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건너뛰고 ‘손주’에게 바로 증여한다면

무조건 10억 공제 아냐...‘상속 공제한도’ 따져야

세대 건너뛴 상속, 공제한도 차감에 세금 할증도

차라리 자녀에게 상속했다가 증여했다면 ‘세금’ 아껴

상속도 미리 준비해야 세금 아낄 수 있어

주거비, 식비, 교통비 등 말마따나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쉽게 티가 나지 않는 지출도 있죠. 바로 세금입니다. 뭘 사든 10%의 부가가치세를 부담해야 하고, 급여를 받으면서도 많게는 수십%의 소득세를 냅니다. 상속세·증여세·양도세 등 세금의 세계는 끝이 없습니다.

물론 아깝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절대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죽음과 세금이라고 합니다. 세금 전문가의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주변에서 흔히 할 수 있는 세금 고민을 풀어봤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왕 낼 세금(이.세.상)’, 현명하게 따져보는 건 어떨까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물려준 건 10억원이 안 되는데, 상속세를 내라고요?

이예주 씨의 아버지는 생전에 손주를 유독 아꼈다. 재산 9억원 중 유일한 7억원짜리 아파트를 예주 씨가 아닌 손주에게 물려줄 정도였다. 상속 재산 10억원까지는 상속세가 없다는 주변의 말에 따로 세금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어느 날 예주 씨 가족은 1억원이 넘는 고지서를 받았다. 예주 씨는 왜 상속세를 내게 되었을까. [123rf]
이예주 씨의 아버지는 생전에 손주를 유독 아꼈다. 재산 9억원 중 유일한 7억원짜리 아파트를 예주 씨가 아닌 손주에게 물려줄 정도였다. 상속 재산 10억원까지는 상속세가 없다는 주변의 말에 따로 세금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어느 날 예주 씨 가족은 1억원이 넘는 고지서를 받았다. 예주 씨는 왜 상속세를 내게 되었을까. [123rf]

#. 이예주(가명·45세) 씨의 아버지는 손자 사랑이 각별했다. 유독 예주 씨의 아들을 아꼈다.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의 재산은 서울에 있는 7억원 상당의 아파트 1채와 예금 2억원이 전부. 재산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파트를 상속인인 예주 씨나 어머니가 아닌 손자에게 주겠다고 유언장을 쓰면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최근 예주 씨는 ‘상속세’를 내라는 뜻밖의 고지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상속재산 10억원까지는 세금이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무려 1억8500만원이나 되는 상속세를 물게 된 것. ‘물려주신 재산 자체가 10억원이 안 되는데…. 설마, 상속인인 내가 아니라 우리 아들이 받아서 그런 건가?’ 상속세 고지서를 쥐어 든 예주 씨가 궁금증을 풀어줄 절세미녀를 찾아갔다.

Q. 상속인이 아닌 자에게 상속해 줄 수 없는 건가요? 아버지는 유언장을 통해 제 아들에게 아파트를 상속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한 걸요.

유증이란,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특정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을 말합니다. 상속은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 법률에 따라 자동으로 이뤄지지만, 유증은 사전에 명확한 의사표시가 필요해요.

예를 들어, 손자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다면 유언장을 작성해서 손자에게 재산을 주겠다는 의사를 미리 명확히 해둬야 합니다. 만약 유증을 통해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정해진 상속인에게 재산이 이전됩니다.

예주 씨의 사례처럼,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유언장을 통해 유증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셨다면, 그 유증은 법적으로 효력이 있습니다.

Q. 주변에서 재산 10억원까지는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데요.

네, 맞습니다. 일반적인 경우 상속세를 계산할 때 상속재산에서 10억원까지 공제해 주기 때문이죠.

더 정확하게 살펴보자면, 이 10억원은 ▷일괄공제(5억원)와 ▷배우자공제(5억원)를 합한 금액입니다. 먼저, 일괄공제 5억원은 기초공제 2억원과 자녀 공제(인당 5000만원)의 합계액이 5억원보다 작을 때 받을 수 있는데 통상 이 합계가 5억원을 밑돌아 ‘일괄공제’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피상속인에게 배우자가 있는 경우, 배우자가 상속재산을 받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5억원의 배우자공제가 적용됩니다. 이에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를 합쳐 10억원이 넘는 재산을 상속받으면 상속세를 내야 하는 구조입니다.

