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

진위 논란 중심에 선 렘브란트 작품

렘브란트풍은 변화·실험의 창작 태도

위작 가릴 때 기준의 ‘재정의’ 주장도

[0.1초 그 사이]는 역대급 몸값 자랑하는 작품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찰나의 순간’으로 승부가 나뉘는 치열한 미술 시장에서 선택받은 그림들, 그 안에 얽힌 속사정을 들려드립니다.

최근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3점의 작품이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이 아닌, 렘브란트의 화실에서 제작된 모작이라고 밝혔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최근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3점의 작품이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이 아닌, 렘브란트의 화실에서 제작된 모작이라고 밝혔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눈동자 끝에 스치듯 흔들리는 붓결,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처리된 코끝,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답지 않은’ 어색한 명암 처리….

이런 몇 가지 이유로 17세기 거장의 이름은 그림에서 지워졌습니다. ‘빛을 훔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1606~1669)의 작품으로 여겨졌던 한 인물화는 ‘렘브란트가 아닌 것’이 되었죠.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른 뒤, 보존과 분석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다시 미술사학자들을 그 그림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엑스레이(X-ray) 촬영을 통해 드러난 밑그림, 어두운 배경 속에 숨어 있던 붓의 리듬, 서명 아래 감춰졌던 원래의 흔적들까지…. 그렇게 그림은 다시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나는, 렘브란트일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진짜는 무엇?” 위작과 진작을 가르는 기준

렘브란트의 ‘폴란드 기병’(1655경). [프릭 컬렉션]
렘브란트의 ‘폴란드 기병’(1655경). [프릭 컬렉션]

20세기 중반부터 최근까지도 렘브란트의 그림들은 유례없는 진위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한때 진품이라고 여겨지던 작품이 후속 연구로 위작 판정을 받고, 위작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진작으로 판명 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건데요.

뉴욕의 프릭 컬렉션이 소장한 ‘폴란드 기병’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655년경에 그려진 인물화는 오랫동안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인정받았는데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일부 전문가들이 진작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질적인 주제와 단조롭고 투박한 표현 방식이 그 근거였죠.

화폭에는 말을 탄 젊은 청년이 들판을 가로지르며 여행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그가 현존하는 인물인지, 역사적 인물인지, 그렇다면 누구를 그린 것인지, 아니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지는 해석이 분분한데요.

분명한 건 렘브란트가 살아생전 말 타는 모습을 담은 회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인물의 복식도 폴란드나 헝가리일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무척 이례적이죠. 적외선 반사 촬영으로 그림 아래층을 분석해 보면 렘브란트만의 밑그림이나 붓 터치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요.

그래서 네덜란드 과학연구 기구의 ‘렘브란트 연구 프로젝트(RRP)’는 이 작품을 렘브란트의 제자 작품으로 간주했습니다. 하지만 프릭 측과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끝까지 반박했습니다. 전통적인 감정 평가와 미술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여전히 렘브란트의 진작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 작품은 ‘진작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전시 중인 상태죠.

마우리츠하위스가 밝힌 ‘3점의 위작’

렘브란트의 다양한 서명들. [RPP]
렘브란트의 다양한 서명들. [RPP]

작품은 언제 렘브란트가 되며, 어떻게 렘브란트가 아니게 되는가.

불과 지난 17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 발표한 진위 조사 결과는 그간 수면 밑에 있었던 이 질문을 다시 꺼내 들게 합니다.

이날 미술관 측은 그간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전시된 3점의 그림이 알고 보니 ‘렘브란트풍’ 모작으로 판명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거든요.

문제가 된 작품은 ‘고르게를 두른 렘브란트의 초상’(1629년경), ‘노인의 습작’(1650년경), ‘노인의 트로니’(1630-1631년경) 등입니다. 미술관은 이들 작품을 보존하고 복원한 뒤 기술 분석을 통해 재검토한 결과, 모두 렘브란트가 아닌 다른 화가의 손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이 작품 외에도 4점의 그림에 대해서도 현재 진위가 의심되고 있다고 전했고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 위작으로 판명한 ‘노인을 그린 습작’(1650년경).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 위작으로 판명한 ‘노인을 그린 습작’(1650년경).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특히 ‘노인을 그린 습작’의 경우, 감정 과정에서 ‘Rembrandt f’라는 서명이 발견됐는데요. 이 점이 마치 렘브란트의 진품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은 그의 제자 중 한 명이 그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술관 측은 이렇게 덧붙였죠.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에서는 붓질 하나하나가 완벽하지만, 이 그림은 그렇지 않다. 마치 제자가 스승의 기법을 흉내 내려 애쓴 듯 서툴러 보인다.”

