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팀장은 누구인가

1980년생, 세 자녀를 키우는 엄마이자 맞벌이 공무원

3000만원 전셋집부터 시작해 2013년 마곡지구 다자녀 특공 청약당첨, 이후 갈아타기와 재개발구역 투자로 30억원대 시세 흑석동 신축 입주권을 보유한 조합원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흑석동 신축 입주권을 가졌다고 하면 다들 놀라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투자 전문가도 아니고 한강벨트를 목표로 살아온 것도 아니거든요. 다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사를 10번을 넘게 다니긴 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거든요.”

1980년생 강미소(가명) 팀장은 세 자녀를 키우는 24년차 직장인이다. 남편 또한 같은 공무원인 맞벌이 부부로 200만원이 넘지 않는 월급을 받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3000만원 반지하 전셋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이들 부부는 어떻게 오늘 시세 30억원대 한강벨트 신축아파트 입주권을 보유한 조합원이 될 수 있었던 걸까.

강 팀장의 어린시절 관련 이미지. [챗GPT 형성 이미지]
강 팀장의 어린시절 관련 이미지. [챗GPT 형성 이미지]

또래보다 빠른 취직, 결혼, 출산

“비행기의 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세요? 아이였을 때, 하늘을 보면 자주 비행기가 가까이서 지나다녔거든요. 엔진소리가 너무 커서 귀를 막고 지냈던 기억이 나요.”

강 팀장은 서울 양천구 신월동이 고향이다. 김포공항 인근에 있어 지금도 동네의 절반이 소음피해지역에 속하며 고도 제한으로 인해 오랜 기간 개발되지 못했던 곳이다.

당시 가정형편이 좋지 못했던 강 팀장은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해 돈을 벌고 싶었다. 또래 대비 2~3년 이른 2003년 23살의 나이에 공무원이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입사 후 1년 뒤, 강씨는 첫눈에 반한 직장 선배와 결혼하며 본가에서 독립한다. 두 사람에겐 말그대로 ‘사랑만’ 있었다. 모은 종잣돈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의 첫 신혼집은 관악구 봉천동의 반지하 주택이었다. 전세가격은 3000만원, 그마저도 남편이 대출로 마련한 보금자리였다. 강씨는 “행거 두 개, 컴퓨터, 프린터, 침대를 트럭에 실어서 신혼집으로 이사를 했다”면서 “어리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꾸린다는 생각에 작고 불편한 집이라는 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그리고 이때부터 10년 후 내집마련까지 강씨는 6번이 넘는 이사를 하게 된다.

신혼집이었던 반지하 주택에서 강 팀장은 주말마다 옷을 털어야 헀다. [챗GPT 형성 이미지]
신혼집이었던 반지하 주택에서 강 팀장은 주말마다 옷을 털어야 헀다. [챗GPT 형성 이미지]

2004년 말부터 시작된 반지하 주택 생활은 강 팀장에게 남다른 일상을 갖게 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곰팡이였다. 습기 앞에서 옷은 참 쉽게 상했다.

그는 주말마다 햇볕에 옷을 털어야 했지만 힘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번에 하면 힘드니까 장롱에 옷 한 줄씩, 행거의 옷 한 줄씩 양을 정해서 터는 게 일종의 주말 루틴이었어요.”

친정집에 살며 주거비 절약

다만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양육 지원이 필요했던 이들 부부는 2006년 2월, 첫 아이와 함께 당시 부모님이 살던 서대문구 북아현동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결혼 후에는 한달에 100만원 정도 저축하며 조금씩 종잣돈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이후 5년 동안은 서대문구를 떠날 수 없었다.

그 사이 두 명의 아이가 더 태어나면서 친정 부모님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둘째가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될 무렵, 다시 분가를 결심한다.

2007년 봄, 그동안 아낀 돈과 추가로 6000만원 가까이 전세대출을 받으니 친정집 근처 빌라의 꼭대기 층으로 이사를 갈 수 있었다. 꼭대기 층은 중간층보다 좀 더 저렴한 가격이었다.