Q. 제 아버지의 경우, 상속재산이 10억원에 못 미치니 상속세는 없는 게 맞지 않을 텐데, 왜 세금이 나왔을까요.

자녀를 건너뛴 상속을 할 때는 ‘상속공제 한도’를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상속공제는 상속받은 재산의 크기에 따라 계산되고 이 한도 안에서만 공제받을 수 있습니다. 무조건 10억원을 다 공제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가’ 받느냐에 따라 그 한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더 잘 알아둬야 합니다.

특히 상속재산 일부를 자녀와 같이 선순위 상속인이 아닌 손주나 다른 사람에게 유증할 경우 잘 살펴봐야 해요. 이때는 유증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상속공제 한도가 차감됩니다.

예주 씨의 사례로 살펴볼게요. 만약 아버지가 손주가 아닌 딸인 예주 씨에게 9억원 상당의 재산을 물려줬다면, 상속공제 한도는 상속세 과세가액인 9억원으로, 전체 상속재산에 대해 공제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10억원 이하이니 상속세는 ‘0원’이죠.

하지만 지금처럼 선순위 상속인이 아닌 손주에게 유증을 할 경우, 이 상속재산은 한도에서 제외해야 합니다. 즉, 상속세 과세가액인 9억원에서 손주가 받은 아파트(7억원)를 제외한 2억원만 상속공제 한도액이 되는 것이죠. 9억원 중 2억원까지만 공제를 받을 수 있고, 공제에서 제외된 아파트 7억원에 대해선 세금을 내야 합니다.

Q. 증여세의 경우, 손자가 조부모로부터 증여받을 때엔 ‘할증’이 붙는다고 들었어요. 상속의 경우도 동일한가요?

그럼요. 증여와 동일하게 세대를 건너뛴 상속에 대해서도 세금은 할증됩니다. 원래 내야 할 세금의 30%가 할증됩니다. 피상속인의 자녀가 아닌 손자처럼 직계비속 중 미성년자가 상속받는 경우, 상속받는 재산이 20억원을 넘으면 상속세에 무려 40% 할증 세율이 적용됩니다.

이때 할증 세금은 다음과 같이 산정됩니다. 먼저, 전체 상속재산으로 계산된 상속세에서 손자가 상속받은 재산의 비율만큼의 금액을 계산합니다. 손자가 받은 재산 몫에 붙은 상속세만 떼낸 거죠. 그다음 여기에 30%를 할증해서 산출하면 됩니다. 이 방식으로 총 부담해야 할 상속세를 계산하면 1억8500만원이 나오네요.

Q. 제가 아파트를 상속받았다가 우리 아들에게 증여해 줬다면 할증을 피할 수 있었을까요?

맞습니다. 일단 예주 씨가 아파트를 상속받았다면 내야 할 상속세도 ‘0원’이죠. 상속받은 아파트를 다시 자녀에게 증여했다면, 자녀가 부담해야 할 증여세는 1억3500만원이 됩니다. 상속세 1억8500만원과 비교하면 무려 5000만원이나 세금을 아낄 수 있지요.

할증세율도 붙지 않는 데다 증여공제금액도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직계존속(부모)으로부터 성년 자녀가 증여를 받을 경우엔 10년에 5000만원까지 공제가 가능합니다.

Q. 상속도 계획을 어떻게 세우냐에 따라 세금을 이렇게나 많이 아끼네요. 우리 아들은 지금 학생이라 돈도 없는데, 혹시 제가 아들 대신 상속세를 내줘도 될까요.

상속세는 상속받은 사람이 각각 자신이 받은 재산의 비율에 따라 납부할 의무가 있습니다. 다만, 상속세는 ‘연대납부의무’가 있어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 상속인들이 각자가 받을 재산(자산-부채-상속세액) 범위 내에서 상속세를 함께 부담할 책임도 져야 합니다.

이에 따라, 상속인 중 한 사람이 다른 상속인의 상속세를 대신 납부하더라도 자신이 상속받은 재산의 금액 한도 내라면 문제가 없습니다. 또 대신 낸다고 해서 증여세도 추가로 부과되지 않습니다.

[유혜림 기자 / 호지영 우리은행 WM영업전략부 세무컨설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