밑그림에서 굵은 선이 발견됐는데 이에 대해서도 “렘브란트가 제자의 그림을 고친 흔적일 수 있다”고 추정했고요.

미술관 측은 ‘노인의 트로니’ 작품도 렘브란트의 화실에서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X선 분석 결과를 보면 작업 중에 수정을 한 흔적이 나타났고요. 렘브란트가 이 시기 사용하지 않았던 물감이 덧칠해진 흔적도 발견됐습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 위작으로 판명한 ‘노인의 트로니’(1630-1631년경).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 위작으로 판명한 ‘노인의 트로니’(1630-1631년경).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렘브란트다움’이 무엇이길래…미술사 최대 논쟁

자, 이 즈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는데요. 렘브란트 작품의 진위 논란은 이제 ‘진짜냐, 가짜냐’를 넘어선 문제가 됐다는 겁니다.

그 안엔 ‘렘브란트다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더 본질적인 질문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죠.

렘브란트는 생전에 이미 거장이었습니다. 그의 화실은 일종의 ‘예술공방’이었죠.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렘브란트풍’을 모방했고요. 렘브란트는 그렇게 그려진 그림에 여러 수정을 하며 종종 자신의 서명을 남겼습니다.

오죽하면 1968년부터 2011년까지 렘브란트의 작품 진위를 가리는 무려 40여 년의 프로젝트가 진행됐을 정도였습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으로 ‘간주된’ 작품 600점 중 상당수를 재평가했는데, 절반가량의 작품들이 제외됐거든요.

렘브란트의 대표작인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보학 수업’(1632년).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렘브란트의 대표작인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보학 수업’(1632년).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그런데 해당 프로젝트 소속의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반 데르 베터링은 “‘렘브란트다움’이란 단일한 화풍이 아니라, 변화와 실험을 중시한 창작 태도 전체를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그의 시선으로 보면 ‘폴란드 기병’처럼 불완전하게 보이거나 낯선 인물과 배경이 담긴 작품도 오히려 ‘렘브란트다움’의 일부일 수 있는 겁니다. 렘브란트 특유의 진정성을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렘브란트답지 않은 붓질이라는 이유로 진위에서 멀어질 게 아니라, 우리가 렘브란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림의 진·가품 여부는 새롭게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협업’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그간 미술사가 이를 ‘진품 vs 위작’이라는 이분법으로 정리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고개를 든 겁니다.

다만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는 이유는 단 하나, 렘브란트라는 이름이 지닌 예술사적 권위와 상징성이 상당하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더해 렘브란트의 작품은 한 점에 수백억 원을 호가할 만큼 막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때문에 진작 여부는 곧 작품의 가격과 직결되는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예술적 정체성과 시장 논리가 맞물린 상황에서 ‘렘브란트다움’에 대한 판단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미술과 과학, 그리고 직관의 ‘삼각지대’

렘브란트의 자화상인 ‘링 카라를 한 렘브란트의 초상화’(1629년).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렘브란트의 자화상인 ‘링 카라를 한 렘브란트의 초상화’(1629년).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렘브란트의 진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은 약 300점. 그러나 렘브란트는 여전히 미술계에서 불확실한 이름입니다. 렘브란트의 화실에서 그의 그림은 너무도 잘 모방됐기 때문이죠. 렘브란트는 ‘렘브란트답지 않다’는 이유로 한때 지워졌다가, 다시 ‘렘브란트다움’을 증명하며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과연 ‘렘브란트다움’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의하느냐는 겁니다. 그 판단의 주체는 미술사가의 평가일 수도, 보존과학이 제시하는 물리적 증거일 수도, 때로는 감상자의 직관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 예술 작품은 미술사적 맥락과 인간의 감각, 그리고 과학적 분석 사이의 미묘한 긴장 속에서 존재한다는 겁니다.

한 사람의 시선, 한 줄의 평, 한 장의 X-ray 또는 적외선 촬영이나 안료의 화학 성분 분석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이름을 바꾸는 세계. 어쩌면 진실은 언제나 찰나의 순간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참고자료>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웹사이트

Mauritshuis Reveals Three Rembrandt Paintings from Its Collection Are Copies, Karen K. Ho, AR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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