서 나타나는 반음계적 진행과 예기치 않은 불협화음은 20년간 남편을 기다린 여성의 깊은 절망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오디세우스가 거지로 변장한 채 이타카의 궁정에 잠입하여 구혼자들을 활로 처단하는 피의 복수극(2막 12장)은 그야말로 휘몰아치는 소리의 연속이다. 몬테베르디가 창시한 스틸레 콘치타토(Stile Concitato, 흥분 양식)가 극대화되는 장면이다. 현악기의 쉴 새 없이 빠르고 거친 트레몰로(Tremolo)와 16분음표 리듬이 몰아치며, 억눌렸던 가장의 분노와 폭력성을 난폭하게 분출한다.
오디세우스는 초월적 괴물을 찌르는 반신반인이 아니라, 파괴된 가정과 정치적 권력을 되찾기 위해 기꺼이 피투성이가 되는 지독히 현실적인 군주이자 주체로 묘사된다. 몬테베르디 연구자인 엘렌 로샌드(Ellen Rosand)는 “이 작품에서 음악이 하나의 초월적 주인공으로 존재하기보다 말하듯 진행되는 표현과 노래의 표현이 나뉘어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낸다”고 분석한다.
18~19세기엔 ‘영웅 중 영웅’으로 묘사
시대가 흐르며 오디세우스를 둘러싼 서사의 몸집이 커졌다.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와 개인의 감정을 탐구하는 낭만주의가 교차하며 ‘오디세우스의 여정’ 역시 모습을 달리한다. 인간 사회의 정치적 복수극에서 벗어나 대자연과 초월적 존재에 맞서는 내면적 항해로 변화한 것이다. 이 시기 작곡가들은 구체적인 서사의 재현보다는, 영웅이 직면한 신화적 대상이 뿜어내는 ‘공포의 본질’을 청각적으로 구현했다.
1724년 프랑스 작곡가 라모(Rameau)가 작곡한 하프시코드 독주곡 ‘외눈박이 괴물(Le Cyclope)’은 오디세우스를 위협하는 물리적 공포를 건반 악기의 극한 기교로 표현했다. 라모는 당대의 혁신가였다. 우아함을 중시하던 프랑스 건반 음악의 관습을 파괴하고, 연주자의 두 손이 건반의 끝과 끝을 폭력적으로 오가도록 곡을 만들었다. 라모가 정립한 ‘기본 저음’ 이론에 기반한 둔탁한 타격음은 몽둥이를 휘두르는 ‘식인 거인’의 육중함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쏟아지는 불협화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디세우스는 압도적인 대자연의 물리력 앞에 놓인 연약하지만 지적인, 낭만적 주체로 그려진다.
19세기에 접어들면 낭만주의 시대의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합창은 오디세우스 개인의 모험을 민족적·영웅적 서사로 확장했다.
독일 작곡가 막스 브루흐(Max Bruch)의 ‘오디세우스, 작품번호 41’이 대표적이다. 1871~1872년 작곡해 1873년 초연된 이 작품은 독창자와 혼성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대규모 세속 오라토리오다. 브루흐는 호메로스의 서사에서 극적인 장면을 골라 음악적 대비를 교향악적 캔버스를 채워 넣었다.
브루흐가 이 작품에 매료된 이유도 흥미롭다. 그는 호메로스의 서사에서 ‘태초의 시’가 가진 장엄함을 발견, 이를 일련의 서정적 장면으로 만들었다. 브루흐 생전 가장 성공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하인리히 폰 헤르초겐베르크(Heinrich von Herzogenberg)도 1872년 오케스트라를 위한 ‘오디세우스, 작품번호 16’을 썼다. 네 악장은 각각 ‘방랑’, ‘페넬로페’, ‘키르케의 정원’, ‘구혼자들의 연회’를 제목으로 삼아 ‘영웅의 궤적’을 웅장하게 다룬다.
달빛 아래 유혹하는 세이렌 이미지는 드뷔시 작품
이즈음 단연 주목해야 할 주인공은 드뷔시다. 1899년 세상에 나온 관현악 모음곡 ‘야상곡(Nocturnes)’ 중 제3곡 ‘세이렌(Sirènes)’을 통해 낭만적 서사 구조를 해체한다.
사실 19세기 말 파리의 음악계에선 리하르트 바그너의 거대한 관현악과 후기 낭만주의의 ‘목적론적 화성학’이 패권을 주도하고 있었다. 드뷔시의 음악은 일종의 ‘대세’에 대한 반기였다. 그는 독일의 과시적 오케스트레이션에 깊은 피로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드뷔시는 20세기 이후 자연스레 그려지는 세이렌의 이미지를 만든 장본인이다. 선명한 서사적 줄거리와 주제 의식을 덜어내고 순간의 음색과 뉘앙스를 중시하는 새로운 음악 언어를 모색했다. ‘세이렌’에선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부서지는 파도, 그 안에서 스며 나오는 세이렌의 신비로운 유혹을 ‘공감각적 심상’으로 치환했다. 드뷔시에게 바다는 물리적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무의식의 심연이었다.
