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가 남긴 미완의 오페라 ‘투란도트’
피날레 2중창은 후배 작곡가 알파노 완성
초기엔 칼라프 왕자의 사랑 이야기로 해석
1980년 이후 오리엔탈리즘·젠더 논쟁 커져
창작자 상상력 자극…다양한 결말로 마무리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아무도 잠들 수 없다! 오 공주님, 당신도 잠들지 못하겠군요. 당신은 차가운 방에서 사랑의 희망으로 빛나는 수많은 별을 바라보겠네요.” (오페라 ‘투란도트’의 ‘네순 도르마’ 중)
모두가 말렸다. 일국을 이룬 아버지도, 오랜 시간 충성한 하녀도, 심지어 적국의 근위병들도 말렸다. 치기 어린 젊은 왕자는 ‘얼음 공주’ 투란도트를 멀리서 단 한 번 본 뒤 금세 사랑에 빠진다.
1926년 4월 25일 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은 이내 숨을 죽였다. 지아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5개월 만에 열린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의 세계 초연 무대다.
그 유명한 칼라프 왕자의 ‘네순 도르마’(아무도 잠들 수 없다)가 지나가고 3막의 중반부, 충직한 시녀 류(Liù)가 칼라프의 이름을 가슴에 품은 채 단도를 꺼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군중이 류의 시신을 메고 퇴장하는 슬픈 장례 행렬의 선율이 이어진 뒤, 음악은 멈췄다. ‘지휘 전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지휘봉을 내려놓고, 객석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마에스트로가 작곡한 곳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대목에서 마에스트로는 붓을 놓았습니다(Qui finisce l’opera, perché a questo punto il maestro è morto”).”
토스카니니는 푸치니의 후배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Franco Alfano)가 남겨진 스케치를 바탕으로 완성한 피날레 2중창을 거부하고 지휘봉을 내려놨다.
푸치니는 류의 죽음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얼음 공주 투란도트와 왕자 칼라프의 화해, 둘의 사랑 이야기로 완성하지 않았다. 남성 영웅의 화려한 승리가 아닌, 무고하게 희생당한 한 약한 여성의 비참한 자결 현장이 푸치니가 쓴 마지막 장면이었던 것이다.
100년 전 사람들은 이 작품에 대해 ‘사랑의 승리’를 노래하는 동화로 여겼다. 왕자와 공주는 세기의 ‘금사빠’(금세 사랑에 빠지는) 커플이었다.
젊고 아름다운 왕자는 투란도트의 수수께끼를 모두 풀고 오르지 못할 것 같은 높은 계단을 하나씩 밟으며 사랑도, 왕국도 정복한다. 하지만 끝끝내 사랑을 거부하는 공주 투란도트. 왕자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공주의 입에 강제로 키스하며 투란도트를 손에 넣는다. 그러자 공주는 난데없이 “그의 이름은 사랑”이라며 마음을 바꾼다. 알파노가 그린 이 결말은 지난 100년간 끝없이 반복돼왔다.
하지만 지금의 ‘투란도트’는 문제적 작품이다. 20세기 ‘낭만적 사랑’을 그렸던 작품은 21세기 젠더 감수성, 동의와 권력, 오리엔탈리즘 등을 둘러싼 ‘논쟁’의 한가운데 서게 됐다.
주체적인 ‘투란의 딸’, 왜 잔혹한 얼음공주가 됐나
사실 ‘투란도트’는 처음부터 사랑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작품의 뿌리는 수 세기 동안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며 입으로 전해온 전설로 향한다.
작품의 주인공인 투란도트는 페르시아어로 ‘투란의 딸’을 뜻하는 ‘투란도흐트’(Turandokht)에서 유래했다. ‘투란’(Turan)은 고대 이란인들이 페르시아 제국의 북동쪽, 즉 중앙아시아의 야만적이고 신비로운 이교도 영토를 지칭하던 지리학적·문화적 기호였다.
이런 이유로 세계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투란도트를 노래해 온 소프라노 에바 프원카는 작품의 기원이 12세기 페르시아 시인 니자미의 서사에 있다고 말한다. 프원카는 현재 공연 중인 예술의전당 기획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주연을 맡은 인물이다.
