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연말 대목 장사 어려움 호소
정치적 불확실성 지속…내수경제 타격
전문가 “자영업자 위한 지원 정책 절실”
[헤럴드경제=전새날·정석준 기자] “코로나 때도 버텼는데 지금은 나아질 거란 희망조차 안 보입니다. 내년에는 줄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쏟아질 겁니다. 경기는 계속 안 좋았는데 정치 리스크가 기름을 부은 격입니다.” (50대 자영업자 김모 씨)
얼어붙은 소비심리에 연말 대목만 기대하던 자영업자들이 비상계엄 사태 이후 돌아오지 않는 소비자로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지만, 불확실성 우려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아서다. 자영업자의 생존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 대출규제 완화 등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중구·종로구 먹자골목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은 “앞으로도 소비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 중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50대 손모 씨는 “지금 바빠야 할 시기인데 작년과 비교하면 매출이 40~50% 정도 빠졌다”면서 “이번주에도 20~30명 모임 예약이 있었는데 전부 취소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코로나19 때는 임대료라도 줄여줬지만, 지금은 원부자재값도 많이 오르고 경기 자체가 안 좋아 나아질 거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인근 다른 고깃집 직원도 “작년보다 예약손님이 반절로 줄었고 거리에 사람이 없어 너무 힘들다”며 “코로나19 때도 버텼는데, 내년에는 문을 닫는 가게가 더 많아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호프집 사장은 올해 연말 단체 예약 문의가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매장 직원은 “작년에는 모임 예약이 많았는데 올해는 단체석 문의 자체가 없다”며 “저녁 시간대 손님도 눈에 띄게 줄었다”라고 전했다.
연말 모임 재개 움직임에 수요 회복 가능성에 희망을 거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 종로구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50대 이모 씨는 “탄핵안 가결로 큰 산을 하나 넘었으니 미뤄뒀던 모임도 다시 갖지 않겠느냐”며 “연말에는 밖으로 나와 외식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비상계엄 이후 소상공인들은 매출 타격을 입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전국 소상공인 1630명을 대상으로 긴급 실태 조사에 나선 결과, 응답자의 88.4%가 비상계엄 선포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매출이 절반 이상 감소했다는 소상공인이 36.0%로 가장 많았다. 한국신용데이터(KCD) 자료에 따르면 이달 2일부터 9일까지 전국 소상공인 외식업 사업장 신용카드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9.0% 줄었다.
연말 대목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외식산업경기지수는 올해 3분기 76.04였지만, 4분기 전망지수는 83.65까지 올라갔다. 통상 전망지수가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로 인해 경기지수보다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지만, 4분기 전망지수가 3분기(83.12)보다 높았던 건 탄핵 정국 전까지 연말 특수 기대감이 강했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역시 대외 불확실성 가능성에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환율 상승으로 원부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가격 인상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불안감이 있었는데 어느 정도 큰 고비는 넘겼다”면서도 “원자재를 수급할 때 분기별로 미리 수급하고 소진하는 구조인데, 지금까지 상황이 계속되면 내부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카페업계 관계자는 “이상기후, 고환율 등 부정적인 상황이 장기화할수록 원두나 카카오 등 대부분의 원부재료를 수입하는 카페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원자재 수급 및 운영 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관계자도 “정부에서도 연말 특수를 누릴 수 있도록 소비 진작을 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이런 걸 기대할 수 없어 좌절감이 감지된다”면서 “소비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지자체와 정부가 나서주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소비는 줄어들고 기업은 투자를 미뤄 내수 경제가 안 좋아질 것”이라며 “자영업자를 위한 기준금리 추가 인하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말연시 대목은 소상공인에게 1년 장사를 좌지우지하는 시기인데, 정치적 충격 여파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추경(추가경정예산) 용도를 ‘자영업자만을 위해’ 등으로 제한해 1월 중 빠르게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자영업자들을 위해서만 일정 부분 대출 규제를 풀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