강 팀장은 반지하 신혼집보다 훨씬 넓어진 곳에 살 수 있어 만족했다고 한다. “또 대출을 받아야했지만 이번엔 방이 3개인 집이었거든요. 엘리베이터가 없는 언덕 위의 집인데 높아서 뷰가 좋고 환풍이 잘 됐어요.”

세 아이의 부모가 된 이들 부부는 이때부터 내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년에 할 수 있는 저축은 많으면 1000만원 정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부모님이 북아현동의 한 재개발 주택을 매수하겠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함께 몸테크를 하기로 결심한다.

결혼 후 지금까지 모은 6000만원을 부모님께 보태드리고 방 한 칸을 얻었다. 그렇게 방 2개, 거실이 있는 집에서 3대가 살게 됐다. 2010년 초, 강 팀장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서대문구의 한 재개발 구역의 방2개 주택에서 강씨 팀장 가족과 부모님은 함께 살았다. [챗GPT 형성 이미지]
서대문구의 한 재개발 구역의 방2개 주택에서 강씨 팀장 가족과 부모님은 함께 살았다. [챗GPT 형성 이미지]

재개발 투자 실패, 다시 또 전셋집으로

하지만 일명 ‘몸테크’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입주권을 받으려면 내야 하는 높은 분담금에 부모님이 지레 겁을 먹으셨던 거 같아요.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자산도, 새 아파트도 얻게 됐을 텐데 사업 속도도 더디고 여러 걸림돌이 많았죠. 그집을 결국 산 가격이랑 크게 다르지 않게 팔았어요.”

투자 관점에서는 실패였다.

다만 이 경험은 강씨가 부동산에 눈을 뜨게 해 준 계기가 됐다.

강씨 가족은 다시 또 보금자리가 필요해졌다.

2011년 여름, 첫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 머지 않을 무렵 강 팀장은 고향 인근이자 다니던 교회가 있던 강서구에 터를 잡기로 한다. 부모님 집에서 살며 아끼고 모은 2000만원을 더해, 1억2000만원짜리 3번째 전셋집(28평, 방3개)을 구했다.

매수할 자금이 없던 이들 부부의 최선은 이번에도 빌라의 꼭대기층이었다. 긍정적인 성격인 강 팀장은 옥상을 쓸 수 있다는 게 좋았다고 했다. 이불도 널고 식물도 키울 수 있어 나만의 마당이 생긴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엄마, 우리는 언제쯤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에서 살 수 있어?”

큰 아이가 말했다.

집 근처 놀이터가 없어서 주변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쫓겨나는 일도 겪게 됐다. 강씨는 “마음이 아팠다. 그때부터는 교회에 가서도 ‘집을 주세요’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당시 아이 셋을 키우느라 육아휴직 중이던 강 팀장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일하랴, 육아하랴 부동산 공부를 따로 할 여유가 없던 그는 그때 처음으로 청약에 대해 알게 된다.

아이들이 만든 청약 당첨

강서구에 살다 보니 ‘마곡지구 공공분양’을 노려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이가 셋인 강 팀장은 특별공급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자녀가 3명 이상이어야 다자녀 특별공급에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4년3월25일부터는 아이가 둘이어도 신청가능해짐)

2013년 가을, 아이들을 양손에 데리고 강씨는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있는 대청역까지 직접 가 청약을 접수했다.

이어 마곡N단지 전용84㎡ 평형에 ‘당첨’된다.

첫 신청 만에 서울시 거주자 10여명에게만 돌아간 행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청약에 당첨된 강미소 팀장. [챗GPT 활용 이미지]
청약에 당첨된 강미소 팀장. [챗GPT 활용 이미지]

그렇게 강 팀장은 나이 서른셋에 신축 분양권을 갖게 된다.

당첨의 기쁨은 잠시, 결혼 후 10년 간 모은 종잣돈이 1억원 정도였던 강씨 부부는 3억원이 넘는 빚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분양가는 4억3000만원.

중도금을 마련하려면 살던 집의 전세금까지 동원해야 했다.