그는 “투란도트는 ‘투란(Turan)의 딸(Turandokht)’이라는 페르시아계 이름을 가진 존재다. 지금의 이란에 가깝다”라며 “괴물 같은 공주가 아니라 인간의 자아와 변화를 상징하는 철학적 존재”라고 해석했다.
투란도트의 출발점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인물은 몽골 제국의 공주 쿠툴룬(Khutulun). 마르코 폴로와 페르시아 역사가 라시드 앗딘의 기록에 따르면, 쿠빌라이 칸의 조카였던 쿠툴룬은 뛰어난 기마술과 씨름 실력을 갖춘 전사였다.
그는 “나를 이기는 남성과만 결혼하겠다”고 선언, 청혼자들과 씨름을 벌여 승리할 때마다 말을 전리품으로 받았다. 수백 마리의 말을 거둘 정도로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았다는 그녀에 대한 전설은 유럽 중세 사회에선 존재하지 않았던 ‘여성 권력의 상징’이었다.
전설 속 쿠툴룬은 남성을 증오한 인물도, 사랑을 거부한 괴물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결혼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주장한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결혼은 강요가 아니라 선택에 따라 해야한다는 근대적 생각을 몇 세기 먼저 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유럽으로 건너오며 완전히 다른 의미를 입었다. 18세기 프랑스 극작가 알랭 르네 르사주와 프랑수아 페티 드 라 크루아의 ‘천일일화’ 속 ‘모스크바의 칼라프 왕자와 중국 공주의 이야기’를 통해 서구 문학계에 본격적으로 이식되면서다.
이탈리아 극작가 카를로 고치는 이를 바탕으로 1762년 희곡 ‘투란도트’를 발표한다. 고치는 ‘이국적’ 중국 왕국을 무대로 삼아 새로운 이야기를 썼다. 주체적이었던 투란의 딸은 잔혹한 공주로 변했다. 청혼자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실패하면 참수하는 냉혹한 여성 통치자로 그린 것이다.
푸치니는 이 희곡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들면서 공주의 심리를 더욱 극적으로 확장했다. 애초의 전설과 달라진 이야기에 서구가 상상한 ‘신비롭고 위험한 동양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작품 속에 깊이 새겨지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날 연구자들은 ‘투란도트’를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관점에서 다시 읽기 시작한다. 오리엔탈리즘은 팔레스타인계 미국 문학연구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가 1978년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서구가 동양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보다 신비롭고 이국적이며 때로는 미개한 공간으로 상상하고 재현하는 방식을 비판한 이론이다. 사이드에 따르면, 이러한 이미지는 문화적 상상이 아닌 권력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시선이다.
푸치니가 무대 위에 펼쳐놓은 베이징 역시 실제 중국이 아닌 서구인의 상상 속 중국이다. 황금빛 궁전과 피비린내 나는 참수형, 신비로운 공주와 침묵하는 군중은 ‘동양’이라는 환상을 무대로 옮긴 결과물이다. 투란도트 역시 독립적인 여성이 아닌, 서구 남성이 상상한 ‘위험하고 이해할 수 없는 동양 여성’의 전형이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분석이다.
영웅인가, 정복자인가?…‘문제적 왕자’ 칼라프
‘투란도트’의 주요 등장인물은 세 명이다. 젊고 아름다운 왕자 칼라프, 중국의 얼음공주 투란도트, 충직한 시녀 류.
이들을 주축으로 서사는 소위 ‘영웅주의 남성’과 극단적으로 이분화된 여성이 충돌하는 구조다. 이 세 사람을 통해 각기 다른 ‘세계관’이 격돌한다.
칼라프는 ‘망국의 왕자’다. 그는 표면적으론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을 쟁취하는 낭만적 영웅이다. 평범한 남성이 아닌 신에 가까운 영웅을 그리기 위해 태어난 인물이다. 그는 목숨을 걸고 수수께끼를 풀고, 끝내 얼음 같은 공주의 마음을 녹인다. 푸치니는 그의 등장을 영웅적 선율로 감싸 안고, 3막 아리아 ‘네순 도르마(Nessun dorma)’에서는 승리를 확신하는 남성의 의지를 폭발적인 음악으로 밀어 올린다. 이 곡은 테너의 상징이자 남성 성악가들이 가장 부르고 싶어 하는 아리아다.