그는 16명의 여성 합창단에게 아주 특별한 요구를 했다. 어떤 노랫말도 주지 않고 ‘아’ 혹은 ‘라’와 같은 모음으로 허밍하는 보칼리제(Vocalise) 기법을 합창단에 주문했다. 게다가 현란한 비브라토를 거세하고 곧은 소리로 뻗어나가도록 지시했다. ‘서사적 의미’를 박탈당한 인간의 목소리는 오보에나 클라리넷과 같은 하나의 악기로 존재하며 마성적인 세이렌의 유혹을 온전히 그려낸다.
뿐만 아니라 서양 음악의 근간인 장, 단조 체계를 해체한 것도 이 음악의 특징이다. 드뷔시는 반음이 없는 온음 음계와 5음 음계는 이끎음이 으뜸음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서양 화성의 전통적인 중력 법칙을 파괴한다. 이를 통해 음악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지 않고 방향성 없이 부유한다. 일렁이는 바다의 파도와 유혹의 환각 상태를 형상화하기에 탁월한 장치였다. 드뷔시의 이 음악은 20세기 현대음악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됐다.
오디세우스가 돛대에 몸을 묶고 이겨내야 했던 세이렌의 유혹은, 목적 없이 떠도는 인상주의적 음향 속에서 실체를 잡을 수 없는 몽환적이고 실존적 공포로 승화된다. 이 시기의 오디세우스는 명확한 목표인 이타카를 향해 전진하는 고대인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바다를 표류하는 근대적 자아의 표상이었다.
드뷔시 이후엔 다시 거대한 관현악으로 회귀하는 곡들도 등장한다. ‘방랑하는 인간’의 상징이 된 오디세우스를 다시 ‘낭만의 언어’로 덧칠하는 시도다. 독일 작곡가 에른스트 뵈헤(Ernst Boehe)의 ‘오디세우스의 항해에서(Aus Odysseus’ Fahrten), 작품번호 6‘은 1901~1904년 작곡된 교향시다. 출항과 난파, 키르케의 섬, 나우시카아의 탄식 등을 거쳐 귀환으로 이어진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후기 낭만주의 관현악은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고전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 웅장하게 그린다.
현대의 오디세우스…트라우마를 가진 인간
차갑게 울리는 타악기 뒤로 뱀처럼 기어다니는 불길한 신시사이저로 들려온다. 째깍거리는 시계처럼 일정한 금속성의 마찰음을 내며 오디세우스 일행이 트로이 성문으로 다가간다. 점진적으로 빨라지는 움직임. 성문이 열리는 순간, 금속음이 완전히 멈추고 맹렬히 쏟아지는 북소리에 광신도들의 함성 같은 보컬이 폭발(‘제우스의 법’)한다.
“얼굴! 함대! 전쟁! 인간! 신! 속임수!(A Face! A Fleet! A War! A Man! A God! A Trick!)”
마침내 트로이의 침공. 6분 내내 이어지는 전투의 광기는 고막을 찢을 듯한 쿵쾅거리는 북소리와 가속하는 리듬의 늪으로 달려간다. 피 칠갑을 한 오디세우스는 ‘정의롭고 선한 영웅’이었을까. 인간의 다면성을 폭로하는 섬뜩한 경각을 강제 주입하는 고란손의 음향 설계는 시작부터 영화의 숨통을 강하게 틀어쥔다.
총 23개 트랙, 118분 15초. 2026년 놀란 감독의 집요한 시각적 렌즈에 스며든 음악은 루드비히 고란손을 통해 새롭게 직조된다. 고란손의 ‘혁신적 스코어’에서 관객은 너무도 어둡고 처절한 오디세우스를 마주한다. 놀란의 세계에서 오디세우스는 트로이를 함락한 ‘영광의 주역’이 아니다. 지울 수 없는 학살의 기억과 죄책감을 짊어진 참전 용사이자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상처 입은 인간이다. 고란손은 오디세우스의 심리적 여정을 따라가며 음악의 질감을 찢고 이어 붙이기를 반복한다.
고란손은 기존 할리우드 영화가 공식처럼 따랐고 놀란 감독과 여러 작품을 함께 한 한스 짐머 식의 장엄하고 안전한 금관악기 중심의 오케스트라 사운드스케이프를 철저히 배제했다.
대신 35개의 육중한 청동 징을 타격한 소리를 신시사이저로 기괴하게 왜곡했고, 산업 폐기물과 에어컨 실외기를 두드려 야만적인 질감을 창조했다. 여기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인 알바니아 이소-폴리포니의 서늘한 목동 보컬과 고대 그리스의 관악기 아울로스를 결합, 유려한 아름다움이 아닌 ‘물리적 마찰’을 유발하는 음악을 완성했다.
