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셈법 따라 권력 공백 파고들어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시리아 반군이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철권통치를 끝낸 이후 미국, 튀르키예, 이스라엘 등 권력 공백을 노린 주변국들의 침탈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13년에 걸친 내전을 마무리한 시리아가 다시 전쟁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시간) 시리아 내전 종식에 따라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던 이란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미국, 튀르키예, 이스라엘이 세력을 키우기 위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사드 정권 축출 이후 시리아에서 가장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일부 반군 세력을 지원해온 튀르키예다.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튀르키예는 시리아국가군(SNA) 등 반군 단체를 지원해왔다.
시리아 반군의 핵심 세력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다. 하지만 튀르키예가 지원한 SNA 등도 반군에 참여해왔기에 튀르키예로서는 목소리를 키울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튀르키예는 특히 테러 집단으로 규정한 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을 견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북부를 장악한 쿠르드족 민병대가 자국 내 분리주의 성향의 쿠르드족과 손잡고 독립을 추진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이 때문에 반군의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쿠르드족 무장세력에 대한 타격에 나섰다.
이스탄불 싱크탱크 경제외교정책센터(EDAM)의 시난 울겐 소장은 튀르키예의 최우선 과제는 시리아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쿠르드 자치구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시리아의 쿠르드 ‘테러리스트’가 가능한 한 빨리 진압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WSJ은 그러나 튀르키예의 이런 행보가 미국과의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이 수니파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한다는 명분으로 시리아 내 쿠르드족 민병대 시리아민주군(SDF)을 지원하고 있어서다.
미군은 IS 격퇴전이 사실상 끝났으나, 잔당 소탕과 재기 방지를 이유로 시리아에 소규모 병력과 군기지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아사드 정권이 전복된 8일 곧바로 시리아 중부의 IS 기지를 공습하며 친미 무장세력인 쿠르드족 민병대에 힘을 싣는 무력시위에 나섰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튀르키예가 테러 위협으로부터 스스로 방어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미국은 IS와 싸우기 위해 SDF와 계속해서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도 시리아 정부군의 전략 무기가 남아있는 군사시설에 대한 폭격을 가하며 권력 지형 재편을 노리고 있다. 지난 며칠간 350곳에 맹렬한 폭격을 가했다.
또 이스라엘이 실효 지배 중인 골란고원에서도 완충지대로 병력을 이동하며 세력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시리아 새 정권과 관계를 맺기 원한다”면서도 “만약 새 정부가 이란이 시리아에 세력을 재건하도록 허용하거나 이란의 무기를 헤즈볼라에 이전해 우리를 공격한다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시리아 무장단체 전문가 브로데릭 맥도널드는 이런 상황이 미국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은 아사드가 시리아를 떠나는 것을 보고 기뻤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위기에 직면했다”며 “각 세력이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지도를 다시 그리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