사실 ‘칼라프’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는 난도가 있다. 공주의 얼굴을 본 순간 사랑에 빠지는 ‘금사빠’라니…. 칼라프의 주변 인물들이 그의 선택을 거듭해 만류하는 점을 보면 오페라를 쓴 푸치니도 그의 선택에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눈먼 아버지 티무르는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며 돌아가자고 애원한다. 시녀 류는 자신의 사랑을 숨긴 채 칼라프를 살리기 위해 눈물로 설득한다. 재상 핑·팡·퐁은 수많은 청혼자가 참수된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들려주며 “베이징을 떠나라”고 경고한다. 심지어 군중마저 그의 죽음을 예감한다.
칼라프는 그럼에도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그는 오직 공주를 승리의 대상으로 삼는다.
미국의 음악학자 수잔 매클래리는 푸치니 오페라에서 남성의 욕망이 여성의 몸과 목소리를 통해 완성되는 방식을 분석했고, 오페라 연구자 캐럴린 아바테는 여성의 목소리가 음악적으로는 강력하지만 서사적으로는 남성의 이야기 속에 종속되는 구조를 지적했다. ‘투란도트’는 이러한 논란이 가장 첨예하게 적용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세 개의 수수께끼의 정답을 맞힌 뒤에도 공주가 굴복을 거부하자, 왕자는 자신의 이름을 알아내라는 가학적 내기를 제안한다. 오페라 연구자들은 이를 “자신이 획득한 지배권을 완벽하게 인정받고자 하는 가부장적 권력욕의 발현”이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공주는 권력을 동원해 이름을 찾고, 시녀 류는 가혹한 고문을 당하다 왕자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으려 자결한다. 왕자는 투란도트를 향해 걸어 올라 사랑을 거부하는 공주에게 강제로 입을 맞춘다. 지난 100년간 이 장면은 ‘얼음 공주’의 마음을 녹이는, 아름다운 사랑의 한 장면으로 해석했다.
프원카는 그러나 “칼라프와 투란도트가 키스하는 장면에선 음악적으로 끔찍한 공포가 표현되는데, 그것이 한 가지만을 의미한다면 ‘강간’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투란도트와 류를 그려낸 시각 역시 전형적이다. 남성중심주의 시각으로 바라본 괴물과 성녀의 이분법에 서구 제국주의적 시선까지 더해졌다.
투란도트 공주의 경우 남성을 살해하는 차갑고 잔혹한 여성으로 그려졌다. 타자화된 아시아 여성을 ‘드래곤 레이디’나 ‘얼음공주’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덮어씌운 것이다. 사실 투란도트의 가혹한 수수께끼와 참수형의 이면엔 깊은 역사적 트라우마가 새겨져 있는데도 말이다.
“그 옛날 왕궁에 퍼지던 슬픈 비명… 수천 년이 지났어도 그 비극은 내 가슴에서 살아있도다. 이 이방인 구혼자들아, 로링 공주의 한을 위해 그대들은 죽어야 하리라!”
2막 2장의 아리아 ‘이 전당에서’(In questa reggia)는 투란도트를 설명하는 중요한 서사다. 아리아에선 수천 년 전 자신의 선조인 로링(Lou-Ling) 공주가 이방인 침략자 남성에게 정복당하고 유린당한 뒤 비참하게 죽어간 비극을 토란도트가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설명해 준다.
그러니 투란도트가 구혼자들을 죽이는 것은 여성을 남성 지배 질서의 도구이자 전리품으로 취급하는 가부장적 폭력을 향한 대항이자 성적 자기 결정권을 지키려는 저항의 몸짓이라 해석할 수 있다.
프원카는 “‘투란도트’는 17세기 유럽, 이탈리아 사람들이 원작을 훼손해 오해받는 이야기로 만들었지만, 사실 매우 철학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며 “많은 프로덕션에서 투란(Turan)이라는 거대한 땅을 다스리던 이 강력한 여성을 이상한 괴물로 만들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니 난데없이 입맞춤 후 ‘사랑’에 굴복하는 투란도트의 태도는 현대의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들 수 밖에 없다.
반면 순종적이고 자기희생적 류는 투란도트와 대척점에 선 인물이다. 그는 수많은 오페라와 문학이 그려온 전형적인 ‘성녀’다. 시녀 류는 칼라프가 자신에게 건넨 단 한 번의 미소에 빠져 일평생 왕자에게 헌신한다.