고전학자 에밀리 윌슨은 놀란의 영화에 대해 “신들을 문자 그대로 등장시키지 않고 심리적 현상으로 치환하여 원작의 세계관을 천박하게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고란손의 음악은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 완벽하고도 압도적인 청각적 반론을 제시한다.
고향 이타카를 향한 갈망은 따뜻한 목관악기와 현악기로 시작하나, 저음의 신시사이저로 희망을 거세하고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만든다. ‘외눈박이 거인’을 마주할 땐 불협화음으로 요동치는 맥동과 현악기의 파열음을 통해 시각적 크리처물의 공포를 청각적으로 극대화(‘Cyclops’)한다. 거친 크레센도로의 마무리가 백미다. 깊고 낮은 보컬과 기괴한 앰비언스 사운드로 고대 세계의 불길함을 강조(‘하데스’)하고, 날카롭고 매혹적인 합창으로 시작해 신경증적 혼란으로 치닫는 ‘사이렌’은 텍스트의 공포를 청각화한 음악들이다.
구혼자들을 향한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벌어지는 오디세우스 테마(‘The Trial of the Bow / Vengeance’)에선 청동 징과 파괴적 전자음악, 팽팽한 리라가 스크린을 채운다. 약 2분 39초 지점, 영화 속 오디세우스가 활을 성공적으로 당긴 뒤 현을 놓아버리는 순간, 고대의 활 소리와 현대의 폭발음이 기막히게 맞물린다.
스크린엔 드러나지 않는 신의 가혹한 분노는 초현대적인 808 서브베이스가 뿜어내는 억압적인 중압감으로, 오디세우스의 심리적 붕괴는 셰퍼드 톤(Shepard Tone, 음정이 무한히 상승하는 착청 현상)과 리세 리듬(Risset Rhythm, 템포가 무한히 가속하는 청각 효과)의 융합으로 치환된다.
고란손의 음악은 영화의 수동적인 배경음악이 아니다. 오디세우스가 전장에서 겪었을 파괴적 폭력성과 무력한 상실감을 청각으로 이미지화한다. 관객이 그의 고통을 이성적으로 인지하기 전에 청각을 통해 체감하게 만드는 ‘심리적 무기’로 작동한다.
래퍼가 된 고대의 음유시인…구전 서사시의 복원
3000년 여정에서 마주하는 경이로운 음악적 성취가 집약된 음악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 오리지널 송 ‘웬 아임 홈(When I‘m Home)’이다.
영국 출신 전자 음악가 제임스 블레이크와 힙합 아티스트 트래비스 스캇이 공동 작곡으로 참여한 이 곡은, 현대 대중음악이 고대 서사시와 맺을 수 있는 완벽하고도 유기적인 화음을 증명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양피지에 쓰여 전해진 고대 텍스트가 아니다. 이느 엄격한 운율을 타고 낭송되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구전 시였다. 놀란과 고란손은 이 전통을 현대의 음유시인으로서 ‘언어의 리듬’을 자유자재로 해체하고 조립하는 래퍼가 이어받도록 했다.
트래비스 스캇은 영화 초반부 구혼자들 앞에서 트로이 전쟁의 무용담을 읊는 음유시인 역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는 트로이의 참상, 사이렌의 유혹, 전장의 트라우마라는 고전적 모티프를 차용하여 감정적 무감각, 죄책감, 귀향의 진정한 의미를 랩으로 토해낸다.
그의 피로하고 건조한 래핑은 고향에 돌아오는 것이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아티카로의 귀환은 ‘쉼터에서의 삶’의 시작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형벌의 출발이라는 암시다. 건조한 비트 위로 부유하는 제임스 블레이크의 주술적인 가성은 피투성이가 된 영웅의 고독을 무중력의 공간 속에 처연하게 형상화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음악적 여정은 시대가 갈구하거나 두려워하는 인간의 내밀한 영혼을 ‘영웅의 외피’ 위에 입혀왔다. 몬테베르디의 좁은 극장 무대 위에서 인내하던 늙은 남편은, 라모와 드뷔시의 기교적 악보 위에서 모호한 환상 속을 걷는 낭만적 영웅이 됐고, 고란손을 통해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현대인이 돼 우리 앞에 선다.
음악계 관계자는 “호메로스의 텍스트가 시대적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볼 때 고란손의 스코어는 현대인이 애써 외면해 온 폭력의 끔찍한 실체와 트라우마를 극명하게 들려준다”며 “한 때는 영웅의 갑옷을 입었지만 지금은 진짜 인간이 된 오디세우스를 고대 음악과 현대 장르를 결합해 그린 것은 큰 성과”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