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심화에 자영업자 타격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 0.16%P↑
신규대출 문턱 더 높아져 악순환
금융당국 ‘맞춤형 채무조정’ 역부족
“가게 적자가 계속되니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언제까지 돈을 빌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난 9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두과자 가게. 이곳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했다는 곽씨(60대)와 윤씨(60대·여) 부부는 “연말이 되면 선물을 사러 오는 고객들이 많았지만, 명동에서도 연말 분위기를 느끼긴 힘들다”며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상황이 나아지는가 했는데, 경기가 어렵다보니 매출도 크게 줄고 모아놨던 노후 자금마저 거의 다 써버렸다”고 토로했다.
비상계엄 후 소비심리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12월 연말 대목도 실종됐다. 특히 경제가 불황일수록 자금이 필요한 자영업자는 늘었지만 소상공인 연체율 증가로 은행 대출 문턱은 높아져, 대출 취약 차주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정부는 올해 안에 ‘소상공인·자영업자 맞춤형 지원 강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 밝혔지만 전문가는 자금 지원을 골자로 하는 금융 정책을 내놓아도 자영업자 매출 회복이 되지 않는다면 대출 연체가 장기화하는 등 고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영업자에게 더 혹독한 ‘계엄한파’=10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개인사업자(소호) 대출 잔액은 327조104억원으로 전달 말 대비 2050억원 감소했다.
은행의 대출 관리가 강화된 배경엔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 상승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9월 말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61%로 지난해 같은 기간(0.45%) 대비 0.16%포인트 상승했다.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9월(0.34%)과 비교하면 0.27%포인트 높다.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신용대출상품 금리도 높아졌다. 10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11월 기준 개인사업자 신규취급액 기준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전달 대비 ▷국민은행 5.58%→5.61% ▷하나은행 5.21%→하나은행 5.28% ▷우리은행 6.24%→6.27% 등으로 상승했다.
은행별 개인사업자 신용대출상품으로는 하나은행의 ‘BEST 신용대출(1년물 금융채 유통수익률)’ 상품 금리가 5.943%~6.843%다. 우리은행의 ‘우리 Oh!(5)클릭 대출(12개월 이상 고정금리)’ 금리는 5.93~6.73%다. 신한은행의 ‘신한사업자대출 IN SOL’ 금리는 연 5.99% ~ 8.75%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자영업자들로서는 금리 부담에 주머니마저 얇아져 이중고를 겪고 있다. 명동에서 30년간 구멍가게를 운영한 자영업자 김모씨(64)는 “코로나 이후 5년째 적자가 이어지면서 3000만원 가량의 소상공인 대출을 받았지만 올해도 경기가 좋지 않아 부담은 점점 누적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20년간 김밥가게를 운영한 70대 김모씨도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계엄 소동으로 어떤 혼란이 이어질지 걱정된다”면서 “나부터라도 나가는 돈을 줄여야겠다는 생각한다”고 했다.
▶소상공인 부채상환 부담 심화 우려…정부 대안 마련 나서=이 같은 상황에 취약 차주의 부채 상환 여력이 점점 줄어드는 등 소상공인의 ‘금융 기초체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지난 11월 한국금융연구원에서 발표한 ‘최근 가계대출 및 개인사업자 대출 규모와 연체 현황’에 따르면 개인사업자 대출 보유 차주 중 30일 이상 연체한 차주의 비중은 2024년 6월 말 2.3%로 전년동기 대비 0.8%포인트 상승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연체는 한번 발생하면 지속된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연체 차주의 재정 상황이 개선되기까지에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6월 말 기준 자영업자로서 가계대출을 연체 중인 차주 중 올해 6월 말에도 연체 상태인 차주의 비율은 60.2%에 달했다. 이는 급여소득자 중 연체차주 비율(48.6%)보다 더욱 높은 수치다.
이에 정부는 지난 5일 은행권과 함께 ‘소상공인 맞춤형 채무조정’ 등 연내 소상공인 지원방안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연내 소상공인 저리 대출자금 2000억원을 추가 공급할 계획이다.
취약 차주를 위한 현금성 지원은 단기적인 대안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열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영업자 대출 등을 받고 연체된 차주는 연체 상황을 계속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데이터로 입증됐다”면서 “금융정책을 내놓아도 매출이 회복되는 등의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계속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있어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호원 기자