류는 투란도트에게 가혹한 고문을 당할 때도 칼라프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대신, “그것(그의 이름은)은 사랑”이라고 외치며 목숨을 끊는다. 이 죽음 역시 당혹스러운 것은 류의 자결 이후 흘러가는 이야기 때문이다. 류의 죽음은 그저 도구화돼 칼라프를 위한 희생으로만 남는다.
게다가 이 죽음이 투란도트의 얼어붙은 내면에 최초로 윤리적 균열을 일으키는 저항으로 사용된다. 푸치니는 자신의 오페라 ‘라보엠’의 미미, ‘토스카’의 토스카, ‘나비부인’의 초초상 등을 통해 그린 여성의 희생 미학을 ‘투란도트’에선 류를 통해 반복했다.
강간은 판타지가 아니다… 새롭게 해석되는 ‘투란도트’
하지만 1980년대 이후엔 여러 변화가 감지된다. 무수히 많은 연출가가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투란도트’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구시대적 오리엔탈리즘의 왜곡과 남성적 정복 서사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연출이 무대에서 시도됐다.
미국 출신의 연출가 로버트 윌슨은 정지된 움직임과 절제된 미장센 속에서 투란도트를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접근했다. 감정의 폭발보다 거리감과 침묵을 선택, 마지막 장면의 낭만성을 의도적으로 흐렸다.
독일 연출가 클라우스 구트는 더 급진적이다. 그는 투란도트를 잔혹한 공주가 아니라 깊은 트라우마를 가진 여성으로 해석한다. 로링 공주의 죽음은 투란도트의 평생을 지배한 폭력의 기억이다. 그러니 칼라프와의 만남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과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상처 입은 인간의 심리극으로 바뀌게 됐다.
중국 출신 현대미술가 아이웨이웨이의 시선은 사회로 향했다. 그가 연출한 ‘투란도트’에는 팬데믹, 난민, 전쟁, 감시 사회 등 현대 세계의 이미지가 투영됐다. 작품 속 중국은 푸치니가 상상한 이국적인 동양이 아니라 오늘날 권력과 폭력이 작동하는 현실의 공간이 된다. 그는 “투란도트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공연 중인 ‘투란도트’는 또 다른 해석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사랑 이야기라는 이면에 감춰졌던 전쟁과 폭력, 평화와 공존을 정면에 드러낸 것. 연출을 맡은 정선영은 “이 작품은 전쟁 종식 프로젝트”라며 “겉으로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 왕자와 공주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음악 속에는 전쟁을 향한 통탄과 평화를 갈망하는 인간의 기원이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강조한다.
이 프로덕션의 가장 큰 차별점은 작품의 뼈대인 ‘세 개의 수수께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데 있다. 첫 번째 수수께끼인 ‘희망’을 인류가 추구하는 이상으로, 두 번째 수수께끼는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열정과 실천의 의지로 읽어낸다. 마지막 수수께끼인 ‘너를 불태우는 얼음’은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폭력과 지배를 극복하고 평화와 공존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로 확장된다.
정 연출가는 특히 투란도트와 칼라프의 마지막 키스 신을 승리나 굴복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이를 패배함으로써 이기는 사랑이라고 정의하며 평화와 공존의 길을 모색한다. 정 연출가는 “이기려고만 하면 전쟁은 반복된다”며 “하지만 먼저 지기 시작하면 모두가 이기는 길이 열린다. 그것이 곧 평화”라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명작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질문을 받는다. 가부장적 시각과 서구 중심주의 관점으로 읽혔던 ‘투란도트’는 시간이 지나며 끊임없이 다양한 관점으로 받아들여지며 새로운 해석을 얻고 있다. 정 연출가는 “왕자와 공주라는 고정관념을 따라갔기에 그간 ‘투란도트’엔 풀리지 않는 숙제가 생겼다”며 “이번 연출을 통해 ‘투란도트’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발굴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프원카 역시 “‘투란도트’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그 논란에서 다양한 해석을 불러오는 작품”이라며 “그간 많은 ‘투란도트’에 출연하며 다양한 결말을 연기했다. 투란도트의 자살, 칼라프의 체포, 혹은 칼라프와의 동반 통치, 심지어 서로 죽이는 엔딩도 소화했다. 그만큼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기에 살아남은 작품”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