그리하여 강 팀장은 강서구 내발산동의 반지하 주택(6000만원, 방3개)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심한다.

강 팀장의 표현에 의하면 그집은 경사진 땅에 지어져 ‘이쪽에서 보면 1층, 저쪽에서 보면 반지하’인 집이었다. 집게벌레, 민달팽이, 바퀴벌레까지 다녀서 “식구가 늘었다”고 아이들과 농담했지만 거주의 불편함이 컸다. 우선 28평 빌라에서 18평 반지하로 이사오면서 짐들을 편히 놔둘 수가 없었다.

청약 당첨 후 중도금 마련을 위해 반지하 주택으로 다시 이사간 강 팀장네 부부. [챗GPt 활용 이미지]
청약 당첨 후 중도금 마련을 위해 반지하 주택으로 다시 이사간 강 팀장네 부부. [챗GPt 활용 이미지]

“중도금 내야 해” 돌아간 반지하 생활

수차례 이사로 반전문가가 된 강 팀장은 하얀색 리빙박스를 구해 이삿짐을 나눠 남고, 차곡차곡 키높이까지 쌓아둔다. 전기도구, 액자 등 각종 도구와 용품들을 분류하고 라벨지를 붙여 다섯 사람이 쓸 공간을 최대한 만들어야 했다. 유치원 앨범 하나를 꺼내려면 박스 여러 개를 한참을 내린 후 다시 또 찾아야 할 정도여서 자주 쓰는 물건은 항상 리빙박스더미의 가장 높은 층에 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반지하도 반지하 나름인데 그집은 너무 습해서 장판 밑에 신문지를 넣어야할 정도였어요. 그치만 저나 가족들이 꽤 나쁘지 않게 지냈어요. 아이들은 친구들을 초대하면서요. ‘내년에는 아파트 들어간다’는 희망이 있어서 그랬던 거 같아요.”

그렇지만 강씨 부부는 계속 걱정이 됐다.

마곡아파트는 이들 가정에겐 일명 ‘영끌’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입주를 하면 3억원이 넘는 빚으로 인해 이자와 원금, 관리비 등까지 월 2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 셋이 자라며 한참 교육비가 늘어날 일만 남았고 맞벌이 공무원의 수입은 한정돼 있었다.

“참새도 둥지가 있어”깅 팀장을 말린 말

‘피(P)를 받고 팔 수 있다’는 얘기에 분양권을 매도할까 생각한 적도 있다. 1년 후 전매제한기간이 지날 때쯤 이 고민을 강 팀장을 당시 주변 동료와 어른들에게 털어놓았고 이들은 안 된다고 그를 말렸다.

한 동료는 ‘너가 살 집 하나는 있어야 한다’면서 강 팀장에게 분양권을 지키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그는 “집이 필요해서 청약을 넣은 것 맞지만 막상 빚을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움도 컸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공인중개사분들까지 ‘지금은 아니다’라며 말리는 걸 보고 입주를 해야겠다 결심했다”고 했다.

2014년 여름, 그렇게 강씨 부부와 세 자녀는 자가로 마련한 마곡N단지 아파트에 입주한다.

가장 기뻐한 건 큰 아이였다.

“빌라 살 때 막내는 제가 안고 둘째는 손 잡아줬지만 큰 애는 늘 혼자 걸어올라가야 했거든요. 큰애도 사실 제 눈엔 아기잖아요.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좋다’는 말에 아파트에 입주하길 참 잘했다 싶었어요.”

그렇게 마련한 곳에서 강씨 가족은 약3년 간 거주했다.

아이들 덕분에 당첨된 곳이었지만 다시 아이들을 위해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가야했기 때문이다.

이후 마곡아파트는 서울아파트 급상승기에 매도가 이뤄지며 6억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남기게 된다.

‘결혼 후 10년’ 동안 모은 종잣돈 1억원으로 마련한 마곡의 아파트(4억3000만원)는 입주 후 4년 만에 6억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남길 만큼 가격이 올랐다. 강씨 가족이 ‘갈아타기’를 결심한 이유는 ○○때문이었다(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